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 시절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곡이 모두 끝날 때까지 들은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방금 그 노래가 무슨 곡인지 물어보았다. 인상이 온화한 주인은 “가고파 후편”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곡에 얽힌 사연과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후 가고파 후편은 40년 넘도록 가장 좋아하고 즐겨 듣는 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 가곡 가고파는 1932년 1월 8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이은상 선생의 시조를 가사로 사용하고 있다. 이 시조는 이은상 선생이 어릴 적 뛰놀던 고향 마산을 그리며 쓴 10수 길이의 장편 시조였다. 이은상 선생의 친구였던 국어국문학자 양주동 선생은 1933년 숭실 전문학교 2학년 국어 시간에 이 시조를 낭송해 주었다고 한다. 양주동 선생이 가르치는 그 교실에는 작곡가의 꿈을 키우며 공부하던 김동진 학생이 있었고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 고 보고파라 보고파”라는 구절을 들으면서 뭉클한 감동을 받고 즉석에서 작곡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고파라는 곡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1939년 일본에 유학중이던 이인범이라는 청년이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한 전 일본 음악콩쿠르 성악부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우승하였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1등 상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인범이 성악에서 우승한 일은 한국 유학생뿐 아니라 국내에도 큰 용기를 준 큰 사건이었다. 이 수상을 계기로 이인범은 전 일본 도시를 돌면서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어디에서 공연하던지 가고파를 맨 먼저 불러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고 우리의 민족혼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가고파는 점점 널리 알려졌고 사람들이 많이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 노래는 시조 10수 중에서 4수까지 사용하여 곡을 붙였던 것이다.
김동진 선생은 경희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고파 시조의 나머지 6수를 작곡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을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20세 때 작곡한 가고파가 너무 유명해졌으니 나머지 6수는 전편의 느낌도 그대로 살리면서 더 깊이가 있어야 하고 이미 널리 알려진 국민가곡에 걸맞은 음률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무려 40여 년 동안 곡을 쓰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1973년 마산에서 열린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 시비 건립 현장에서 참석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김동진 선생이 가고파를 직접 부르게 되었다. 작곡자의 노래를 본인의 목소리로 들은 사람들이 나머지 6수는 왜 작곡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였다. 그때 김동진 선생은 나머지 6수에 대한 작곡을 빨리 마무리하기로 다짐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1973. 12. 10. 이은상 선생의 고희 기념에 맞추어 숭의여전 강당에서 테너 김화용씨의 노래로 가고파 후편이 발표되었다. 전편이 작곡된 지 무려 40년 만의 일이었다.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거이랑 달음질치고 물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로 시작되는 가고파 후편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고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전편보다 깊이가 있고 가사를 잘 살린 곡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20대 때에 작곡한 가고파 전편과 60대 때에 작곡한 가고파 후편은 40년의 시간을 이어주기에 충분한 감정의 깊이를 담고 있었으며 이인범이 나타내고자 했던 전편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곡이었다. 김동진 선생은 자서전에서 “쓰러져 가는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이 가고파 후편이었다”라고 고백하였다. 김동진 선생은 이인범 씨 장례식장에서 가고파가 널리 알려지고 자신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이인범 씨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2010년대에 들어서 ‘월간조선’에서 작곡가와 성악가 100명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가곡과 작곡자를 설문조사 한 결과 최고의 가곡으로는 “가고파”, 최고의 작곡가로는 “김동진 선생”이 선정된 바 있다.
이처럼 명곡이나 클래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감동을 주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서 두뇌 발달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면 Heavy metal이나 Rock 음악은 수준 낮은 음악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음악은 식물 성장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발표되었다. 식물을 똑같은 환경에서 키우면서 한쪽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Rock 음악을 들려준 후 관찰하며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지만, Rock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잘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음악은 감상하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마음 상태에 따라 느끼는 감동이 다르다. 마음이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한 젊은 시기에 듣는 것과 나이 든 중년 이후에 듣는 클래식이 같을 수 없다. 중고등학생 때나 2~30대 젊은 시절에 들었던 클래식의 감동은 6~70대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4~50대에 들었던 감동은 강도도 약하지만, 마음에 깊이 새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순순한 감정에 때가 많이 묻었고 가슴속 공간이 다른 많은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젊음의 때를 놓치면 젊은이로서 맛보아야 할 감동을 맛보지 못하고 지나가게 될 것이고 앞으로 영원히 그러한 감동을 맛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방안 가득 달빛 비추는 밤에 전등을 끄고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 바란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은 그만한 감동을 마음에 선물했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을 들으면서 마음과 정신과 육신에 신선함을 선물하는 멋진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