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7월, 덴버는 미국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된 도시가 됐다.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렸고, 이 대회에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대통령 후보로, 존 워스 컨(John Worth Kern)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당시 덴버 전당대회는 콜로라도 역사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서부의 신흥 도시였던 덴버가 전국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광산과 철도, 이주민의 도시로 성장하던 덴버는 이 행사를 통해 미국 전국 정치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덴버에서 지명된 브라이언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치러진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가 승리했다. 태프트는 선거인단 321표를 얻었고, 브라이언은 162표에 그쳤다. 태프트는 이후 제2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덴버 전당대회는 승리한 대통령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콜로라도가 미국 정치사에 남긴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한인 독자들에게 1908년 7월 덴버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인 7월 11일, 덴버에서는 해외 한인 대표들이 모인 애국동지대표대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박용만, 이승만 등 한인 대표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잃어가던 대한제국의 현실을 민주당 인사들과 미국 여론에 알리고, 해외 한인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고자 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나라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주 한인들은 미국 정치의 큰 행사가 열린 덴버를 외교적 호소의 공간으로 삼았다.
애국동지대표대회에서는 국내외 한인단체를 연결할 통일기관 조직, 각지 통신국 설치, 상호 연락 체계 마련 등이 논의됐다. 특히 군사학교 설립안은 중요한 결실로 평가된다. 이 논의는 이후 박용만이 네브래스카주에서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우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1908년 7월의 덴버는 미국 정치인들이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도시였고, 동시에 조국의 주권을 걱정한 한인들이 독립을 호소하던 도시였다. 콜로라도 7월의 역사 속 이 장면은 덴버가 미국 정치사의 무대였을 뿐 아니라,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