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인터뷰인물 인터뷰낮아짐으로 세운 다리, 비워냄으로 쌓은 신뢰: 오금석 고문

낮아짐으로 세운 다리, 비워냄으로 쌓은 신뢰: 오금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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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내려놓고 콜로라도 대표 한인 인사로… “당신은 어떤 봉사자입니까”

오금석 고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35여년 간 덴버 지역에서 활동 중인 상업용 부동산 브로커이자, 미국 회계사, 보험 에이전트, 등단 시인이기도 하다. 전문직 활동 이전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걸어온 가톨릭 사제 서품의 기로에서 평신도의 삶을 걷기로 결심했다. 광주가톨릭대학교 철학 학사와 신학 석사 1년 과정을 마치고 1975년 콜로라도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원 신학 석사 유학길에 오른 것이 51년간 이어진 미국 삶의 시작이었다.

인터뷰 요청에 오 고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아시아·태평양 커뮤니티와 미국 사회에 다리를 놓은 아시아계 리더로 콜로라도 현지 사회에 익히 알려져 있지만,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약력에 질문을 건네기는 기자에게도 난제로 다가왔다.

봉사와 헌신으로 미국 사회의 신뢰를 얻다

신뢰(Credibility). 오금석 고문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다. “한 번 형성된 미국인과의 신뢰 관계는 웬만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 말한다. 이 특수한 관계는 단 한 번의 자발적 실수와 실족으로 무너질 수 있는 예민함을 동반하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가 강조된다고 그는 말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쌓는 방법을 물었다.

한 때 사제가 되려 했던 그는 사제 사회와 평신도의 사회,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처럼 좁힐 수 없이 단절된 듯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데 능했다. 굳게 닫힌 두 문을 동시에 여는 열쇠는 “봉사와 헌신” 이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콜로라도 한인 커뮤니티에게 언어는 큰 장벽이었다. 신학교 학부 시절부터 외국인 교수에게 영어 원어 수업을 듣고, 미군 유엔사령부 민사팀에서 복무했던 오 고문은 영어, 라틴어, 한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오로라 경찰청 통역관으로 봉사하며 한국 커뮤니티에게 낯설었던 미국 경찰 시스템을 교육하고 문화적 차이를 인지시키는 데 힘썼다. 사소한 일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격해질 때 한국인 사이에서 흔히 등장하는 “죽여버리겠다!” 같은 발언이 미국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라

한·미 인사들은 오 고문에게 무엇을 자문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콜로라도에 뿌리내린 수십년의 세월 동안 문화적 다양성 격차를 줄인 기여 및 커뮤니티 봉사·인도주의적 성과로 기관들이 주목하는 인물이었다. 빌 오웬스·빌 리터 주지사 직속 아시안 자문회의 회장, 덴버 시장·미 하원 아시안 자문으로 여러 미 정부 기관의 자문·고문 역할을 해 왔다.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며,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 숨겨져 있습니다.” 고 그는 증언한다. 그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봉사와 꾸준한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이너 서클(Inner Circle)이란 우연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고 답변했다. 오 고문은 봉사로 쌓은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 4가지 봉사자 유형, 봉사가 삶에 가져다 주는 것들

도처에서 봉사를 권유하지만, 왜 봉사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고민한다. 헌신이란 달콤한 보상과는 멀게 느껴진다. 뿌듯함도 잠시, 노동력 낭비·시간 낭비로도 느껴지는 허무함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이들은 봉사를 ‘피할 수 없는 숙제’ 쯤으로 치부한다.

오 고문은 봉사가 불러오는 실질적 효능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헌신의 파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봉사를 통해 신뢰와 관계가 발생하며, 타인의 필요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봉사는 여유가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내려놓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봉사자를 4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봉사자가 되고 싶은 봉사자. 이들은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서툴어 약간의 훈련과 보듬기가 필요하다. 넘치는 열정에 번아웃을 겪기도 한다. 둘째, 고지식한 봉사자. 주어진 일만을 묵묵히 수행하는 단순함이 있지만 꾸준하고 안정적이기에 장기적으로 큰 힘이 된다. 셋째, 선천적 봉사자.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채는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능하다. 넷째,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 모든 봉사자 중 최악의 유형으로 이들의 봉사는 헌신의 파장은커녕 주변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비워내야 비워내지지 않는다

“그동안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 외엔 성공의 비결을 모릅니다.” 그는 덧붙였다. “부와 성공은 동전탑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욕심부려 쌓다 보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균형 잡힌 지점을 찾아 쌓기를 그만두고 덜어내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덜어내야 한다는 것인지 묻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재화는 삶에서 꼭 필요합니다. 각자의 상황과 그릇에 따라 필요한 재물의 무게도 달라집니다. 그 사실을 경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균형’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균형추를 재기 위해서는 고독의 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손때 묻은 수첩을 응시하던 그는 한 때 대중의 존경과 선망을 받았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미국의 리더들, 한 때는 친구였으며 지금은 소천하기도 한 수많은 이름들을 떠올렸다. “실족은 신뢰를 파괴하며, 쌓았던 모든 것들은 사라집니다.” 그들의 실족은 순간의 유혹과 충동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재물이란 필연적으로 유혹을 부르고, 유혹은 관계의 파멸을 부릅니다. 과도한 화려함이나 과분한 의전 같은 것과는 멀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달콤함에 익숙해졌음을 발견했다면 과감히 버려내고 정화해야 합니다.”

기부도 스스로를 내려놓는 하나의 ‘정화 의식’ 임을 강조하는 그는 고독한 사색을 통해 혼자만의 방에서 글을 쓴다. 비워내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고독과 침묵의 언어들은 그를 문인으로 등단 시켰다. 올해 제5시집 「오늘이라는 꽃 -동행」 발간에 이어 6집 발간을 준비 중이다.

청목문학상 수상 등 등단시인으로서 활발한 활동 중이다.

아무도 보는 다리를 놓은 이유

생존만으로도 벅찬 낯선 곳에서 왜 보이지 않는 다리 놓기를 계속했을까.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있으며, 필요를 발견하고 제공할 때 한 사회의 온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현실을 그는 받아들였다. 받아들임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공헌대상 봉사대상, 마틴 루터 킹 인권상, 아시안 영웅 상, 유네스코 공로상, 대한민국 대통령 공로상, 콜로라도 주지사 공로상, 덴버 시장 공로상 등이 그 증거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어느 위치이든지 자신의 자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날들이 쌓여가며 목표했던 삶의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고 그는 말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상기하며 목표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할 때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제로서 신과 인간의 경계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한 때 철저히 분리되었던 미국과 아시안 사회의 경계를 허무는 데 기여했다. 상호간 몰이해는 법률과 계약이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좁혀지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았다. 마음에서 우러난 이해와 보이지 않는 신뢰가 서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동양의 정서를 미국인과 공유하기 위해 아시안 영화제를 기획·상영하고, 콜로라도 드래곤 보트 페스티벌 프로젝트 기획에 적극 참여하며, 오로라시 관계위원회 커미셔너로 성남시와 오로라 자매결연을 맺는 데 봉사한 것은 동·서양의 문화적 장벽을 낮추고 미국과 아시안 공동체 간 상호이해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오 고문은 2012년 오로라 시립박물관 특별전시 ‘위대한 여정: 오로라의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An Epic Journey: Aurora’s Asian/Pacific Communities)’ 에서 한국계 주요 리더로 소개되었다.

2019년 오로라시의 ‘유관순의 날’ 제정은 오금석 고문의 주요업적 중 하나다. 유관순 열사 소개, 3·1운동의 의미, 유관순의 날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등을 미국 정부 고위직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했다. 그와 긴밀히 연결된 아시안 커뮤니티 네트워크의 무게는 미국 관료들의 시각에도 가볍지 않았다. 일본 총영사와 일본 정부의 외교적 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로라시는 해당 안건을 승인시켰다.

이후 오로라시는 매년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기념하며 지원을 확대하고, 미국 교사들에게도 유관순 열사와 일제강점기 역사를 이해시킬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되었다. 이 성과를 그는 “우리가 ‘인맥’이라 부르는 신뢰 관계가 만들어낸 것” 이라고 회상했다.

“지식은 연장이다” 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세대에게 평생에 걸쳐 새로운 지식 습득을 지속하기를 강조하며,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사회에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쇼 앤 텔(Show and Tell) 이라고 하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당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하세요. 진실이 있어야 진정으로 연결됩니다. 그 중 누군가는 당신이 절실히 찾던 사람일지도 모르고요.”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향한 전력질주가 성실한 삶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낮아짐과 비움의 역설을 오금석 회장은 강조한다. 비워진 자리에 뿌려진 무형의 신뢰가 다음 이민 세대에서 유형의 관계로 채워지기를 그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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