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문화가 뜨겁다. 오랫동안 중 장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트로트가 이제는 방송을 넘어 오프라인 무대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TV조선의 ‘미스 트롯’이 일으킨 트로트 바람은 시즌2격인 ‘미스터 트롯’을 통해 더욱 달아오른 양상이다. 지상파 방송사도 트로트 프로그램을 잇달아 제작하며 열풍에 가세했다. 트로트 장르로만 구성한 공연, 뮤지컬 등도 인기몰이를 하며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지금의 열풍에는 전조(前兆)가 있었다. 트로트와 테크노를 접목하여 젊은 연령대에게 크게 어필했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가 그것이다. 인기 예능 프로였던 ‘무한도전’ 등에서 크게 부각 되면서 역 주행을 이뤄낸 이 곡은 가사에 대한 호응이 뒤따르며 트로트가 가지고 있던 연령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어 초등학생도 흥얼 거리는 전 국민 애창곡의 반열에 올라 지금의 트로트 열풍의 시발점으로서 큰 역할을 해 냈다.
트로트의 인기가 중 장년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청률에 민감한 예능프로그램의 주요 소재로 트로트 장르가 소비된다는 것은 그것이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를 공략하는 데 주효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특이하고 새로운 콘텐트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자주 접해보지 않은 장르였기에 그것을 접하는 데서 오는 재미가 더욱 크게 어필한 것이다. 동시에 기존 소비자였던 중 장년층에게는 ‘가요무대’ 나 ‘전국노래자랑’ 등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난 트로트의 새로운 모습들이 주는 신선함과 함께 소위 프라임 시간대에 여러 프로그램들이 자리 함으로서 중심 소비자로 자리 매김 하게 되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가요계의 황금기로 불리는 90년대 이후 전반적으로 음악 방송들은 내리막길을 걸어왔으나 최근 트로트의 중흥으로 노래 나오는 방송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트로트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 변화함을 통하여 그 저변을 확대 하고 있다는 점이 문화 다양성 면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밝은 빛이 있으면 으레 그림자도 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열광과 환호를 이끌어 낸 중심에 있는 ‘미스 트롯’ 과 ‘미스터 트롯’을 좀 더 자세히 조명 해보자.
‘미스터 트롯’ 은 방송 5회차 만에 25%가 넘는 시청률을 찍으면서 종합편성채널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방송된 ‘미스 트롯’이 5.9%에서 시작해 18.1%로 막을 내리기까지 큰 성공을 거두며 ‘송가인 신드롬’의 열풍이 깔아놓은 꽃 길이 ‘미스터트롯’ 첫 회 시청률 12.5%로 이어졌던 결과다.
‘남성판’이 되며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시상 내역과 대우이다. ‘미스터트롯’ 우승 상금은 1억원, 가장 굵직한 부상은 대형 SUV다. 차량 가격만으로도 ‘미스트롯’ 우승 상금 3천만원을 웃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기획일 때 여성을 앞세우고 시장성이 확인되면 남성을 투입하는, 그래서 남성 출연자들이 훨씬 안전한 위치에서 더 큰 과실을 얻는 형태는 엠넷(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우승 상금 격차는 그 단적인 결과다. 그러나 액수만이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아니다.
“100억 트롯걸을 찾아라”와 “대한민국 1등 트롯맨을 찾아라”라는 홍보 문구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여성은 ‘100억’짜리 재화로서 가치를 부여 받지만, 남성은 ‘대한민국 1등’이라는 권위와 명예를 얻는다. 심지어 ‘100억 트롯걸’이란 수사는 우승자에게 100억을 위한 행사 100회가 보장된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방송과 별도로 100회, 혹은 그 이상의 노동을 더 해야 하고 그 행사가 회당 1억원의 출연료를 준다는 보장도, 그 100억원이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방송 안에서 쓰는 호칭과 단어들에도 묘한 차별이 묻어있다. 미스트롯에선 ‘걸그룹부’ 가 있었지만 미스터트롯에는 ‘보이그룹부’가 아닌 ‘아이돌부’가 있었다. 여성을 ‘걸’이라 칭할 때 남성은 ‘보이’가 아닌 ‘맨’이나 성별과 무관한 기본형으로 불리는 존재다. 같은 40대 참가자여도 ‘걸’이어야 하는 ‘미스트롯’과 ‘맨’일 수 있는 ‘미스터트롯’ 두 세계 사이엔 분명 무언가 다른 정서가 흐른다.
적잖은 참가자가 성적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멘트와 자막으로 이들의 몸매와 노출을 끊임없이 부각했던 ‘미스트롯’은, 역시 적잖은 참가자들의 훌륭한 무대와 별도로 선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쇼였다. TV조선 예능국은 프로그램 종영 후 기자회견에서 “당시 참가자들이 예선을 치를 때 입고 온 옷들이 더 야했다. 그 의상이 그들이 딛고 선 현실이라고 생각했다”며 “선정성 안의 진정성을 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부대 미션’ 등을 통해 참가자들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쇼에서 참가자 상당수는 더 절박하게 섹시 댄스를 추고 ‘행사 톤’ 애교를 보여줄 기회 이상을 갖지 못했다.
물론 ‘미스터 트롯’에도 선정성은 있다. 일부 참가자는 가슴팍을 드러내며 공중돌기를 하고, 상체 노출과 물쇼를 보여주기도 한다. 붉은 드레스 차림에 가슴 띠를 두른 참가자들이 줄지어 선 ‘미스트롯’ 오프닝이 미스코리아대회처럼 보였다면, 구릿빛 복근을 쓸어 올리는 붉은 장미를 클로즈업한 ‘미스터트롯’ 오프닝의 한 장면은 노골적으로 여성 대상 유흥업소를 연상시킨다. 즉, ‘미스터트롯’은 근육질 남성들의 노출을 바탕으로 한 공연 ‘미스터쇼’처럼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탈을 제공하는 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미스터트롯’이 판정단과 시청자의 마음을 끄는 방식은 ‘미스트롯’의 그것과 비교해 훨씬 다채롭다. 실제로 ‘미스터트롯’에서는 마술, 태권도, 비트박스, 난타까지 온갖 볼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버라이어티’(다양성)는 이 사회와 미디어 속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허락 받은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몸에 꼭 끼는 의상에 날씬한 체형, 완벽하게 꾸민 모습을 이상형이자 기본형으로 요구 받은 ‘미스트롯’ 참가자들과 달리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의 체형과 외모, 차림새, 움직임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다. 코믹한 실력자, 성실한 맏형, 재능 있는 효자, 타 장르 출신 강자 등 각자 사연 있는 캐릭터로 만든 대결 구조 역시 흥미롭다.
오락성과 흡입력 그리고 쇠퇴했던 장르의 재조명이라는 차원에서 ‘미스터트롯’은 자타공인 성공 케이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타 종편방송에 비해 예능분야에서 고전을 하던 TV조선입장에서는 분명히 홈런이라고 자축 할 만도 하다. 하지만 보수언론 방송국으로서의 한계인 것일까? 성 평등 인식이라는 디테일의 부재(不在)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