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11, 2023
Home 오피니언 정준모의 지혜의 샘터 하나님의 채찍과 치유

하나님의 채찍과 치유

서론) 욥기의 주제는 인간의 고난과 회복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두 가지 의미의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징벌로서의 고난이고, 또 하나는 훈련과 연단을 위한 고난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서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기4:7에서,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라고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세 친구들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하기를 욥기23:10에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신앙 인격을 거룩하게 하는 훈련과 연단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 두 가지 의미의 고난은 신비요 불가사의한 실존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욥기37:23에서, 고난의 신비를 알고 계신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나는 고통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고난을 겪어야 하지만, 고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실상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두 가지 실상을 욥기5:18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그렇다면, 하나님은 징계와 연단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두 손길을 인간을 향해 펼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욥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두 손길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첫째, 아프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왜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우리를 아프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훈에 대해 잠언 3:12은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징계를 위해 아프게 하십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없을 때, 히브리서 12:8에 의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징계는 수많은 영적 유익을 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징계”에는 ‘교정’, ‘훈련’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실 때,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교정하시고 훈련하십니다.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은 인생의 큰 실패 속에서 허무와 절망의 세월을 보낸 후, 그의 책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에서 헨리 나우웬의 말을 인용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살이는 쉽지 않을 것이고, 또 쉬워서도 안 됩니다. 어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과격해야 하고 쉴 틈이 없어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가는 그런 삶이어야 합니다.”

그는 또한 “<현재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려면 현재의 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크리소스톰의 말처럼, 떠나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재의 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자신에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시작되어지는 작업이다. 이것은 회심이다. 이 회심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신앙의 위인으로 저자는 아브라함을 증인으로 채택한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12:1). 거기가 아브라함의 떠남의 자리요, 궤도 수정 자리이다. 아브라함이 그 익숙하고 안전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부름과 관계한다. 그 부름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숨은 목적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부름은 마치 우주 왕복선을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로켓처럼 거역할 수 없는 거룩한 에너지이다.” 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서 우리의 습관과 인품, 그리고 신앙과 비전을 개조하는 은총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프게 하시는 손길은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사도바울도 “사형 선고”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 때문에 살고 싶은 소망이 끊어지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9에서 하나님의 징계의 유익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둘째,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두 손길을 통해 우리의 육신과 심령을 더 건강하고 성화된 상태로 만드십니다. 그런데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과 실수투성이인 우리 인생이 거룩하고 성숙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 서는 다양한 징계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징계의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근”입니다. 우리는 영적, 육적, 도덕적, 경제적, 정치적 기근을 당해서 곤고한 가운데 처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기근 때문에 성도는 철저하게 낮아지고 겸손해지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때 지친 영혼을 회복하십니다.

둘째, “칼의 위협”이 난무하는 전쟁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이 땅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큰 위협과 박해를 당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보호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명자는 특별히 보호해주십니다.

셋째, 비난과 조롱의 말들을 의미하는 “혀의 채찍”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3:6에서 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처럼 “혀의 채찍”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갖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혀의 채찍”으로 부터 우리의 정서와 영혼, 정신을 지켜주십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파산, 질병, 인생의 쓰나미와 같은 “멸망”에서 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두 손 즉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손에는 부귀가 영화가 있다고 밝히고 있읍니다(잠 3:16), 반면, 하나님의 징계의 손을 드시면 인생은 하루 아침, 삽시간에 폐허 잿더미를 만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온갖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나운 “들짐승”의 세력들로부터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 인생길에 뜻하지 않게 들짐승을 만나듯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각종 세력과 환경들이 예고없이 불청객처럼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징조임을 알고 바로 겸손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각성과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섯째,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들에 있는 돌”조차도 우리와 화목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땅을 옥토로 고치시는 하나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징계와 환난을 당하는 우리를 옥토와 같은 회복과 기쁨의 은혜로 싸매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싸매어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손길은 무엇입니까?

첫째, “장막의 평안함”입니다. “장막”이란, 일상적인 삶의 처소 또는 환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의 영혼을 회복하시고 복 주실 때 일상적인 삶에서 건강, 양식의 풍족, 주거의 평안과 가정의 화목을 누리게 하십니다. 솔로몬 왕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복을 누린 사실에 대해서 열왕기상 4:25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 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

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둘째, “생업의 평강”입니다. 욥기5:24의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산, 기업, 생업에서 윤택한 삶을 살도록 섭리하십니다.

셋째, “자손의 번성과 형통”입니다. 시편 127:3은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업이자 상급인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하고 형통할 것입니다.

넷째, “장수의 복”입니다. 욥기5:26은 장수의 복을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성화된 인격으로 종지부를 찍는 인생이 장수의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일상과 생업에서의 평안과 자손의 형통과 장수의 복을 통해 고난당한 성도를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욥은 하나님의 두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채찍과 치유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징계와 연단을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성도에게 의미 있는 고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2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고 흩어져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편지의 서두를 기록합니다. 고난과 시험이 오는데 왜 기뻐합니까? 하나님이 또 다른 손길 치유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싸매어주시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두 손길을 믿고 의지합니다. 고난을 주시는 손길을 가지신 하나님은 싸매어주시는 손길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욥기 1:21의 욥처럼 고백합니다.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에 늘 두가지 길을 허락하신다. 전도서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When times are good, be happy; but when times are bad,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Therefore, a man cannot discover anything about his future.“

그러므로 항상 형통할 때에도 교만하지 말고, 곤고할 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다. 오늘도 징계와 회복, 채찍과 치유의 두 손으로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는 주님의 주권적 사랑과 인도하심에 겸허히 우리의 삶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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