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제가 덴버공항 6층에 있는 American Airlines 의 ticket counter 에서 일하던 2023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승객분들이 키오스크에 다가와 가방을 부치거나 질문이 있을 때 다가가 도와주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위한 훈련은 본사인 달라스에서 하루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6개월이 지난 후 기왕 하는 거 좀 더 어려운 일을 해서 임금을 좀 더 받고 스케줄도 내가 원하는 일정에 맞춰볼 요량으로 2주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승객들의 비행일정을 변경해 주기도 하고, 비행기와 공항을 연결하는 jetbridge를 운전하는 일도 해야 해서 더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나이들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제가 겪었을 수모와 진땀은 날마다 다양하기도 했습니다. 공항 가면서 오늘은 또 무슨 황당한 일이 나를 기다릴까 조마하며 일을 할 때, 그녀는 친절하게 저를 가르쳐 주었고, 때로는 제가 이유 없이 승객들로부터 인종차별이나 모욕을 당할 때, 엄마 키 밖에 되지 않는 그녀는 굵은 엘토 목소리를 높이며 나서서 싸워 주기도 했습니다. 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 무조건 저를 위해 소리 높이던 딱 그 엄마 입니다. 킹 수퍼에서 세일하고 있는 치즈를 더 사서 나누어 주고 때만 되면 음식을 만들어와 동료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고마워 카톨릭 신자인 그녀에게 우리교회 달력을 연말에 주니, 매월 1일이 될 때 마다 달력 사진을 찍어서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동료들에게 알리던 날, 제발 그만두지 말라고 할 때만 해도 다른 이들 처럼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제가 일을 그만 두던 날 특별한 저녁을 다른 이들과 함께 준비해 한 상 차려 놓고 십자가 선물을 주며 “Peter, we will really miss you…” 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안아주는데, 그녀의 저를 향한 사랑이 저의 그녀를 향한 것 보다 더 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날,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약속을 하고는 덴버공항의 직원전용 주차장에서 헤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 같다구요? 연인들의 사랑은 불 같이 타올랐다 등을 돌리기도 하지만, 이런 사랑은 삶에 다가오는 어려움과 시간이 지나도 계속 되어지는 성도들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랜 연인이며 그리스도안에 살아가는 순식자매와 함께 그녀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방문 목적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그녀에게 새해 달력과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직접 전달하기 위함 입니다. 우편으로도 보낼 수 있지만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교회 달력을 구겨진 채로 줄 수는 없기에 처음으로 그녀가 사는 Keenesburg 로 향합니다.
연락을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벨을 누릅니다. 꽤나 나이들어 보이는 현관문 옆에 달린 기계가 음성 메세지를 남기라고 안내합니다. 요즘은 이런 기능도 있구나 하며 인사말을 남긴 후 선물이 든 가방을 문 앞에 놓고 돌아서려는데 거라지 문이 열립니다. 그녀가 놀란 얼굴로 우리를 발견하고는 양말만 신은 채 뛰어나와 저와 아내를 안아줍니다. 추운 날씨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며 집 안으로 들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별 대신에 엘비스 프레슬리 사진이 떡 하니 자리하고 우리에게 웃고 있어 소파에 앉자 마자 우리도 웃습니다. 그녀가 엘비스의 팬이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마실 것을 권하는 그녀에게 정중히 사양하고 힘들어진 그녀의 건강상태를 묻습니다. 잘 걸을 수 없어 무릎 수술을 하려했지만, 당뇨 수치가 너무 높아 어쩌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를 대신해 안방에다 달력을 달아주고 자리에 돌아오자, 자기 시어머니가 동네에 사시니 만나보겠냐 묻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 같아 좀 당황스럽지만, 거절하기 뭐해 그러겠다 하니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으로 Peter와 아내가 왔으니 가도 되겠냐 묻습니다. 숨길 것이 없는 그녀 답습니다.
시어머니의 집은 마을 길 건너 세번째 집입니다. 걸어서 금방입니다. 미리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니 98세 된 감리교회의 피아니스트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며느리의 집 보다 더 깔끔하고 예쁜 집에 사는 그녀는 저의 친구 처럼 명랑하고 신앙이 좋으십니다. 목사 부부인 우리를 위해 찬송가를 외워서 연주해 주고, 우리교회 이야기와 Our Church 이야기를 경청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워 하십니다. 시어머님은 동네에서 가장 컸던 교회가 지금은 어르신들만 남은 제일 적은 교회가 되었다며 새로운 반주자가 와서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램을 농담 섞어 말씀하실 때 웃지만 가슴이 아립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문 앞에서 헤어지면서 다음에는 제가 기타를 가지고 와 찬양하기로 서로 약속합니다.
인구 오백명 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동네에서 각각 카톨릭 교회와 감리교회를 다니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둘 다 남편을 주님께 떠나 보냈습니다. 지금은 서로의 독립된 삶의 공간 속에서, 세월이 들여다 놓은 부족함을 채우며 그리스도인으로 서로 사랑하며 나이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며 돌아오는 겨울 저녁이 참으로 추운데 우리의 차 안은 실로 따숩습니다.
Keenesburg 에 나오미와 룻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글: 우리교회 이성한 목사 www.woo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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