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5월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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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살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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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취해 들어오는 남편에게 ‘왜 그리 술을 마시느냐’고 아내가 투정한다. 남편은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이놈의 조선 사회 때문’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사회라는 말을 처음 듣는 아내는 어느 요릿집 이름으로 이해한다. 남편이 ‘아아! 답답해!’하며 집을 나서자 아내가 절망하며 토해낸 말이 그 유명한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이다.

한국은 지난 20여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다. 인구 10만 명당 매년 25명 안팎이 자살한다. OECD 평균인 11.3명의 2.5배에 달한다. 또 하나의 1등은 우울증 유병률이다. 36.8%가 우울감·우울증 유병률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근 4명꼴로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OECD 평균은 30%다. 자살의 원인 가운데 60% 이상이 우울증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해 유병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 자살률도 낮출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2002년 3월 고시를 통해 우울증 치료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의 처방을 제한해 전체 의사의 96%에 해당하는 비정신과 의사들은 이 약품을 처방할 수 없도록 했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전공과 관계없이 어떤 의사든 처방할 수 있는 항우울제를 우리는 4%의 정신과 의사만 처방토록 해 우울증 치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자살률이 이 기간에 급증한 원인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반론이 제기되자 정부와 학계가 논의 끝에 지난해 말부터 SSRI 처방기준을 손질해 일반 의사도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이를 알고 있는 의사가 거의 없다고 한다. 우울증은 정신과 전공의만 치료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오랜 인식, 나아가 우울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초기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항우울제 처방만으로 우울증 발병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자살 충동의 40%가 경제적인 문제라는 조사도 있고, 자살을 계획하고 시도한 사람 중 대다수가 알코올 사용 장애나 의존 증상을 겪고 있으며, 자살 사망자의 30% 이상이 사망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통계도 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는 사회, 상대적 박탈감과 수치심이 과잉 분출되는 사회, 정치가 화를 북돋우는 사회,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불안과 절망이 넘치는 사회는 상호 연계돼 있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 상대적 박탈감과 괴로움을 잉태하고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사회가 술을 권하고, 우울증을 늘어나게 만들고, 자살을 권하는 것이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는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16일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자살 요인의 객관적·과학적 규명은 물론이고 각 부처가 고려하지 못한 이슈를 선제 발굴해 실용적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지금껏 거론되지 않았던 자살의 원인과 극복 방안을 논의하고 공론화해달라”고 위원들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자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겠다고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다만 지금껏 거론되지 않은 자살 원인과 극복방안이 또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원인을 찾는 데 힘쓰지 말고 나와 있는 결과를 토대로 제대로 된 처방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는 ‘정신 바루 박힌 놈을 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를 바로 잡는 것이 가장 우선이겠지만.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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