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한국 뉴스한국 재벌의 은밀한 취미(1)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한국 재벌의 은밀한 취미(1)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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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복원과 한국 공인 품종등록, 안내견 보급, 복제견까지

어떤 이는 산삼을 찾았고, 어떤 이는 난초를 키웠다. 어떤 이는 평생 진돗개를 키웠다.
한국 재벌들의 취미는 무엇이었을까. 사업가가 아닌 곳에서 그들은 어떤 취미를 어떻게 향유하며 살아갔을까. 그들은 왜 그런 취미를 가지고 살아갔을까. 지금은 작고한 한국의 역사적 재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세상에 남긴 개인 관심사와 일화를 조명한다.

진돗개가 한국의 개로 인정받기까지
2022년 9월 캘리포니아 고등학생 한나 이 씨가 UKC 미국 애견클럽 대회에서 한국의 진돗개 백구 ‘용맹’이로 2, 3등을 해서 화제가 됐다 (브리더 노령산맥). 진돗개의 한국 공인 견종이 되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삼성그룹 故 이건희 회장의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거의 전적으로 그의 공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어려서부터 진돗개를 키웠으며, 평생에 걸친 애견 사랑으로 유명했다. 1953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이건희 회장을 일본에 유학시킨 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어린 나이에 홀로 떨어져 지내는 아들이 안쓰러워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에세이집에서 회고한다.

“나는 6.25 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귀국했는데 당시에는 반일 분위기가 매우 팽배해서 일본에서 갓 돌아온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를 더욱 가까이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애견을 길러왔다… 일본에서는 외로움 때문에 진돗개를 키우게 됐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친구가 없어 진돗개와 더 가까이 했었다.”

(사진: 안내견학교에서 훈련중인 골든 리트리버. 출처: 삼성안내견학교)

반려견 매니아였던 이 회장은 진돗개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우수한 품종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세계에서는 진돗개가 한국의 개로 인정받지 못했다.
88년도 올림픽 이후 한국을 ‘개를 먹는 야만국’이라며 멸시하는 부정적 세계 인식도 한몫했다. 당시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던 진돗개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상태였다. 제대로 보존된 순종이 없어 진돗개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고,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진돗개가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발판인 되어 줄 국제 품종 등록에 도전했다. 그는 1960년대 말 진도를 찾아 사흘간 직접 장터를 돌고 섬 곳곳의 좋은 진돗개들을 찾아다녔다. 그 곳에서 거의 멸종 직전이던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했다.
그는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 그들의 조력을 받아 순종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0마리가 1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진돗개 순종 한 쌍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남동 자택 뒷마당에 200마리가 넘는 진돗개와 반려견을 키운 탓에 민원이 폭주했고 결국 에버랜드로 옮겨갔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이 회장은 세계 동물협회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한국의 반려견 환경과 본인이 직접 반려견을 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애견 연구센터, 안내견 학교 등을 견학시키며 한국을 향한 세계 애견계의 편견을 해소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는 1979년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대회’에서 진돗개 암수를 선보이며 진돗개를 공식적으로 세계 무대에 알렸다. 1982년에는 ‘세계견종협회’ 에 진돗개 원산지를 한국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2005년엔 전세계 순혈 견종 표준을 까다롭게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왕립 켄넬클럽과 최다 회원국을 보유한 FCI에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왕립 켄넬클럽이 주관하는 크러프츠 도그 쇼에서 2013년 진돗개가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맹인 안내견 보급 활동
1990년대는 강아지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희미했던 시기였다. 공공장소와 실내에서 강아지와 함께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인 안내견도 마찬가지였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세웠다.

1994년 첫 번째 안내견 ‘바다’ 이후 안내견학교를 통해 매년 안내견을 분양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안내견을 스스로 관리하고 훌륭한 반려견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지원과 노력도 함께했다. 그는 2000년도에 개정된 장애인 복지법 40조(장애인보조견에 대한 규정) 등 제도적 지원의 기반을 마련하며 안내견 인식 개선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왔다. 지금도 안내견학교를 운영 중이다.

‘벤지’ 반려견 복제 프로젝트
이 회장은 그는 복제 기술을 통한 안내견 복제, 마약 탐지견 복제, 멸종위기종 복원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동물 복제가 생소하던 시절 반려견 ‘벤지’ 를 복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3 마리의 복제견을 만들었다. ‘벤지’는 이 회장이 1986년부터 10년가량 키운 요크셔테리어였다. 요크셔 ‘벤지’가 죽고나서 그는 새로 입양한 포메라니안에 다시 ‘벤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 벤지도 2018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이 회장은 포메라니안 ‘벤지’의 체세포를 충남대 동물자원과학부 김민규 교수팀에 전달해 2010년 쌍둥이 복제에 성공했다. 2017년에는 두 번째 복제에 성공했다. 김 교수는 벤지의 체세포로 다시 복제를 시도할 계획은 없으며, 남은 체세포는 모두 폐기처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제견 3마리 모두 경기도 용인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기르다 일반인에 분양됐다.

이건희 회장은 에세이에서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벌의 진돗개를 향한 남다른 사랑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진돗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발자취를 남겼으며, 동물을 향한 그의 깊은 관심은 동물과 인간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공헌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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