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백성의 집과 황폐한 하나님의 집
성전 건축을15년이나 중단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1장2절에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 하였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매우 강력한 경고의 어조이다.
당시 포로 귀환 후에 한재를 만나 생활이 궁핍해졌고 백성들 중에 성전 방해공작을 위하여 뇌물을 받고(에스라4:5) ‘아직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니다.’ 라고 선동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1장3, 4절에 보면 “이 전이 황무 하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하나님께서 매우 격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함에 있어서는 시기상조다. 재정이 문제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 자신은 판벽한 집에 살고 있는 모순된 모습을 하나님은 꾸짖으신다. 여기서 “판벽”이라는 말의 뜻은 ‘완전하게 잘 지어지고 다듬어 졌다’는 말씀이다.
히브리 원문에 보면 “오,너희들이여,이때가 바로 너희들만을 위할 때인가!이 성전은 황폐화되어 버렸건만 너희는 좋은 집에 거하는 구나!”라고 강력한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1장5절에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 행위(소위)를 살펴볼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서론에서 밝히 바와 같이,“네 행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이2장으로 쓰여진 짧은 학개서에4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1:5,7;2:15;2:18).반복은 강조를 뜻한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행위” (개정성경에는 “소위”)는 “자기가 걸어온 일련의 생의 과정과 길”을 뜻한다.
육신 중심의 삶이 가져다주는 결과
1장6절에 하나님은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생들,육신 속에 안주했던 미련한 백성들의 결국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계신다. 지난날 너희들은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많이도 뿌려 댔다.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던 설움에 겨워 많이도 먹었다. 작금 한국 사회는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1위라고 할 만큼 술을 마셔 대었고, 몇 일 멀다 할 만큼,거의 날마다 임금 인상을 위해 노동쟁의를 벌려 많은 삯을 받았지만 지금 너희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그렇게 많이 뿌려서 세계적인 한국을 만들었다고 큰소리 쳤지만’ 우리의1년은 세계의10년’이라고 의기양양했건만 우리는 지난 날IMF을 맞아30년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쇠고기국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국민의 하루 고기 소비가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을 만큼 먹어대더니 이제는 결식 아동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모두들 많은 임금을 받아 넉넉한 아파트를 장만하고 집들이를 근사하게 했었지만 이제는 수천의 가장들이 그렇게 살뜰하게 장만한 집에서 잠들지 못하고 홈 리스족이 되어 길거리를 떠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육신 중심의 너희 삶이 가져다 준 결과가 무엇이냐? 너희는 지금 배부른가? 따뜻한가? 오히려 남은 것이 있는가?
1장10절에“너희를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라는 말씀이 있다.이슬이 그치고 그로 인해 산물이 그치는 불경기가 찾아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를 인함이다.먹을 것이 없어서 거할 곳이 없어서 궁색해서 하나님의 성전 역사를 계속할 수 없음이 아니라 성전 건축을 향한 진실된 열망이 없어 그저 사람 중심으로 살기 원하는 너희들의 마음 중심 때문에 산물이 그치고 결핍이 엄습했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바로 우리 때문이다. 백성이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정치보다는 정치하는 사람이, 경제보다는 경제 하는 사람이, 앞장선 사람과 따라가는 사람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때문이다.오늘의 한국적 상황을 해결하고 온갖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접근법과 해결법이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남김없이 들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 없는 삶을 불어 버리시는 하나님
1장9절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 11절에 “내가 한재를 불러…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2장17절에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으로 쳤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는 인간의 노력과 애씀으로 피폐해진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적나라한 모습, 건강과, 사업이,국가가 하나님이 세찬 입김 앞에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2장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질을 원하는가? 하나님은 학개 선지를 통해 말씀하신다. 물질은 다 내 것이다.내가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할 것이다. 물질을 축복으로 받기를 원하는가?그 렇다면 내 뜻에 복종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줄 것이다.또한 나 여호와를 위해 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시편127편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 바란다.
오늘부터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2장15절에는 “이제 청컨데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전이 파괴되어 예배할 수 없었던 때를 추억하라는 말씀하고 있다. 외부적 여건 때문에 그리고 내부적 여건의 중함 때문에 성전의 기초석만 놓고 더이상의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던 때를 추억하라는 말씀이다. 영적 각성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즉시로 이루어질 수도 있었음에도16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을 제발 좀 떠올려서 삶에 적용시키기 바란다는 말씀이다.
우리 한국 기독교가 선교120년사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우리에게 의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나? 우리야말로 기초석만 놓은 채 중지하고 덮어두고 방관만 하며 먹고 마시는 일로 기회를 상실하고 육신적 축복에만 매달려 있지 않았는가?오늘부터 우리의 어제를 추억하여 보아야 한다.
2장18절에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고 학개 선지자는 말한다. 일의 시작, 그 처음을 추억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귀한 은사이다. 돌아온 그들은 희망과 소망에 부풀어 있었다. 구월 이십 사일 여호의 전 지대를 쌓던 날에는 제사장들이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렸다. 백성들은 너무 감격하여 통곡하기도 하였다(스3:13). 다시 한번 그때의 흥분과 열심으로 돌아가자. 그 때 포로 되었던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로부터 건져 올리신 여호와를 기억해 내고 하나님의 의도하심에 순종하라고 학개는 호소한다.그리하면 하나님은 오늘부터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2장19절에는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씌여 있다. 백성들아 너희가 내게로부터 등을 돌리면 그 때부터 나도 너희에게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너희가 나 여호와 하나님께 무관심하게 되면 너희 스스로에게 무관심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전을 재건할 마음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마 하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부터라 함은 그들이15년 동안 중단했던 하나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할 때부터이다.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 간다는 말이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다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내리시는 복을 받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결단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정리해 보자 이는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라는 구절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1장8절에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할 인생들의 사역을 말하시는 데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모두 자신의 소욕만을 위하는 백성들임을 경계하시고 정결하고 온전한 영성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땅에서 추구하던 것들의 찌꺼기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애쓰고 힘써서 산위에 올라야만 가져올 수 있을 만큼의 정결하고 성결된 것, 시내산에서 영광 중에 임재 하시며, 거룩한 율법을 주신 바 됨같이 바로 그 거룩한 산에 올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지극한 영적 회복을 요구하시는 것이다.그리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영광을 얻겠다는 말씀이시다.
또1장13절에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노라고 선언하시고 그 백성들의 의식을 고취시켜 그들이 순종하고 완전 굴복할 때에 함께하사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게 하심을 볼 때 이는 분명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라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의지 표명이 아닐 수 없다.
2장4절로 부터는 하나님의 격려와 축복과 약속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전하고 있다.여호와가 말하노니 “스스로 굳게 할지어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 지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 옛날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던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셨던 말씀으로 지금도 그 말씀과 동일하신 격려의 말씀을 두번이나 반복하심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염려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이다.세상에 이보다 더 확고한 말씀이 있을 수 있으랴!
더 나아가5절에는 지금도 모든 백성들이 기억하고 있는 애굽에서의 대 탈출 때를 상기시키시며 그 때 그 백성을 보호하던 나 여호와의 신이 너희 중에 머물러 있다고 “두려워 말라”고 당부하신다. 당시 히브리 백성들을 고난과 압제 속에서도 건재하게 했던 유일한 의식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앙망하는 믿음뿐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 말씀이 가지는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포로 생활, 눈물, 고난, 핍박으로 노심초사할 때 얼마나 빌고 찾았던 엑소더스의 여호와 하나님이었던가? 이제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동행 동재의 선언이 고통 중에서도 다시금 성전 재건을 결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리 위에 임한 것을 보라!
또한2장6~9절에는 과거에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자들이 지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지어져 갈 새 성전이 인간적 시각으로 볼 때 모양이 없고 다소 초라하고 규모도 작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것을 들으시고 새로이 지어지는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며 또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을 충만케 하리라”하시며 “이 전의 영광이 이전 영광 보다 크리라”는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희망과 소망의 말씀을 주시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받고 지난 날 내 소위를 살펴보아 지극한 회개와 완전한 굴복으로 엎드리되 영적 쇄신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우선되어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성경의 원리는 항상 똑같다. 그것이 신명기의 언약이며, 선지서의 메시지이다.
불순종은 고통,회개는 새역사의 시작이다는 원리이다. 성도들의 축복과 저주의 원리는 단순 영적 공식이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 속에서 늘 끊임없이 방황하고 시행착오 한다. 그것이 출애굽 광야 역사이며, 바벨론 유수의 역사가 아닌가? 순종은 행복의 길,불순종은 불행의 길이다.이 두 길이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늘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령 충만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학개서를 통해 우리는 회복의 원리,형통의 원리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았다.자신의 행위를 살피면서 스스로 각성하며 오늘 복을 내리시는 원리를 따라 순종하며 살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