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협곡과 별빛 아래서 보낸 5박 6일, SUV 차박으로 완성한 그랜드서클
미국 서부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랜드서클(Grand Circle)’.
유타와 애리조나를 중심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국립공원과 절경이 원형으로 연결된 여행 코스다. 이번 여행은 콜로라도 오로라시를 출발해 모아브 아치스 국립공원,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 엔틸롭 캐년, 홀스슈 밴드, 글랜캐년, 그랜드캐년, 모뉴먼트 밸리를 거쳐 다시 콜로라도 아이언 핫 스프링스를 거쳐 오로라시로 돌아오는 5박 6일간(약 1,800마일)의 대장정이었다. 특별했던 점은 호텔이나 RV가 아닌 SUV 차박으로 여행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뒷좌석을 접고 간단한 매트리스와 침낭만 준비했지만, 오히려 자연 속에서 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붉은 사암 아치스의 도시, 모아브
첫 번째 목적지는 유타주 모아브였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이름 그대로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석조 아치들의 천국이었다. 붉은 사암 절벽과 푸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색채 대비는 사진으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가장 유명한 Delicate Arch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위산 위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아치를 마주하는 순간, 왜 이곳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Double Arch와 Landscape Arch도 각각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특히 Landscape Arch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첫날 밤은 모아브 인근 캠핑장에서 차박을 했다. 도시 불빛이 적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펼쳐졌고, 여행이 시작됐다는 설렘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후두의 왕국, 브라이스 캐년
다음 목적지는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이었다. 브라이스 캐년은 다른 국립공원과 달리 후두(Hoodoo)라고 불리는 기암괴석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수천 개의 첨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거대한 성채를 바라보는 듯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Wall Street Trail이었다. 거대한 붉은 절벽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브라이스 캐년의 상징적인 트레일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실제로 협곡 사이를 걸을 때 느껴지는 압도감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저녁에는 Paria View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석양빛이 후두를 붉고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장면은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다. 차박은 North Campground에서 진행했다. 해발고도가 높아 한여름에도 밤에는 제법 쌀쌀했지만, 조용한 숲과 별빛 덕분에 잊지 못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협곡 속을 걷다, 자이언 캐년
자이언 국립공원은 이전까지 방문했던 장소들과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 거대한 사암 절벽이 수직으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버진 강이 흐르는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이번 일정에서는 Riverside Walk를 걸었다. 평탄한 길을 따라 강과 절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자이언의 대표 명소인 Narrows 입구에 도착한다. 물속을 걷는 트레킹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협곡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든 예술, 엔틸롭 캐년
페이지(Page)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엔틸롭 캐년이었다. 나바호족의 영토인 이곳은 나바호족이 안내하는 가파른 계단아래로 내려가야한다. 좁은 협곡 사이를 따라 햇빛에 붉은 사암 벽면에 반사되며 다양한 색을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색상과 신비로운 형태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작가들이 세계 최고의 촬영지 중 하나로 꼽는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협곡과 에메랄드빛 호수가 만나는 곳, 글렌캐년
미국 서부 여행에서 그랜드캐년, 자이언캐년, 브라이스캐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실제로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곳이 있다. 바로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를 중심으로 펼쳐진 글렌캐년 (Glen Canyon National Recreation Area)이다. 이곳을 처음 마주했을때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랐다.붉은 사암 절벽과 황량한 사막 지형 사이에 펼쳐진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는 마치 바다가 사막 속으로 들어온 듯 했다. 호수에는 보트와 카약, 패들보드, 제트스키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하우스보트를 빌려 며칠간 협곡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 일종의 버킷리스트로 꼽힌다고 한다.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진 콜로라도강, 홀스슈 밴드
글렌캐년을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단연 압권은 홀스슈 벤드다.
페이지 시내에서 차로 10분 남짓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홀스슈 벤드는 콜로라도강이 거대한 바위를 감싸며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 흐르는 지형이다.
전망대에 도착하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잠시 말을 잃었다. 절벽 아래 약 1,000피트(305m) 깊이에서 흐르는 강물과 붉은 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크기와 깊이가 압도적이다. 색을 띠는 콜로라도강과 붉은 사암 절벽이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고 연신 방문객들의 사진을 찍는 셔터소리가 들려왔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