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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찾는 융합형 인간, 이미옥 박사의 평생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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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전문가·교육자·작가·사회활동가… 지적 호기심이 만든 전인적 인간의 삶

AI시대에는 ‘전인적 인간’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전인적 인간이란 한 분야의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를 넘어서, 다방면에 두루 균형을 갖춘 제너럴리스트이자 타인과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융합형 인간(Polymath)을 뜻한다. 한 마디로 ‘다 잘하는 사람’ 이다.
전인적 인간은 어떻게 될 수 있으며, 우리 아이들을 전인적 인간으로 키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학 박사를 포함한 5개 학위 보유자·신문기자·작가·통역사·한국어 교사·민주활동가·환경운동가·여성운동가 등 한국과 미국에 걸쳐 광범위한 사회 분야에서 일평생 활동해 온 유명 한인 보험 브로커 이미옥 씨를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 들어선 이미옥 박사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페이스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라고 기자의 이름을 물었다. 미국 대형 보험사 스테이트팜에서 45년째 활동하며 로컬 직원을 여럿 고용한 에이전시를 운영 중인 베테랑 보험 전문가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과거 덴버 아일리프 신학대를 방문한 故김수환 추기경의 대담 패널로 함께했다. 콜로라도를 방문한 故함석헌 사상가의 통역사로 활동했다. 소설 <장길산> 으로 알려진 황석영 작가가 잠시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덴버연합감리교회(현 덴버 산위의교회 부지)에서 함께 활동하며 쉴 거처를 마련해 주고 동고동락했다. 故이희호 여사가 콜로라도에 방문했을 때 수행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현 콜로라도 통합 한글학교를 창립한 한인 사회의 주역이자 덴버대학교·콜로라도대학교 한국어 강사, 연합감리교 특별강사 등 미국 사회의 교육 지도자로 활동했다. 평화통일 활동과 공공외교 활동을 통해 캐서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 등 삶의 곳곳에서 한·미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했다.

“지적 호기심과 인간을 향한 관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고 말하는 이미옥 씨는 이화여대에서 국문학 학·석사를 공부하며 이대학보 기자 활동 및 학생 잡지 <이화> <녹원>의 총책임자이자 이화 총학생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동시에 세상을 관찰하는 작가로서 문학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과 문인 활동 중 만난 김승옥 <무진기행> 작가, 염무웅 창작과비평사 대표, 故오태석 극작가, 故김현 문학평론가 등 굵직한 한국 현대사 인물들과 교류하며 시대 변화의 흐름을 함께한 동지이자 문인으로서 우정을 쌓았다.

한국사회개발원(KARE) 활동을 통해 한국 이민자들의 교육 신장에 힘썼다.

미국은 처음이지만 미국 영문학 교수가 될래요
이미옥 박사는 1969년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인에게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직업 찾기에 큰 도움이 되는 전공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던 영문학과 불문학을 내면의 열정을 따라 전공했다. 이어 북부콜로라도대학교 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교수가 되기 위해 많은 학교에 지원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억양이 남은 한국 이민자가 교수, 심지어 영문학 교수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범한 직장을 구하려니 학력이 지나치게 높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미국인 부군 파울러 박사와 막 혼인하여 넉넉치 않은 살림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녀에게 보험사 취업 기회가 찾아왔다. 기나긴 인문학과 교육학 배경과는 관련 없는 업종이었지만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먹고 살려니 그땐 그랬지요” 그 날을 그녀는 미소지으며 회상했다.

신입 보험 새싹이 대형 보험사 에이전시가 되기까지
신입으로 보험사에 입사하여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 그러다 보험 인수심사자(Underwriter)로 승진 기회를 얻어 보험 계약서를 검토하며 8년간 근무했다. 평소에 영문과 국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을 탐독하며 자연스럽게 늘어난 읽기 실력과 영문학 배경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청우’라는 필명으로 한국 문학작가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미국에서는 한국사회개발원(KARE) 회장으로서 미국 사회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콜로라도 로컬 미국 신문에 “이민자는 자기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평생 이방인이 아닙니다” 라고 당당히 천명했던 그녀에게도 유리천장은 존재했다. ‘여성 이민자’. 1980년대 보험 업계도 편견이 만연했다. 한계를 느낄 때쯤 그녀에게 대형 보험사 스테이트팜 독립 에이전시를 설립할 기회가 주어졌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500명의 고객 연락처를 확보하고 잠재고객의 숫자를 제공해야 에이전시를 열 수 있었어요. 당시 아는 한국인의 숫자는 한 손에 꼽았습니다. 그러니 도어노킹(방문판매)부터 옐로페이지(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A부터 Z까지 전화를 걸었지요.”

보험 세일즈는 미국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친한 미국인 선배는 맥주 한 박스를 옆에 두고 매몰찬 거절을 당할 때마다 한 모금씩 홀짝이며 세일즈 전화를 걸었다. 이 박사는 자신의 억양을 듣자마자 수화기에 대고 “이봐요, 난 여자와 외국인과는 거래 안 해요!” 면박을 주고 거칠게 전화를 끊는 미국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다시 다음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느 날 걸려온 보험 가입 전화와 느닷없이 집 앞에 등장한 영업 사원의 노력에 감동해 가입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녀는 까다로운 에이전시 조건을 충족하고 그린우드 빌리지에 사무실을 열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사무실을 운영한다.

여성운동가·환경운동가·평화운동가가 되기까지
“6.25 전쟁에서 부산으로 후퇴할 때는 너무나 잔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이 그 기억을 지워낸 것 같아요.”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낸 그녀는 미국에서도 고국의 평화를 위해 민주평화통일위원회 활동과 공공외교 활동을 지속했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부유한 광산 소유주 집안의 자제이면서도 혼란의 도가니였던 전후 시대에 금괴 배달을 위해 금괴를 허리춤에 두르고 부산행 배에 오르길 주저하지 않는 모험가였다. 그러나 여성이 설 자리가 없었던 과거 시대상은 모친을 좌절케 했다. 여전히 여성에게 제약이 만연한 시대를 살았던 이 박사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 열정이 학생 운동과 민주화 운동, 여성 운동을 향한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2009년에는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두 개로 갈라진 북미주 이화여대 총동창회를 덴버에 초청하여 이화 연합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미국 내 여성 지도자들의 분열을 막고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시도에 덴버 시장과 미국 사회 인사들도 격려를 보탰다.

“한 때 불교에 심취했어요. 그 때의 종교적 관심은 환경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지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모든 것을 주고받으니까요.” 샤머니즘·불교·기독교를 통틀어 종교 역시 그녀의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개신교인으로 뿌리내린 그녀는 미국에서 교육학 배경을 통해 연합감리교(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관할구역 총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감리교 지도자로서 환경 정의·세계 평화·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미국 전역에서 강의했다.

추진력·도전 정신이 중요… 거창한 목표 필요 없어
이 많은 변화와 도전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박사는 부드럽게 답했다. “영어로 드라이브와 그릿(Drive&Grit), 부츠 끈을 동여맨다(Pull up by bootstraps)라고 하지요. 추진력과 도전 정신, 얼굴에 철판을 깐 끈기가 사람과의 연결과 새 기회를 만듭니다.” 그녀는 이어 말했다. “타고나는 부분이 크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쫓아가는 것이 아닌 순간의 기회를 단단히 붙들고 놓지 않을 때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거든요.”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그녀는 아직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한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영어 북클럽 모임에서부터 100km를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참여하기도 하고, 낯선 곳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슬로우 리딩” 세일즈와 스몰토크 노하우
간혹 마주치는 이웃과의 스몰토크도 부담이 될 때가 많은데, 주한미국대사와의 커피타임에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미국인과의 스몰토크 노하우를 묻자 그녀는 뉴욕 타임즈의 북 리뷰 섹션 정독(Slow-reading)을 추천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시사와 인간을 향한 이해를 넓히는 데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스몰토크 걱정할 일이 없어요. 최소한 북 리뷰를 천천히 정독하면 현재 주요 사회적·지적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이어 “다독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고 덧붙였다. 폭넓은 읽기야말로 그녀를 사방으로 튀게 만든 호기심의 연료였다.

이미옥 박사는 처음부터 ‘전인적 인간’이 되기를 목표하지 않았다. 살고 싶은 삶에 도전하고 지적 호기심을 따라 끌리는 모든 것에 몸을 던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AI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보기 드문 인간형이 되어 있었다. 한 가지로 정리되기를 끝내 거부한 호기심 가득한 산만함이 어떤 기계도 복제할 수 없는 인간만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녀는 다음 세대에게 당부했다. “타인에게 귀기울이고, 모든 것에 쉽게 감동하고, 세상과 나누며 소통하세요.”
AI 기술을 통한 전인류적 시대 변화를 앞두고 자녀 교육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혼란이 깊은 시기, 이미옥 박사의 산 증언은 다시금 다음 세대를 다독여 준다.
<이수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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