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승격 100주년 축제 앞두고 144명 희생
참사 이후 돌발홍수 경보·대피체계 대대적 개선
콜로라도 주 승격 100주년을 하루 앞둔 1976년 7월 31일, 축제를 준비하던 빅톰슨캐니언(Big Thompson Canyon)은 순식간에 죽음의 계곡으로 변했다. 콜로라도 기록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자연재해로 평가되는 빅톰슨 대홍수가 발생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당시 에스테스파크와 러브랜드를 연결하는 협곡에는 콜로라도 100주년 기념 주말을 보내려는 주민과 관광객 약 3,500명이 머물고 있었다. 캠핑장과 오두막, 식당은 휴가객들로 붐볐지만 누구도 평범해 보이던 여름 폭풍이 엄청난 재난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협곡 상공에서 형성된 거대한 뇌우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머물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에스테스파크 아래 산악지역에는 약 4시간 동안 12~14인치의 폭우가 쏟아졌다. 일부 지점에서는 한 시간 동안 7인치가 넘는 비가 내렸다.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빗물은 빅톰슨강으로 한꺼번에 몰렸다. 평소 잔잔했던 강은 20피트가 넘는 거대한 물벽으로 변해 협곡을 휩쓸었다. 급류는 주택과 상점, 자동차, 교량을 차례로 집어삼켰고 강을 따라 놓인 연방도로 34번도 곳곳에서 유실됐다. 전기와 전화선까지 끊기면서 협곡 내부의 통신도 두절됐다.
빅톰슨강은 로키산맥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ional Park)의 포리스트캐니언(Forest Canyon)에서 발원해 에스테스파크의 레이크에스테스(Lake Estes)를 거친 뒤, 가파르고 좁은 빅톰슨캐니언을 따라 동쪽의 러브랜드 방향으로 흐른다. 이처럼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은 협곡 지형은 짧은 시간에 내린 폭우를 거대한 급류로 바꾸는 요인이 됐다.
당시는 휴대전화나 실시간 재난문자가 없던 시절이었다. 밤이어서 급류의 규모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협곡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강과 나란히 이어진 도로는 오히려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됐다.
USGS는 홍수로 주택 418채와 사업체 52곳, 차량 438대가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했다. 공식 조사에서는 139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으며, 현재는 실종자를 포함해 희생자 144명으로 집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소 150명이 다쳤고 재산 피해는 당시 기준 3,5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1억 8천만 달러에 해당)를 넘었다.
8월 1일 아침 참사의 규모가 드러나자 콜로라도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도로가 사라져 육상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헬리콥터가 고립된 주민과 관광객 800여 명을 구조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8월 2일 라리머카운티를 연방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빅톰슨 대홍수는 콜로라도의 재난 대응체계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이후 강 수위 감시와 돌발홍수 예보, 경보 전달체계가 강화됐으며 협곡 도로 곳곳에는 “돌발홍수 발생 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Climb to Safety)”는 표지판이 설치됐다.
참사 37년 뒤인 2013년 9월, 빅톰슨강은 콜로라도 북부를 덮친 기록적인 폭우로 다시 범람했다. 당시 홍수는 빅톰슨캐니언뿐 아니라 프런트레인지 북부 전역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재난이었다. 빅톰슨강의 거센 물살은 협곡의 주택과 교량을 파손하고 에스테스파크와 러브랜드를 잇는 연방도로 34번을 여러 곳에서 무너뜨렸다. 1976년 홍수 이후 경보체계는 크게 개선됐지만, 2013년 홍수는 좁고 가파른 협곡이 여전히 집중호우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줬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빅톰슨캐니언의 추모비(1461 US-34, Loveland, CO 80537)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콜로라도의 100번째 생일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발생한 참사는 아름다운 산악 협곡도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거대한 수로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