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의 시작 점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시작 된다. 나에게 아버지는 든든한 울타리 이셨고 2017년 5월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셨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나에게는 생생하게 살아 계시다. 아마도 내 안에 계시다가 내가 세상 뜰 때 아버지도 비로서 가실 것 같다.
요셉 이라는 세례 명을 가지신 아버지는 성인이 되셔서 오랜 생각 끝에 세례를 받으신 신중한 카톨릭 신자 이셨고 성공회 신부 님이 친한 친구 중 한 분 이셨다. 말 년에 한동안 냉담하시다가 돌아 가실 때에는 아들 부부가 섬기는 주안 장로 교회 성도로 장례 예배가 치러졌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내게 카톨릭과 개신교 교회에 관한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노년은 서예가로 사셨고 우리들에게 많은 글씨를 남기셨다. 의사의 간곡한 만류 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시겠다고 퇴원 하시어 집에서 한 달 정도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효자 남 동생이 옆에서 24시간 지켰고 부자 간의 갈등이 사랑으로 녹아 확인 되는 귀한 시간 이였다고 한다.
로멘티스트 아버지는 엄마에게 3번의 사랑 고백을 하시고 키우던 강아지를 부탁하시고 아들에게 이웃 사랑 하라는 말을 하시고 미국 큰딸은 언제 도착 하느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내가 서둘러 한국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병원 안치실에 옮긴 다음 이였다. 우연인지 아버지 가신 날 멈춘 거실 시계는 그 시간 그대로 지금도 친정 집에 멈추어 있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 한국 나가면 50이 훨씬 넘은 딸에게도 ‘큰딸 용돈’ 이라고 적힌 용돈 봉투를 주셨다. 나는 그 봉투가 너무 좋았다. 오래 오래 받을 수 있기를 기도 했다.
받기만 한 그 사랑 덕에 오늘도 나는 씩씩하게 잘 살아 내는 듯하다. 위로부터 받은 사랑은 거저 받았지만 이제 내가 베풀어야 할 사랑은 나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창경원 벚꽃 놀이! 어릴 적 아버지 팔에 안겨 바라 본 꽃 잎들은 찬란했다. 그 말랑말랑한 어린 날의 기억들을 힘들 때 하나 씩 꺼내 보면 나에게 힘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를 살아가게 해 주었던 원동력 인 것 같다.
해마다 피고 떨어지는 꽃 잎들을 표현 하기 위해 수 많은 붓 질과 그 위에 스크래치로 색을 긁어 내는 방법을 반복함으로 흐르는 시간이 한 화면에 중첩 되어 지도록 작업을 했습니다. 주로 뒷 마당에서 작업 하는 관계로 비와 바람과 햇살이 함께 해서 자연이 반은 그리고 내가 반 그린 느낌 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과 저 초록의 생명 의지가 다른 이에게도 전해져서 나의 그림이 그들에게 위로와 사랑과 희망의 시간들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