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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7월의 역사] 에드윈 제임스, 파이크스 피크 최초 기록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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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사람은 제임스, 이름을 남긴 사람은 파이크…‘태양의 산’에 쌓인 콜로라도의 역사

1820년 7월 14일 오후 4시 무렵, 22세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에드윈 제임스(Edwin James)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해발 1만4,115피트의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 정상에 섰다. 오늘날 기록으로 확인되는 파이크스 피크 최초 등정이었다.

제임스는 스티븐 H. 롱(Stephen H. Long) 소령이 이끄는 미 육군 과학탐사대에 참가해 서부 지역의 식물과 지질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조지프 버플랭크와 재커라이어 윌슨 등 두 동료와 함께 7월 13일 등반을 시작해 다음 날 정상에 도착했고, 15일 탐사대 본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를 산의 ‘최초 등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파이크스 피크 일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이 제임스보다 훨씬 먼저 이 산을 오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는 파이크스 피크 정상에 오른 최초의 문헌상 등정, 즉 ‘최초 기록 등정’(First Recorded Ascent)이라고 표현하겠다.

파이크스 피크는 유럽계 탐험가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원주민들에게 신성하고 중요한 산이었다. 특히 이곳은 타베과체 유트족의 전통 영역이었다. 유트족은 산을 ‘타바’ 또는 ‘타바-카비’(Tava-Kaavi)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태양의 산’(Sun Mountain)이라는 뜻이다. 로키산맥 동쪽에서 아침 햇빛을 가장 먼저 받아 밝게 빛나는 봉우리의 모습을 담은 이름이었다.

아라파호족도 이 산을 ‘길거나 높은 산’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렀다. 원주민들에게 파이크스 피크는 단순히 높고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니었다. 사냥터와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공동체의 전통과 영적 의미가 담긴 산이었다. 현재의 이름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오랜 원주민 역사가 이곳에 남아 있는 셈이다.

산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었다. 스페인계 탐험가들은 거대한 봉우리를 ‘엘 카피탄’(El Capitán), 즉 ‘대장’ 또는 ‘우두머리’라고 불렀다. 1806년 미 육군 장교 제불런 파이크(Zebulon Pike)가 이 지역을 탐사하면서 산은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파이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겨울철 깊은 눈과 추위, 부족한 장비에 막혀 등반을 포기했다. 그는 당시 사람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14년 뒤 에드윈 제임스가 그 예상을 깨고 정상에 오르자 롱 소령은 산을 ‘제임스 피크’(James Peak)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한동안 제임스 피크와 파이크스 피크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됐지만,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한 파이크의 이름이 남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1858년부터 시작된 콜로라도 골드러시였다. 서부로 향하던 금광 개척자들은 마차에 “파이크스 피크에 가거나 빈털터리가 되겠다”는 뜻의 ‘파이크스 피크 오어 버스트’(Pikes Peak or Bust)라는 문구를 적었다. 이 구호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파이크스 피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정상에 오른 제임스보다 산을 먼저 지도와 기록에 알린 파이크가 더 유명해진 것이다.

제임스의 등정은 콜로라도 자연사에도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등반 도중 수목한계선 위에서 여러 고산식물을 관찰하고 채집했다. 그 가운데에는 오늘날 콜로라도주의 꽃으로 지정된 블루 콜럼바인(Blue Columbine)도 포함됐다. 제임스는 높은 산을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키산맥의 자연을 과학적으로 기록한 초기 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파이크스 피크산은 훗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애국 노래에도 영감을 줬다. 시인이자 웰즐리대 교수였던 캐서린 리 베이츠(Katharine Lee Bates)는 1893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강의하던 중 파이크스 피크 정상에 올랐다.

그는 정상에서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과 보랏빛 산맥을 바라보며 시구를 떠올렸다. 이 시는 1895년 7월 4일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고, 훗날 미국의 대표적인 애국가요인 ‘아메리카 더 뷰티풀’(America the Beautiful)이 됐다.

다만 베이츠가 정상에서 노래를 직접 작곡한 것은 아니다. 그는 파이크스 피크에서 가사의 영감을 얻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선율 ‘마테르나’(Materna)는 교회 오르가니스트 새뮤얼 A. 워드(Samuel A. Ward)가 이미 1882년에 만든 곡이다. 베이츠의 시와 워드의 선율이 나중에 합쳐지면서 지금의 노래가 완성됐다.

파이크스 피크는 원주민에게는 태양이 가장 먼저 닿는 신성한 산이었고, 탐험가에게는 오를 수 없다고 여겨진 거대한 장벽이었다. 골드러시 시대에는 서부 개척의 상징이 됐고, 한 시인에게는 미국의 자연을 노래하게 한 영감의 장소가 됐다.

1820년 7월 14일 에드윈 제임스의 등정은 한 탐험가가 정상에 오른 사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태양의 산’이 ‘제임스 피크’를 거쳐 파이크스 피크가 되기까지, 콜로라도의 원주민 역사와 서부 개척사, 자연과 문화가 한 봉우리에서 만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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