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오피니언독자기고 환불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심리

[독자 투고] 환불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심리

spot_img

얼마 전, 장을 보기 위해 집 근처 한인 마트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계산대 쪽이 유독 소란스러워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한인 고객이 무척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점원에게 물건을 리턴(환불)하고 있었다. 미국 마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다분히 감정적인 실랑이였다.

그 광경을 목격하며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는 미국식의 건조하고 기계적인 리턴 문화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유독 한인 마트나 한인 업체를 찾으면 상대방의 정중한 사과, 즉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내심 기대하게 되는 것일까?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코스트코나 타겟 같은 대형 마트의 문화에 젖어들게 된다. 영수증과 물건만 내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불을 해주는 그들의 방식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이다. 점원은 “죄송합니다”라는 말 대신 “알았습니다. 처리되었습니다”라는 기계적인 답변을 건넨다. 미국 식당이나 로컬 미용실, 정비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약이 꼬이거나 서비스가 조금 늦어져도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대안을 제시할 뿐, 감정을 실어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소비자 역시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인 마트의 문턱을 넘거나 한인 식당, 한인 미용실 등을 이용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심리적 기준을 적용한다. 이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탓이다.

첫째, ‘관계’ 중심의 문화적 정서다. 미국 업체들은 기계적인 규칙을 따르지만, 한인 업체는 점원도, 고객도 모두 한국인이라는 정서적 연결고리 위에 서 있다. 예를 들어 한인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오거나, 한인 미용실에서 머리 모양이 원하던 것과 다르게 나왔을 때 우리는 단순한 ‘거래의 오류’로 보지 않는다. 도의적으로 “우리가 꼼꼼히 챙기지 못해 불편을 드려 미안하다”는 최소한의 공감과 미안함을 기대하게 된다.

둘째, ‘언어적 편안함’이 주는 기대치와 그 부작용이다. 영어로 소통하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미국 업체들과 달리, 한인 마트나 식당에서는 한국어로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적 무장해제는 “내 나라 사람끼리니까 이 정도 상식과 배려는 통하겠지”라는 무의식적인 기대를 낳는다.

하지만 이 편안함이 때로는 과도한 요구와 감정 과잉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실제로 한인이 운영하는 일식당 등에서 일하는 교민 자녀 중에는 한국인 고객 서빙을 은연중에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미국 식당에서는 하지 않을 무리한 개인적 부탁을 하거나, 사소한 일에 꼬투리를 잡으며 소위 ‘진상 손님’으로 돌변하는 일부 한인들 때문이다.

과거 한인이 자주 찾는 중식당에서 목격했던 한 장면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한 40대 중년 여성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노인 부부에게 감정적으로 큰소리를 높여가며 항의하던 모습이었다. 미국 공공장소나 로컬 식당이었다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조용히 식사만 하고 나갔을 이 여성은, 유독 한인 사회 안에서는 브레이크가 풀린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미국 식당에서는 짠 음식을 먹고 배가 아파도 컴플레인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사람이, 한인 식당에 오면 “오늘 음식을 왜 이 모양으로 하느냐”라며 쉽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지라는 낯선 환경에서 억눌려 있던 스트레스와 소외감이, ‘말이 통하고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만만한 상대를 만나는 순간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심리다. 물론 대다수의 한인은 미국인들보다 훨씬 예의 바르고 매너가 좋지만, 일부의 이러한 엇나간 행동이 눈총을 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셋째,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문화적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서비스 문화는 고객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에 익숙하다. 미국 생활을 하며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삭히며 살다가, 말이 통하는 한인 업체에 오면 한국식으로 오늘은 제대로 대접받고 싶은 일종의 ‘보상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미국식 “I’m sorry”는 종종 법적 과실이나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직원이 과도하게 사과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어의 “미안합니다”는 과실 인정을 넘어 “당신이 겪은 불편에 공감합니다”라는 정서적 표현에 가깝다. 즉, 돈을 돌려받거나 음식을 새로 바꾸는 ‘물질적 보상’만큼이나 내 불편함을 알아주는 ‘감정적 위로(사과)’를 받아야 비로소 상황이 마무리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한인 업체에서 사과를 기대하거나 과도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마음의 기저에는, 타지 생활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감과 외로움을 익숙한 동포 사회 안에서 보상받으려 하는 심리가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보상이 타인에 대한 무례함이 되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미국 사회에서 보여주는 만큼의 매너와 존중을 지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조금 더 따뜻한 공감의 한마디를 건넨다면, 이국땅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교민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spot_img
coloradotimes
coloradotimeshttps://coloradotimesnews.com/
밝고 행복한 미래를 보는 눈, 소중한 당신과 함께 만듭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중요한 최신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콜로라도 타임즈 신문보기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spot_img

Most Popu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