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E. 터너 목사의 아름다운 봉사 흔적과 유산
-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한 한 장의 사진과 이름
시애틀에서 한달간 머물며 아침 7시ㅡ9시까지 시애틀 북부 쇼어라인의 YMCA에서 거의 매일 피크볼을 쳤다. 10년전 부터 이곳에서 아침마다 피크볼 공동체가 어김없이 모여 왔다고 시작자인 릭이 말했다. 그런데 나에게 유심히 한 장의 사진과 이름 하나가 시선이 멈추었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Dale Turner Family YMCA. 수많은 사람이 운동하고, 자녀를 돌보고, 이웃을 만나며, 건강한 일상을 세워 가는 공간 한가운데에 한 목회자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단순히 과거의 유명 인물을 기념하는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무엇을 사랑했고, 누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내어놓았으며, 어떤 공동체를 꿈꾸었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흔적이다. - 예배당의 담을 넘어 도시를 품은 목회자
데일 E. 터너 목사(Rev. Dr. Dale E. Turner, 1917–2006)는 시애틀의 교회와 시민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긴 목회자였다. 그는 1958년 시애틀 University Congregational United Church of Christ에 부임하여 1982년까지 24년간 목회했다. 당시 그는 매 주일 약 1,500명의 회중 앞에서 말씀을 전했지만, 그의 사역은 단지 큰 회중을 이끄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복음이란 인간의 삶을 더 따뜻하게 하고, 더 책임 있게 하며, 더 넓게 이웃을 품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다.
터너 목사의 설교는 일상과 멀리 떨어진 종교적 언어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고독과 실패, 가정의 갈등과 사회의 불안, 노년의 쓸쓸함과 죽음 앞의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을 최종 언어로 삼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에는 늘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친절과 용서, 그리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사랑에서 출발했다. 그의 온유한 유머와 현실적인 지혜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 시민의 영혼을 돌본 ‘공적 목회’와 칼럼의 울림
1982년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뒤, 터너 목사의 사역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는 1983년부터 《시애틀 타임스》에 종교 칼럼을 연재했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주 독자들을 만났다. 그의 칼럼은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만 보내는 글이 아니었다. 종교와 거리가 있는 시민들, 인생의 의미를 묻는 이들, 상실과 불안을 겪는 이들에게도 그의 글은 조용한 친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는 어려운 신학적 개념을 앞세우기보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터너 목사의 삶은 ‘공적 목회’의 아름다운 본보기가 된다. 그는 강단에서는 목회자였고, 신문 지면에서는 시민의 영혼을 돌보는 칼럼니스트였으며, YMCA에서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참여하는 봉사자였다. 교회, 언론, 시민사회의 영역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그에게는 모두 하나의 소명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분리될 수 없으며, 신앙은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드러나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 모두를 하나로 잇는 공동체, YMCA에 남긴 헌신
YMCA가 그의 이름을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Greater Seattle YMCA는 터너 목사를 교회 지도자이자 《시애틀 타임스》 칼럼니스트, YMCA 이사회 구성원으로 소개한다. 또한 그가 서로 다른 모든 배경의 사람들을 연결하여 공동체를 세우는 데 평생 헌신했다고 평가한다. Dale Turner Family YMCA는 그의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존중과 참여의 문화를 세우고, 다양한 구성원을 섬기는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의 봉사 흔적은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남아 있다. 공동체는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나이와 인종, 경제적 형편과 종교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길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YMCA는 본래 젊은이의 건강과 인격 형성, 가정의 회복과 지역사회의 연대를 위해 출발한 운동이었다. 터너 목사는 이러한 YMCA의 정신이 복음의 이웃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 삶의 끝에서 던져야 할 참된 질문
한 목회자의 이름이 교회당의 현판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공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Dale Turner Family YMCA는 운동 시설이면서도 청소년과 가족, 이웃들이 서로 연결되는 장소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배우고, 청년들은 성장하며, 어른들은 건강을 돌보고, 주민들은 함께 지역사회를 경험한다. 터너 목사의 이름은 그렇게 특별한 기념행사 속에만 존재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이것이야말로 봉사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일 것이다.
터너 목사에게 귀속되는 유명한 문장은 그의 삶을 압축한다. 인생의 끝에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주었는가이며, 얼마나 많이 이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행했는가이고,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가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은 성공의 기준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세상은 소유와 승리와 축적을 앞세우지만, 그는 나눔과 실천과 희생에서 삶의 진정한 무게를 보았다. - 사랑과 나눔으로 증명되는 영원한 유산
성경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2)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하라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지친 이의 말을 들어 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공동체의 약한 지체가 홀로 남지 않도록 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터너 목사는 이러한 사랑을 강단에서 가르쳤을 뿐 아니라, 글과 시민사회 봉사를 통해 실제 삶의 언어로 번역했다.
시애틀 YMCA에서 마주친 사진 한 장은 그래서 과거의 인물을 단지 추억하게 하지 않는다.
데일 E. 터너 목사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연결하고 섬기는 삶을 살았기에 그의 이름은 오늘도 지역 공동체 속에 남아 있다.
그의 유산은 거창한 업적의 목록보다 한 가지 분명한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타인의 짐을 함께 지는 데서 증명된다. Dale Turner Family YMCA의 이름은 바로 그 복음의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를 오늘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