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3, 2024

G20의 근시안

코로나19 사태 속에 초유의 비대면(화상)으로 진행된 G20 정상회의가 22일(현지시간) 종료됐다.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서방의 선진 7개 국가의 모임인 G7을 확대 개편한 세계경제협의기구로서 1999년 12월 베를린에서 발족됐다. 당시 지구촌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와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2008년 11월부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상급 회의로 격상돼 세계경제를 다루는 최상위 포럼으로 자리매김했다.

G20 정상회의는 유엔 총회와 버금가는 다자협의체로서 ‘국제사회 해결사’로서의 역할이 기대됐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G20 정상들이 매년 지구촌 공통 의제를 논의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지만 출범 이후 글로벌 경제가 나아졌다는 징후는 별로 없다. 오히려 글로벌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지고 가난한 국가들의 고통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냉정한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국제사회에서 G20 정상회의의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의장국인 이번 정상회의는 ‘모두를 위한 21세기 기회 실현’이란 거창한 주제로 열렸다. 취약계층 지원, 지구보호,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지만 최대 화두는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사태였다.

G20 정상들은 공동 선언문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 적정 가격에 공평하게 보급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지구촌의 반응은 냉랭하다. 자국 우선주의적 ‘백신 민족주의’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G20 정상들의 약속이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언문 사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자들에게 “백신 공급을 위한 빈곤국들과 대형 제약사들의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벌써부터 한발 빼는 모습이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백신의 공정 분배를 외쳤지만 물밑에선 자국 우선의 백신 확보 전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Pfizer)는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와 공동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내년 말까지 13억회분 생산할 예정이지만 이미 11억회 분량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부자 국가에 판매하기로 계약이 끝난 상태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moderna) 역시 올해 2000만회 분량의 백신을 생산하지만 최우선으로 미국에 공급한다.

선진국들의 싹쓸이 계약으로 지구촌 빈국들은 2024년에야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G20의 ‘공정한 백신 공급 약속’ 또한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백신 민족주의’가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 면역을 위해서는 국경을 떠난 공조가 필수 요건이다. 백신을 확보하고 자국민의 면역에 총력을 기울이려는 노력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냐 할 수도 있지만 상대는 바이러스다. 빈곤국가들이 백신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되는 동안 얼마나 여러 번의 심각한 변이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90% 가 넘는 면역력을 자랑하는 백신들이 앞 다투어 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나,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러스에 국한 된 얘기이다.

애써 만든 백신이 코로나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포기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모두가 동시에 좁은 비상구로 달려가는 것이라 한다. 더욱이 그 중 힘이 센 몇몇이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들의 일행을 먼저 내 보내겠다고 완력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어렵지 않게 지금의 G20가 떠오른다.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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