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콜로라도 뉴스 덴버의 지도를 바꾼 1965년 ‘사우스 플랫강 대홍수’

[콜로라도 역사] 덴버의 지도를 바꾼 1965년 ‘사우스 플랫강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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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6월 16일 발생한 ‘사우스 플랫강 대홍수(South Platte River Flood)’는 콜로라도 역사상 가장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긴 자연재해로 기록된다. 홍수는 아칸소강과 사우스 플랫강 유역을 포함한 콜로라도 전역을 강타했고, 모두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덴버 메트로 지역의 인명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재산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덴버 일대 피해액은 약 5억4,3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이는 오늘날 가치로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콜로라도 역사에서 더 많은 사망자를 낸 홍수는 있었지만, 순수 재산 피해 기준으로 1965년 사우스 플랫강 대홍수는 여전히 주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든 홍수로 평가된다. 이 재앙은 수백 채의 주택과 수십 개의 사업체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진 무분별한 도시 성장과 허술한 방재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오늘날 다운타운 인근의 컨플루언스 파크 일대는 사우스 플랫강과 체리 크릭(Cherry Creek)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1858년 골드러시 시절, 금을 찾아온 사람들과 상인, 투기꾼들이 이 유역에 정착하면서 덴버의 역사가 시작됐다. 평소 물줄기가 잔잔했기 때문에 초기 이주민들은 홍수 위험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라파호와 샤이엔 등 원주민 사회에는 이미 사우스 플랫강이 때때로 위험한 강으로 변한다고 경고했다.

그 경고는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1864년 체리 크릭이 대규모로 범람하면서 라리머 스트리트 다리와 블레이크 스트리트 다리, 시청, 언론사 건물 등이 피해를 입었다. 이후 체리 크릭은 여러 차례 더 범람했고, 덴버시는 옹벽을 세우고 수로를 정비했다. 1950년 체리 크릭댐이 완공되면서 이 물줄기는 어느 정도 통제됐다.

문제는 사우스 플랫강 본류였다. 체리 크릭에 비해 사우스 플랫강은 오랫동안 덴버의 관심 밖에 있었다. 1945년에는 플럼 크릭이 사우스 플랫강과 만나는 도시 남서쪽에 댐과 저수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고, 1950년 연방 의회는 챗필드댐(Chatfield Dam) 건설을 승인했다. 그러나 지역 지주들의 반대와 정치적 의지 부족으로 공사는 미뤄졌다.

그 사이 사우스 플랫강은 도시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1870년대부터 공장과 철도 야적장이 강변에 들어섰고, 폐유와 폐수, 각종 쓰레기가 강으로 흘러들었다. 1960년대에는 강을 따라 여러 매립지가 조성됐고, 250개가 넘는 배수관이 빗물과 오염물질을 강으로 흘려보냈다. 강변에는 잡초와 폐차, 쓰레기, 임시 거처가 뒤섞였다. 덴버는 강을 도시의 자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 공간처럼 다루고 있었다.

1965년 6월 16일 오후, 덴버 남서쪽 더글러스 카운티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팔머레이크 인근에서는 토네이도가 지붕을 뜯어냈고, 도슨 뷰트에는 네 시간 동안 14인치의 비가 내렸다. 평소 몇 피트 너비에 불과하던 플럼 크릭은 순식간에 거대한 급류로 변했다. 캐슬락과 세달리아를 휩쓴 물은 도로와 다리, 주택, 교회를 삼키며 북쪽으로 밀려갔다.

콜로라도의 주요 강

플럼 크릭의 급류가 사우스 플랫강과 합류하자 물길은 덴버를 향해 거대한 진흙 물벽처럼 움직였다. 주 순찰대는 약 20피트 높이의 물벽이 리틀턴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물은 단순한 빗물이 아니었다. 상류에서 쓸려 내려온 연료 탱크, 중장비, 이동식 주택, 자동차, 가전제품, 매립지 잔해가 뒤섞이며 다리와 건물을 들이받았다.

오후 5시 무렵 덴버 경찰국은 비상재난 호출을 위해 무전 교신을 제한했다. 강을 가로지르던 다리들은 잔해의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덴버 일대 24개 교량 가운데 13개가 파괴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됐다. 6번가와 플랫리버드라이브 인근에서는 대형 부탄 탱크가 폭발해 충격음이 수마일 밖까지 들렸다.

밤 8시 무렵 홍수는 다운타운으로 밀려들었다. 철도 야적장, 티볼리 양조장, 창고 지대, 서민 주거지였던 더 바텀스(The Bottoms)가 큰 피해를 입었다. 덴버 시내에서만 1,720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만약 체리 크릭댐이 동남쪽에서 유입되는 물을 막아주지 못했다면 덴버의 인명 피해는 훨씬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대홍수는 덴버의 도시 인프라를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가장 먼저 미뤄졌던 챗필드댐 건설이 현실화됐다. 미 육군공병대는 1967년 공사를 시작했고, 1975년 챗필드댐을 완공했다. 또한 1969년에는 6개 카운티를 아우르는 광역 홍수관리기구인 어번 드레인지 앤드 플러드 컨트롤 디스트릭트가 설립됐다. 이 기구는 훗날 마일 하이 홍수관리구역(Mile High Flood District)으로 이어지며 미국 내 광역 방재 협력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게 됐다.

홍수는 도심 재개발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오라리아(Auraria) 지역은 홍수 피해와 도시 낙후를 이유로 재개발 논의의 중심에 섰고, 이후 오늘날의 오라리아 캠퍼스로 재조성됐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사우스 플랫강 자체에서 일어났다. 1970년대 이후 덴버시는 강을 더 이상 도시의 뒤편으로 방치하지 않았다. 수질 개선과 홍수 통제, 강변 공원 조성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고, 그 흐름 속에서 그린웨이 재단(Greenway Foundation)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컨플루언스 파크를 비롯한 강변 공원과 산책로,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사우스 플랫강은 점차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이후 장기적인 도심 재생 흐름 속에서 낙후된 창고 밀집 지역은 오늘날 덴버에서 가장 활력 있는 문화 지구인 로도(LoDo, Lower Downtown)로 변모했다. 옛 붉은 벽돌 창고들은 로프트와 식당, 상업 공간으로 재생됐고, 쿠어스 필드와 볼 아레나 등 대형 시설이 도심 강변의 변화를 이끌었다. 한때 쓰레기와 오염의 상징이던 강변은 오늘날 100마일이 넘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20여 개 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녹색축이 됐다.

1965년 사우스 플랫강 대홍수는 콜로라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이 재난은 자연의 경고를 무시한 도시 개발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준 사건이었고, 동시에 위기를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의 계기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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