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둘러 길을 나서려고 분주하게 준비합니다. 추위를 잘 타는 저라 시월 언저리이지만 장갑도 끼고 모자 달린 얇은 후디 위에 딸이 공군에서 복무할 때 입었던 부드러운 녹색 보온 잠바까지 덧 입습니다. 아내는 이 스타일이 너무 할아버지 같다고 놀리지만 그 뭐랄까, 아빠와 딸의 보이지 않는 연대가 느껴져 작아도 입으니, 이번 가을 저의 아침 산책 패션이 되고 말았습니다. 잊지 않고 지갑, 선글라스, 모자, 바나나, 컴퓨터와 책 두권도 데리고 갑니다. 책 한 권은 수요성경연구 모임을 위한 ‘the New Joy of Discovery’ 이고, 다른 하나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입니다. Café Allegro 에서 먼저 해야 할 성경묵상 질문을 만들고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다 보면 하릴 없이 저를 쫓아 왔다가 그냥 돌아갈지언정 일단 길을 같이 나섭니다.
아침 7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밖이 어둑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제발 Summer Time 으로 시간을 돌리는 바보 같은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말기를 바라며 두 팔을 경보 선수 처럼 짧게 휘두르며 빠르게 걷습니다. ‘8시 까지 송권사님께 성경말씀을 보내려면 더 일찍 서둘러 나왔어야 했어.’ 후회하며 GPS 를 켜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자동차 시간만 나옵니다. 6분이면 간다고 합니다. 걸으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면서도 그래도 초조한 마음에 GPS 를 걷기 모드로 해보려는데 안됩니다. 6분 걸린다며 자동차 길을 또 알려 줍니다. 순간 짜증이 납니다, 그녀에게. 또 입력을 해보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6분 걸린다고 합니다. 순간 현대문명의 이기를 따라가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의 답답함이 이런거겠구나 공감하며, 그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길을 가기로 합니다.
저기에 흑인 여성분이 큰 헤드폰을 귀에 걸고 천천히 걸어옵니다. 그녀는 이제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녀도 이 아시안 남성을 알아 보았는지 밝게 웃으며 다가옵니다. “굿 모닝!” 빠르게 걷느라 숨이 가쁘지만 크게 외치는 것은, 헤드폰을 뚫고 저의 반가움이 그녀에게 전해지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꽤 오래된 소나무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는 길이 나옵니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소나무와 달리 집 앞에 심기에 부담스런 모양을 하고 있어도, 그 밑을 지나가노라면 잠시 고향길을 걷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 길이 끝날 즈음에 닿아 있는 것은 East Lake Station입니다. 아침 일찍 나와 잔디를 깎고 다듬는 남미에서 오신 분들이 보입니다. 첫번째 분은 길 옆에 나 있는 잘잘한 풀들을 자릅니다. 흩어져 있는 풀들이 마치 미용실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들 같습니다. 그 위를 지나가는 기분이 괜찮습니다.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가는 연예인 되어 저도 폼나게 걸어 기차가 지나가는 철도 위를 지나 역을 떠나가는데, 두번째 분이 엔진으로 움직이는 Lawn Mower 를 멈추고 제가 지나가는 길 옆에서 제가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기다리고 계신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도 그의 배려에 응답하여 뛰기 시작하니 엄지 손가락을 척 올립니다. 제 또래로 보이는 그에게 저의 눈을 맟추고 웃으며 달려 지나갑니다.
발등이 아파옵니다. 지난 여름 목사님들과 건강을 위해 족구를 하다 다친 오른 발이 무리해서 걸으면 그만 걸으라 어김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목적지에 5분만 가면 되니 조금만 더 견뎌달라 부탁하는데, 제가 걸어가는 길에서 저를 향해 천천히 달려오는 자전거에 탄 백인 아저씨가 보입니다. 저는 인도에서 벗어나 왼쪽 풀 위로 걷고, 자전거는 인도가 아닌 도로 위로 천천히 방향을 틉니다. 서로를 배려하다 인도가 보기 좋게 비어 있는 곳으로 두 남자의 미소가 스며듭니다.
길. 길은 우리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도 길에서 그 분의 백성들을 만나셨고 제자들과 하나님에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십자가의 길에 이르러 우리를 지윽히 바라보시며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그 예수를 바울은 the Way 에 속한 자들을 잡으러 가던 길에서 만난 후, 로마 제국의 수 없는 길을 다니면서 the Way 를 전하다 예수님 처럼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길에 남기고 가게 될까요?
초조함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 누군가 산소 호흡기를 제 얼굴에 갖다댑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공동생활을 하는 너싱홈에 세워진Our Church 성도님들이 보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이 되면, 인생길을 잃은 분들이 소리 없이 우리를 기다리다 환영해 주시겠지요. 그 분들께 예수가 진정한 우리 삶의 the Way 인 것을 나눔으로 저는 다시 예수의 길을 가겠다 다짐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매주 그러는 것 처럼. 앞날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지금 이 가을 이 분들이, the Way, 그 길에서 저에게 손짓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2024년 10월 14일 (월)
on the Way
우리교회 이성한 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