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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4월 19, 2021

혼불 명상

장작불을 지펴 그 불을 보고 마냥 앉아있고 싶어 여름이면 캠핑을 가길 원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문득 캠핑을 가야만 불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작불을 크게 지펴야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같이 크게 피울 것도 없이 작은 화로에 잔가지를 넣고 불을 지펴 눈앞에 두고 앉아 있고 싶었고 그 불을 쬐고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거지도 곁 불 쬐는 재미에 살아간다는 한국 속담이 괜한 게 아니다. 불 쬐는 재미는 정말 좋다. 그 불에 몸의 앞판과 뒤판을 돌려가며 쬐는 느낌은 최고다. 하물며 길을 떠돌던 거지에게 한 겨울의 곁불은 얼마나 맛나랴.


몇 주 전 평일에 근처 아웃도어 쇼핑 몰을 갈 일이 있었다. 좋았던 날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춥고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친구와 쇼핑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어가며 쇼핑몰 길을 산책하던 중에 느닺없이 날씨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세찬 바람을 피해 길모퉁이를 돌았더니 운 좋게도 길 한가운데에 설치된 난로에서 가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쇼핑객들을 위해 관리소에서 켜놓은 모양이었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을 정도로 기뻤다.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난로에 바짝 붙어 앉아 불을 쬐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더 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몇 주 전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저녁 중무장을 하고 아파트 동네길 산책에 나섰다. 단지 내 놀이터에 퍼붓듯이 내리는 눈을 홈빡 뒤집어쓰고 있는 놀이기구들이 예쁘고도 고독해보였으며 슬픈 듯 아름다웠다. 눈에 두껍게 덮여지고 있는 작은 호수와 바위들, 그리고 그들을 비춰주고 있는 가로등에 마구 달려드는 눈송이들과 그 역시 눈을 덮어쓰고 서있는 가로등들이 꿈속처럼 여겨지고 현실감이 들지않았다.


여긴 지금 북유럽 어느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데리고 나와 눈보라 속 산책을 즐기는 사람을 어쩌다 마주치면 저들도 나와 같은 취향을 가졌구나 싶어 반가웠다. 그렇게 걷다가 그곳에서 다시 난데없이 가스 장작 난로를 만났다. 랜턴불을 향해 달려드는 날파리처럼 저절로 발걸음은 난로불로 향했고 불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아 언 손을 맛있게 녹였다.


혼자서 화로 불을 작게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다. 불이 사그러든 후에는 어느 날의 노을빛 같을 빨간 잿불을 가만히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마냥 그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나는 평소에 일하다가 손님이 끊긴 시간이면 짬짬이 이발소 주변 동네 길을 걷는다. 각별히 한 시간씩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기는 여건이 허락지 않으니 하루 중에 사이사이 이발소를 빠져나와 조금 큰 보폭으로 힘차게 걷다보면 칠팔천 보를 찍기가 어렵지 않았다. 칠팔천 보면 오십분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걷는 걸음수이다. 거기다가 생활 걸음 수까지 합하면 대략 만보정도는 되리라 계산된다.


어느 날 낮에 이발소 건너편에 있는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가 반경을 좁혀 커다란 나무주변을 돌다보니 그 나무에 죽은 잔가지들이 많이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바싹 마른 잔가지들을 꺾어내면서 이것을 모아서 화로에 불을 지피면 불도 쉽게 잘 붙고 나무 타는 냄새도 좋으리라 싶어 봉지에 담으며 빠딱 말라 죽은 잔 가지를 솎아내기 시작했다. 헌데 멀리서 중년의 백인 남자와 젊은 백인 아가씨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네며 하는 말이 자기 나무를 손질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내 나무이니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놔두면 고맙겠다는 것이었다.


그 넓은 주차장의 안 쪽에 자리한 가게의 주인인가 싶었다. 주차장은 공영 주차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나무가 자기 나무라고? 그렇다는데야 뭐라고 하겠는가. 손에 들고 있던 잔가지를 고대로 그 자리에 떨어뜨렸다.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게 잘리고 꺾여진 나뭇가지들인데 저 인간이 지금 뭐래는 겨?! 김이 팍 새버려 이발소로 돌아왔다.

저 가게에서 나온 어떤 인간이 저게 자기 나무라고 건드리지 말란다고 했더니 리치는 그 가게는 백인들이 주인이고 백인들만 드나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샾이라 자기는 절대로 안 간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나도 몇 번 들어가서 구경해 본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작업복 등을 파는 곳이었다.


물건은 그저 그런데 가격은 비싸 살게 없다며 둘이서 뒤 담화를 하는데 거기에 스물 한 살짜리 우리의 여신인 모건까지 합세하여 고등학교 때 그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덧붙였다. ‘그 사람이 저 가게 매니저일 뿐인데 저 나무가 지 거라고 그런다구요? 말도 안되!’ 자신이 일할 때도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일로 걸고 넘어져 아홉 달 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라며 5불짜리 가게 쿠펀을 종업원들에게 나눠 줬단다. 그 참에 오빠 셔츠를 선물로 사면서 쿠펀을 쓰려고 했더니만 네 것을 사야 쿠펀 할인을 해주지 딴 사람 것을 사면 해줄 수 없다고 해서 황당했던 기억을 침을 튀기며 털어놓았다. 어쨌건 나는 그렇게 모은 나무쪼가리들을 발코니에 보관했다.

그 후 눈보라치는 어느 날 밤 새벽 두세 시에 잠에서 깼다. 전날 밤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다시 잠에 들 수가 없기에 이 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하다가 화로불을 피워보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두꺼운 코트를 입고 발코니로 나갔다.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신문지로 불을 붙이고 주워온 잔가지들을 조금 올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작과는 다르게 불은 쉽게 옮겨 붙었고 적절히 조그마한 화롯불이 되어주었다.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 눈까지 내려주어 화재위험도 없었고 세상은 고요하면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날의 혼 불 놀이는 따뜻한 불기운을 직접 느끼게 해주었고 최고의 명상이었다.
지금도 그 예쁜 불의 모양과 나무의 살 터지는 소리, 그리고 나무 타는 냄새가 눈과 귀와 코에 떠오르고 들리고 맡아져 내가 내게 해준 좋은 선물이었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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