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연대도 모른 체 아무 선입견 없이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싸한 절망의 느낌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아! 절망의 느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 다음은 고려청자의 청회색과 흡사한 3차 혼합색의 우수에 젖은 신비하고 세련된 색체의 아름다움 이었다. 이런 색은 그림 그린다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색이 아니며 오랜 경험과 시간이 묻어난 감성적 내면의 색인 것이다. 그리고는 난해했다. 눈에 맨 붕대는 뭐고 그녀가 들고 있는 나무 틀은 무엇이며 그녀가 앉아있는 언덕 비슷한 이 건 또 뭐지? 이렇게 아름답게 색체를 쓰는 난해한 그림을 그린 화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제목은 희망, 조지 프레드릭 와츠는 영국 화가로 이 그림은 1886 년 그의 나이 69세에 제작 되었다. 그의 인생에 관한 경험과 사고가 축척 되어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림이리라. 그녀를 희망 이라 칭한다면 그녀(희망)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외딴 곳에서 눈이 가리 운 체 줄 끊어진 리라(고대 현악기)를 부여잡고 연주 하고자 애쓰고 있다.
후대의 비평가에 의하면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 중 “판도라의 상자”를 형상화 했다고도 한다. “판도라의 상자”란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채로 판도라를 시켜 세상에 내려 보냈다는 상자인데 그녀는 호기심이 생겨 열어 보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간의 모든 불행과 재앙이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당황한 나머지 급히 닫아 희망만이 그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는 구약 선지서에 예언되었던 폐허가 된 찬란했던 도시 예루살렘이나 두로 에서 헤매던 이들의 모습, 혹은 먼 훗날 폐허더미가 된 지구상에서 절망하는 우리들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어떤 스토리를 한편의 그림으로 구체화 하려면 뛰어난 상상력과 상당한 지적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와츠는 직관력이 뛰어난 긍정적 내면을 가진 작가였음 이리라. 절망의 느낌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다니! 그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작가의 귀한 안목 때문이리라.
절대적 고독과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것. 그것은 희망!
69세 화가가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희망에 관한 메시지를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어찌 예술이 위대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절절히 이해 된다.
혹시 당신은 David Gray 의 life in slow motion이란 노래를 아는가? 그 노래를 들으면서 이 그림을 본 다면 그대는 서서히 침몰하여 끝내는 절망의 끝까지 다다라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 것이다. 물론 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절망의 끝에서 박차고 올라오는 그대를 건지시는 이의 희망 같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 “절망의 끝은 희망” 이것이 이 그림의 감상 포인트 인 것 같다.
이 가을 다들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