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달리거나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전하며 죽었다는 아테네 병사가 있다. 그런 연유인지 마라톤을 말하면 왠지 모를 비장함이 몰려온다. 모두의 주머니에 있는 셀폰으로 언제든 Face Time이 가능한 지금, 과연 우리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이들은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며 달리고 어떤이들은 그저 뱃살을 빼기 위해 달린다. 저마다 달리는 이유는 많겠지만 우리는 이제 더이상 죽기 살기로 달리지 않는다. 그렇게 급하게 전달해야 할 메세지가 있으면 달리기를 멈추고 카톡이나 Face Time을 해야 한다.
한인 마라톤 동호회 ‘거북이’를 시작하며 우리는 결심했다. 달리기 성적에 상관없이 천천히 모두 함께 건강하게 오래 달리자고. 당연한 말이지만 천천히 달려야 오래 달릴 수 있다. 이렇게 쉬운 일이 막상 ‘각’ 잡고 달리기를 시작하면 쉽지 않다. 지금도 우리는 자신만의 달리는 이유를 갖고 자신만의 스피드로 천천히 달리는 것을 연습한다.
콜팩스 마라톤 & 길치들
거북이 회원들 중에는 길치들이 많다. 길치란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들로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다행이도 아직 한명도 마라톤을 하면서 길을 잃어버린 회원은 없다. 이번 2023년 콜팩스 마라톤에는 21,000명이 참가했다.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큰 대회다. 10 마일, 하프 마라톤, 풀 마라톤 모두 대회 직전에 SOLD OUT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는 가운데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라톤 코스 중에는 다운타운 주변의 소방서를 통과하기도 하며 동물원을 가로질러 뛰기도 한다. 모든 교차로에는 경찰들이 길을 막고 혹시 모를 길치들의 이탈을 방지한다. 2마일 마다 설치된 급수대에는 각종 에너지 음료와 물을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가 길을 잃고 뛰쳐나가지 않게 열심히 응원을 해준다.
마라톤이 끝나는 Denver City Park에는 길을 잃지 않고 집을 찾아온 어린애들처럼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러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결승선 뒤에서는 주최측에서 모든 러너들에게 맥주를 제공한다. 마라톤 후 마시는 그 맛은 천상의 맛이다. 그런 기쁨을 느낀 사람들은 2024년 Colfax 마라톤을 언제 등록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
무아지경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Runner’s High라는 감정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는 신체적 스트레스가 어느 순간 극도의 행복감 또는 몰입감으로 변하는 지점을 말한다.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은 없지만 달리기를 하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우는 많다. 여러가지 일상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고 오직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때가 있다. 이런 순간들이 많아지면 마치 달리기에 중독이 되는 것처럼 뛰고 싶어지는 날들이 늘어난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어는 순간 수만명의 러너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덴버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분들이 이런 기쁨을 맛보았으면 한다. 2023년에는 아직도 콜로라도 여러 지역에서 준비중이 마라톤 대회들이 많이 남아있다.
<기사제공 김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