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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안은 시민의 권리인가,돈 있는 단체의 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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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가 두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은 연방·주·지방 선출직 후보뿐 아니라 콜로라도의 법과 헌법을 바꾸는 여러 투표안도 결정하게 된다. 투표용지를 받기 전에 ‘주민발안’이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주민이 직접 법이나 정책을 제안하는 제도를 ‘주민발안’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시티즌 이니셔티브(Citizen Initiative)’ 또는 ‘밸럿 이니셔티브(Ballot Initiative)’라고 한다. 주민이 제안해 투표용지에 오른 안건은 ‘밸럿 메저(Ballot Measure)’라고 부른다.
콜로라도는 주민발안이 활발한 주다. 이 제도는 거대 기업과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주의회가 주민의 요구를 외면하면 시민이 직접 서명을 모아 선거에서 결정하자는 취지였다. 콜로라도 유권자의 77%가 1910년 제도 도입에 찬성했고, 1912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의견을 제안할 수 있지만 그 의견을 실제 투표용지에 올리려면 많은 서명과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3∼2026년 콜로라도에서 주민발안을 투표에 부치려면 최소 12만4,238명의 유효 서명을 받아야 한다. 주 헌법을 바꾸려면 조건이 더 까다롭다. 35개 주 상원 선거구마다 등록 유권자의 2% 이상에게 서명받아야 하고, 선거에서도 원칙적으로 5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지역별 서명 규정은 덴버 등 인구가 많은 지역의 의견만으로 주 헌법이 바뀌는 것을 막는 장치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주 전역을 다니며 서명을 받으려면 전문 업체를 고용해야 한다. 전직 콜로라도 주 상원의장 스티브 펜버그는 필요한 비용을 100만∼300만 달러로 추산했다. 평범한 주민이나 작은 시민단체가 부담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콜로라도 선’의 보도에 의하면 2024년 콜로라도 투표안 캠페인에는 4,200만 달러 이상이 사용됐다. 2026년 8월 18일 현재 중간선거 투표 자격을 확보한 주민발안은 7건이며, 일부 안건은 아직 서명 검증을 받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보수·진보 단체 모두 주민발안을 자신들의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주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법률안에 54만6,651명, 헌법 개정안에 87만4,641명의 서명을 요구한다. 오리건은 직전 주지사 선거 투표수의 6%를 법률안, 8%를 헌법 개정안의 기준으로 삼는다. 네바다는 직전 총선 투표자의 10%에 해당하는 서명을 4개 구역에서 고르게 받아야 한다. 주민이 제안한 헌법 개정안은 두 차례 연속 총선에서 통과돼야 효력이 생긴다.
이처럼 주민발안 제도는 적절한 문턱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문턱을 지나치게 낮추면 투표용지가 각종 이해관계자의 요구로 넘쳐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높이면 돈 많은 단체만 서명을 모을 수 있다. 시민을 보호하려 만든 장벽이 평범한 주민에게는 높은 벽이 되고, 부유한 단체에는 하나의 사업비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제도의 복잡함은 한인들에게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투표안에는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법률 영어가 많다. 문장이 길고 찬반 광고의 주장도 서로 달라, 영어에 익숙한 사람도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길거리나 상점 앞에서 짧은 설명만 듣고 서명하면 실제 내용과 후원단체를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

서명하기 전에는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무엇을 바꾸려는지, 왜 일반 법률이 아닌 헌법에 넣으려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면 바로 서명하지 말고 콜로라도주 유권자 안내서인 ‘블루북(Blue Book)’과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의 설명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민발안권을 약화할 필요는 없다. 대신 서명용지와 유권자 안내서에 주요 후원자와 자금 출처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유권자도 안건의 이름이나 찬반 광고만 보지 말고 실제 내용과 비용을 부담하는 단체를 확인해야 한다. 한 표의 가치는 모두 같지만, 정보를 이해할 기회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시민이 충분히 알고 판단할 수 있을 때 주민발안은 비로소 시민의 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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