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5월 26, 2024

안나의 집을 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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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회에 귀감이 되는 사람을 찾아서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의 스토리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 코너는 사람을 알리거나 특정인을 높이기 위하여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어서 묵묵히 봉사하는 손길을 찾아내고 그들의 수고와 사랑을 기록하므로 한인 사회를 아름답게 세워 가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난호에 이어>

깡통을 주워서 판 돈을 저금하는 깡통 통장은 안나의 집을 세우는 종잣돈이 되었습니다
안나의 집에서 할머니들을 돌보는 수녀님들은 수고도 많이 하지만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생활하시다가 천국행 열차를 타고 떠나시는 할머니들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할머니들의 천진난만함에 웃을 일도 많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할머니들은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 그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육신의 이별은 항상 안타깝고 서운한 것이 사실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었습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 한 분이 밤중에 출입문을 열고 몰래 나간 것입니다. 수녀님들이 새벽에 일어나서야 할머니 한 분이 없어진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걱정되었겠습니까? 온 동네를 뒤졌고 연락 가능한 곳에 모두 연락하였으며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찾아서 모시고 왔지만, 혹시 사고라도 났다면 어르신을 돌보는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일 이후로 모든 출입문은 어르신들이 쉽게 열고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하였습니다.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어머니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집을 나가서 실종되거나 사고로 다쳤다면 아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현재 건강한 사람도 치매가 오면 누구나 이렇게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입구 앞 화단에는 옹기종기 작은 화분들 안에서 꽃과 야채들이 자라고 있다.(사진 이현진 기자)

안나의 집 인수를 위한 모금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안나의 집을 맡은 후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행정적으로 등록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당장 돈이 필요했습니다. 수녀님들은 바자회와 거라지 세일, 김치 판매 등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후원자 50명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홍보하였습니다. 그때 절박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생일, 성탄절, 부활절에는 축하와 감사카드를 보내서 한인 어르신을 위한 양로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소식을 들은 신자들도 한마음으로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수백 불을 가지고 와서 전 재산이라고 울먹이면서 기증한 분도 있었습니다. 수천 불을 기꺼이 기부한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안나의 집은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안나의 집을 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이사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 수녀, 성당 신자 등으로 이루어진 이사회가 만들어지자 모금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기부하고 싶은 분들도 믿고 기부할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수녀님들의 헌신과 이사님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모금액도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로라 시청에 공식적으로 안나의 집을 등록하였습니다
수녀님들이 안나의 집을 맡았지만, 기증받은 가정집에서 어르신들을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집은 아직도 은행에서 빌린 돈을 다 갚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재정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안나의 집은 S. Parker Rd.와 E. Quincy Ave.가 만나는 Furniture Row 가구점 뒤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건물은 2011년에 매입하였고 리모델링한 끝에 이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녀님들이 안나의 집을 맡기로 한 후에도 할머니들을 모시기 시작한 신자의 친정어머니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딸 가족은 이사했지만, 어머니는 따라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서 생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수녀님들이 맡은 후에는 음식이 좋아졌고 어르신들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초기에는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집안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고장 날 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손기술이 좋은 남성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마침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나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말이나 휴일에는 곤란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오로라 시청에 신청한 등록 서류가 공무원의 실수로 분실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서류를 다시 준비하여 신고필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치매 할머니 한 분이 벽에 걸어놓은 신고필증을 찢어버리는 바람에 감사에 지적을 받는 아찔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필자도 치매 어머니를 7년 동안 가까운 요양원에서 간접적으로 돌본 경험이 있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꼬집힘을 당하거나 손찌검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온종일 밥 달라, 물 달라는 분도 있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분도 있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거나 배설물을 뒤집어쓰는 때도 있습니다. 모두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일입니다. 어르신들을 탓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치매에 걸려서 이렇게 한다면 집에서 모시고 살 수 있는 자녀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할머니들은 즐겁고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나의 집에는 할머니 다섯 분, 수녀님 네 분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할아버지도 계셨으나 함께 돌보기 곤란한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할머니들만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매가 심하거나 움직이기 힘든 분들은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더 많은 손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나의 집에 한 번 들어오신 분은 설령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테믹 이전에는 10명의 할머니를 돌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운동 요법 등 해당 분야 전가에 의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이 좀 더 편하게 생활하실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으면 필자도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삶을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습니까? 

<정바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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