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문화·예술 파도가 주인공일까, 후지산이 주인공일까?

[알고 보면 재미있는 명화 ⑤] 파도가 주인공일까, 후지산이 주인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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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파도가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나올 듯 솟아 있다. 파도 끝의 흰 거품은 날카로운 발톱처럼 뻗어 있고, 그 아래 작은 배들은 거친 물결에 휩쓸릴 듯 위태롭다.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의 대표작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아래(Under the Wave off Kanagawa)」, 흔히 「큰 파도(The Great Wave)」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그림을 처음 보면 당연히 거대한 파도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호쿠사이가 1830~32년 무렵 제작한 목판화 연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 가운데 한 점이다. ‘후가쿠’란 바로 후지산을 뜻한다. 다시 말해 연작 전체의 주인공은 파도가 아니라 후지산이다.

그 사실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 한가운데 거대한 파도의 틈 사이로 아주 작은 삼각형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후지산이다. 실제로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호쿠사이는 원근법을 이용해 멀리 있는 후지산을 조그맣게 그렸다. 반대로 눈앞의 파도는 산보다 훨씬 크게 표현했다. 거대한 것을 작게, 순간적으로 사라질 파도를 크게 그린 셈이다.

파도 아래에는 사람들도 숨어 있다. 자세히 보면 세 척의 긴 배에 사람들이 몸을 낮추고 앉아 있다. 당시 빠르게 움직이던 운송용 배로, 생선 등 화물을 에도, 오늘날의 도쿄로 실어 나르던 배였다. 사람들은 거센 파도에 맞서고 있지만 멀리 보이는 후지산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와 움직이지 않는 산의 대비가 이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높인다.

파란색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에는 당시 일본에서 비교적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서양 안료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가 쓰였다. 호쿠사이는 이 선명하고 깊은 파란색을 전통적인 색채와 함께 활용해 바다와 하늘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오늘날 우리가 「큰 파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짙은 파란색도 이 작품의 인기를 높인 중요한 요소였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후가쿠 36경」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작품 수가 36점보다 많다는 것이다. 연작이 큰 인기를 끌자 10점이 더 제작돼 모두 46점이 됐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작품이 바로 「큰 파도」다.

19세기 후반 일본 미술이 유럽에 널리 알려지면서 호쿠사이의 작품 역시 서양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 미술에 대한 열풍인 ‘자포니슴(Japonisme)’이 확산됐고, 인상주의를 비롯한 서양 미술에도 새로운 구도와 색채 감각을 전했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La Mer)」와 관련해서도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이 자주 언급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파도일까, 후지산일까. 눈길을 가장 먼저 빼앗는 것은 분명 거대한 파도다. 그러나 그림의 제목이 아니라 연작 전체의 주제를 생각하면 중심에는 언제나 후지산이 있다. 거센 파도와 불안한 사람들은 한순간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뒤의 작은 후지산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처음에는 파도를 보고, 두 번째에는 배를 보고, 마지막에는 멀리 있는 후지산을 찾아보자. 같은 그림인데도 무엇을 먼저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그것이 2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호쿠사이의 「큰 파도」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작품 정보: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아래(Under the Wave off Kanagawa/The Great Wave)」, 「후가쿠 36경」 연작, 약 1830~32년, 다색 목판화, 종이에 잉크와 채색.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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