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은 어느덧 미국 콜로라도 주의 애스펀, 그리고 그곳에 자리한 마룬벨(Maroon Bells)을 향하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이 스며든다. 마치 잊혀질 뻔했던 기억들이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처럼 하나둘 고개를 내미는 듯했다. 그리움과 회상이 짙어진 지난 화요일 덴버에 사시는 둘루스 교회 박병은 목사님과 함께 그토록 소망하던 마룬 벨로의 여정을 떠났다.
집에서 약 4시간 거리의 콜로라도 주 애스펀에 위치한 마룬벨(Maroon Bells)은 미국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장소 중 하나로, 해발 14,163피트(4,317미터)의 마룬 피크와 14,019피트(4,273미터)의 노스 마룬 피크로 구성되어 있다.
이 봉우리들은 붉은색 사암이 섞인 특유의 암석 지형 덕분에 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 두 산봉우리 아래로는 맑고 잔잔한 마룬 호수(Maroon Lake)가 자리하고, 그 위로는 노랗게 물든 애스펀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잎사귀들이 마치 눈송이처럼 떨어지곤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잎사귀 소리가 고요한 산속을 가득 채우고 나는 가을의 절정을 맞이한 이곳에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마룬벨의 자연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힘든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산봉우리 위로 번지는 햇살과 황금빛으로 물든 애스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절경은 마치 인생의 찰나를 상징하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자연 속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순간은 오직 잠깐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애스펜 숲은 나의 마음의 지성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것 같다. 성경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라고 말한다.
가을빛 속에서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도 이 애스펀 나무들처럼 순간순간이 황금빛으로 빛났던 때가 있었다. 청년 시절, 나는 마치 초록빛 나뭇잎처럼 생동감 넘치고 활기가 넘쳤다. 그때는 아직 삶의 풍파를 몰랐고, 모든 것이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인생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점차 가을의 나무들처럼 변해갔다. 경험과 상처, 기쁨과 슬픔이 내 삶에 색을 더해주었고, 그 색은 이제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마룬벨을 걷다 보니 마치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의 산책로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길과 다르지 않았다. 때로는 부드럽고 평탄한 길을 걷지만, 때로는 가파르고 험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룬벨의 절경 속에서 나는 자연의 순리를 깨달았다. 우리가 맞이하는 계절들처럼, 인생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와 우리 모두는 때로는 높은 산을 오르고, 때로는 깊은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마룬벨의 험준한 산과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나의 삶도 이와 같음을 새삼 느껴 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잠시나마 이곳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영혼이 새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룬벨의 경치를 보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는 말씀을 떠올린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어려움이 있지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라는 믿음의 산봉우리를 트레킹 한다.
또한, “주께서 나의 발을 넓히사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편 18:3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 길을 인도하심을 믿는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3)는 약속을 붙들고, 미래의 하나님 나라, 신령한 애스펀의 나라를 소망한다.
가을의 마룬벨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는 내 마음속에 울림을 주었다. 특히 마룬벨의 호수에 비친 황금빛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마치 내 삶도 이 호수처럼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었음을. 좋았던 순간, 아팠던 순간 모두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었다. 호수는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나 또한 내 삶의 모든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마룬벨의 가을은 보다 서정적이고 은은하다. 붉은 단풍의 강렬함보다는 애스펀 나무의 부드러운 황금빛이 주는 따스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이곳의 가을은 조용히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라,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다. 마룬벨의 가을은 잎사귀 하나하나가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게 한다.
마룬벨을 걸으며 나는 내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의 애스펀 나무들은 매년 가을마다 잎사귀를 떨어뜨리며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나에게 다가오는 변화의 시기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인생의 가을, 나에게도 새로운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스펀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