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3, 2022

회복의 시작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사상 최고의 시청률(투표율)을 찍고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드라마가 한 시즌을 마쳤다. 흥행은 말할 것도 없는 대성공이었지만 잔치를 벌이기엔 뭔가 찝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경쟁과 갈등이 투표라는 극적이고 냉정한 방법을 통해 일시에 명확해 지는 합의(合意)를 기반으로 한 인공기적(人工奇蹟)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선거가 끝나고 나면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상당히 신뢰할만한 예측이 허락되는 시간이 짧게나마 보장된다. 트럼프 정권 4년을 겪으면서 전례(前例)가 없는 일을 하도 많이 목격한 지라 이제는 크게 놀랍지도 않지만 그가 물러나는 이 상황에서도 역시나 처음 겪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자타공인 ‘당선자’인 바이든이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명하고 장관 인선을 예고하며 트럼프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대편에서 트럼프 현 대통령은 대선불복이라는 무리수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저 멀리 4년뒤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트럼프의 세 규합 정치 쇼로 사그라들고 말겠지만 또 한번 미국은 전통과 품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패인을 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매일 기습적인 트윗을 날렸고, 거짓말과 말다툼은 일상이었다. 나라는 분열됐고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염려했다. 이민자 자녀는 부모와 헤어졌고, 인종갈등은 확산됐다. 동맹을 윽박지르고 다자주의를 경멸했다. 중국과의 냉전으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은 불안해졌지만 미국이 딱히 손에 쥔 것도 없었다. 그가 마스크와 과학을 비웃는 동안 방역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24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의 등불이라고 믿었던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을 택했던 미국인들은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선거를 통해 트럼프 시대를 끝내고 반(反)지성주의에서 벗어났다. 세계도 혼돈에서 질서로 이동을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과 세계를 살릴 만병통치약을 가진 것은 아니다. 트럼피즘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선거를 거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지만, 반대로 그의 힘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표는 7000만표가 넘는다. 자신이 4년 전 얻은 표보다 많은 것은 물론이고, 2008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얻은 표보다 많다.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는 블루웨이브를 예상했던 여론조사와는 달리 공화당은 하원에서 의석 수를 늘렸고, 상원 다수당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이 가장 큰 패자(敗者)로 지칭되는 이유이다. 민주당이 의회 장악에 실패함에 따라 바이든 당선인이 통과시키려는 인프라스트럭처 건설, 의료개혁, 환경규제 법안은 의회에서 발목을 잡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인들은 바이든을 선택하면서도 트럼프를 단호히 거부하지도 못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잃게 됐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표심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며 지지 기반이 확대되고 견고해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놀라운 승리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공화당 내부의 심오한 이념적 변화의 시작이었음이 분명해졌다”는 평가를 내놨다.

공화당은 도덕적으로 파산한 트럼프를 등에 업고 분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길을 택할 것인지, 트럼프와 결별하는 새로운 길을 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고, 바이든 정권은 역대 최고 난이도의 국민 통합이라는 숙제를 받아 들었다.

정치판에서 휘둘러지는 무기들은 대개 양날의 검이거나 부메랑이다. 공격에 성공해도 부작용이 있고, 실패할 경우 고스란히 그 충격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번 선거는 분열과 선동이라는 정치 수단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갈등의 정치가 결국 패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음(陰)과 양(陽)을 모두 조명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이 드라마를 통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거대한 전환이 절실한 타이밍이다.

수년간 지속되어온 이기적 자국우선주의, 무역갈등, 인종갈등, 미 중 패권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주었던 COVID-19 등, 풀어내야 할 실타래가 산더미 같다 비록 미국 대선이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지는 못 했지만 회복의 시간으로 접어드는 큰 한걸음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를 바란다.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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