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인터뷰인물 인터뷰미 언론사 누비는 이중언어 한인 기자: 피터 초이

미 언론사 누비는 이중언어 한인 기자: 피터 초이

spot_img

한인 1.5 유학생에서 콜로라도가 신뢰하는 뉴스 앵커로미국 언론사 아시안 남성 기자 1% 현실, 방송기자 최원종이 활약하기까지

Peter Choi(최원종) 기자는 한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중언어 기자로서 성장 중인 젊은 기자다.  이민자 배경을 발판삼아 미국 현지 기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슈들에 가교 역할을 하는 유망한 기자로 인정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인들은 미국 현지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인의 미국 언론사 진출은 극히 드물다.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미국 언론사 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 중인 최 기자의 스토리는 무엇일까. 콜로라도 타임즈가 직접 만났다.

: 한인들에겐 높고 미국 언론사

“아시안 남성 기자 인구는 언론계 1%” 라고 최 기자는 말한다. 그만큼 한인사회를 포함한 아시안계 이민 사회에서 미국 TV 언론사 활동은 지극히 낯설다. 영어를 해도 현지인 기준에서 완벽하게 해야 할 것 같고, 한인들이 좋아하는 말 잘하는 변호사보다도 말을 더 잘 해야 할 것 같다.  뉴스에 등장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백인이며, 유색인종 기자는 드물다. 그렇다 보니 언론계란 한인들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분야이자 알 수 없는 세계로 남아 있다.  어떻게 입문해야 하는지, 직업적으로 무엇을 예상해야 하는지를 한인들은 모른다.

그는 고등학교 때 콜로라도 유학생으로 홀로 이주했다. 첫 1년은 영어 실력을 키우고 현지인들과 동화되기 위해 김치도 먹지 않고 영어를 배웠다. 언론과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아 평소 촬영 장비를 다루는 데 익숙했다. 그 후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언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아리랑 TV 기자로 언론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국 방송기자의 하루

 “기자로서 매일 1개의 새로운 뉴스를 취재한다. 뉴스 소재는 대부분 스스로 찾는다. 발로 뛰며 직접 현장을 촬영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고 그는 말한다. 어렵게 취재한 영상들을 골라 편집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예전에는 촬영 기사와 팀이 되어 취재했지만 업계 흐름상 이제는 촬영·보도·편집까지 혼자 작업할 때가 많다” 고 한다.

최 기자는 언론학과 2학년 때부터 언론사들의 문을 두드리며 꾸준히 인턴 생활을 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가는 곳마다 촬영 장비를 들고 다니며 사회 이모저모를 탐방하고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다. “기자로 활동하다 보면 유명인부터 노숙인까지 여러 배경의 사람들을 만난다. 소통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기자 생활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미국 현지 기자가 되려면

언론사 입문 방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 기자는 “방송 기자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 실력이 기본이며, 직접 제작한 영상들을 방송사에 보내 기자로서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라고 답했다. “운 좋게 카투사에 입대해 영어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라고 회상하는 그는 제대 후 한국 언론사와 미국 언론사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다 아리랑 TV 기자 공채에 지원해 합격했다. 4인을 뽑는데 수백 명이 몰린 치열한 경쟁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은 그가 한국에 남아 한국 언론인으로서 활동하기를 바랐다. 아들을 곁에 두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미국 현지 언론사에 도전해 더 넓은 사회로 진출하고 싶었다.

로컬에서 신뢰받는 이중언어 기자가 되기까지

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언론사에 제작한 영상을 제보하고 반응을 기다려야 했다. 때로는 언론사로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믿을 만한 기자로 인정받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꾸준한 시도 끝에 콜로라도 소재 방송사 KOAA에 입사하게 되었다. 시사부 기자로서 미국 정치·사회 현안을 보도하는 동시에, 현지인들이 놓치기 쉬운 미국 이민 사회 뉴스와 스토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보기 드문 인력으로서 평판을 쌓았다.

KOAA 앵커로도 활약하며 이제 하루에도 여러 번 뉴스 제보를 받는다. “뉴스 보도를 통해 제보자들의 삶에 긍정적 변화가 이뤄질 때 시사부 기자로서 가장 보람있다” 고 말한다. 그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 따뜻해지는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로 기억되고 싶다.  

“현지 기자들에겐 이민 사회 취재가 어렵다. 문화, 소통방식, 생김새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의 접점을 찾기 난감하다. 반면 두 문화와 언어를 모두 경험한 나에게는 다리 역할이 익숙하다” 는 최 기자는 미국 내 K-문화 열풍 속에서 한인 사회와 소통 접점을 찾지 못하던 미국 뉴스룸에 독특한 현장 이야기를 가져다주었다.

KOAA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며 방영한 마지막 단독보도 “전쟁으로 맺어진 인연: 76년 만에 한국전쟁 참전 용사 두 명이 전하는 메시지(Connected by War: A message between two Korean War Veterans after 76 years)”(최기자 koaa 단독보도 링크) 가 대표적 예시다.  편지를 교환하며 끈끈한 전우애를 표현한 미국과 한국의 두 참전용사는 알고 보니 6.25전쟁 금성 전투에서 함께 전투를 치른 사이였다. 최 기자의 인터뷰가 없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으로 떠난 휴가 도중 짬을 내 이 뉴스 영상을 촬영했다. 휴가 중 근무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발 닿는 곳마다 촬영 장비를 들고 매 순간을 기록하던 기자 본능을 따랐을 뿐이다.

본지와 인터뷰 중인 Peter Choi 기자

영어능력보다 사람자신감 잃지 않길

“한국어 억양을 지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방송기자 활동 이후로는 주기적으로 억양 지적과 생김새 지적을 받는다” 라고 최 기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억양은 거의 없다.

“수없이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왔다”는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회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으니 처음엔 꽤나 서툴었다. 고등학생 시절 언론인의 꿈을 밝혔을 때는 ‘영어도 못 하는데 무슨?’ 이라며 모두가 코웃음치곤 했다” 고 회상한다. 한인 사회나 미국 사회나 어중간한 나이에 홀로 이민하여 영어도 서툴고 미국 사정에 밝지 못한 동양인 남성에게 언론인이란 불가능한 길이라며 혀를 찼다. 희망을 주는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본인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었다.

발음 교정에 스피치 테라피스트와 협업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매일 하루에도 몇 시간씩 뉴스 앵커들과 기자들의 발성과 발음을 듣고 따라했다.  이 과정에 고교시절부터 친구였던 미국인 아내가 함께했다. 의학 전공 중인 아내는 지금도 나의 모든 방송을 모니터하며 미묘한 실수를 교정해 준다. 미국에서 한 첫 방송과 지금의 방송을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고 답했다.

“언론인으로서 때로 비판과 비난을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자신감이다. 주변 소음에 흔들리거나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의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기 길을 걸어야 한다” 고 언론인의 꿈을 꾸는 한인들에게 조언한다. “언어능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 이라며 기자 생활에서도 사람 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최 기자는 SNS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언론인 멘토로도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X @peterwjchoi)

기자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 경험을 묻자 최 기자는 “콜로라도 파크 레인저들과 록키 산의 쿠거(산사자)를 좇는 촬영이었다. 취재 요청에 파크 레인저들은 선뜻 수락하며 팀을 짜 촬영팀에게 산길을 안내하고 자연 속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주었다” 며, “코로나19 시절 한국에서 초저온 백신 냉장고에 방문했던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고 말했다.

시사부 기자로서 특별히 느낀 점은 “필리핀 이민사회 등 여러 이민사회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결집하여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한국 이민사회는 정치 참여 부분에서 한계를 느낀다” 고 답했다. “한인들은 시의원 회의에서나, 매체 인터뷰에서나 주목받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으면 미국 사회는 한인 사회의 고충과 건의사항을 알 수 없다” 며, “미국인 앞에서 일목요연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한인 리더가 필요하다. 한인들과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미국 사회도 한인 사회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인들의 결집과 미국 정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 라고 덧붙였다.

시사부 기자들의 꿈은 워싱턴 DC 대통령실 기자, 뉴욕의 중대 경제사안 발표 현장, LA의 빅뉴스 보도기자 등  놓칠 수 없는 역사적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다. 혼자 미국 땅을 밟은 고등학교 한인 유학생 최원종은 ‘Peter Choi’ 라는 콜로라도 기자로 성장하여 한인 1.5세로서 미국의 언론 현장을 마음껏 누비고 있다. 주변의 냉소에도 주눅들지 않았던 그의 발걸음이 끝내 어디로 향할지 콜로라도 한인 사회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지켜본다. 그는 오는 6월부터 덴버 뉴스7에서 덴버 북부 담당 기자로 활동한다. 

spot_img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중요한 최신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콜로라도 타임즈 신문보기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Most Popu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