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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역사 알아보기

1876년 38번째로 연합에 가입한 콜로라도(104,185mi²)는 면적이 한국(38,691mi²)에 2.6배에 달하며 미국에서 8번째로 큰 주이지만 인구수는 한국의 1/10 정도 수준이다. 1848년 멕시코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맺어져 캘리포니아부터 콜로라도 로키산맥까지 미국땅이되었다. 1858년 콜로라도에서 금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정착민이 늘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콜로라도의 역사에 관해 연도순으로 알아보자. 

고대

현재의 콜로라도 지역에는 수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푸에블로 인디언의 선조인 아나사지(Anasazi) 원주민은 수렵, 채집, 옥수수 농사, 바구니 세공을 주로 하며 살았다. 550년경 구덩이 집을 만들어 거주하다 600년경부터 1300년경까지 메사 베르데 지역 절벽(약 600개의 절벽 주거지)에 부락을 형성해서 살았던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인디언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유럽인이 콜로라도에 도착했을 때 콜로라도 동부 대평원에는 코만치(Comanche), 아파치(Apache), 샤이엔(Shaine), 아라파호(Arapaho)족이 살았고, 로키산맥 지역에는 유트(Ute)족이 있었다. 콜로라도 평원 부족들은 티피(Tipee)라고 불리는 거주용 텐트에서 살면서 버팔로를 사냥했고, 로키산맥 산악 지역은 나뭇가지로 만든 위키업(Wickiups)이라는 움막집을 만들어 살면서 수렵 채집 활동을 했다.

유럽인의 탐험

콜로라도 지역에 처음으로 방문한 유럽인은 1541년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코로나도(Francisco de Coronado)였다. 코로나도는 금을 찾기 위해 이 지역을 탐험했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1682년 프랑스 탐험가 로버트 드라살(Rene-Robert Cavelier de La Salle)이 콜로라도 동부 지역을 탐험하며, 이곳은 프랑스 땅임을 주장했다. 1776년 영국을 상대로 미국은 독립선언을 하고, 1778년 프랑스가 영국과 전쟁을 선포해 미국을 돕는다. 1783년 승리한 미국과 패배한 영국이 프랑스 파리 조약에 서명해 미시시피강을 기준으로 동부지역은 완전히 독립한 미국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콜로라도 지역은 미국 땅이 아니었다. 

미국의 영토 획득 지도

루이지애나 매입

1803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북아메리카 대륙 중부의 방대한 루이지애나 지역을 매입하면서 콜로라도 동부 평원지역은 미국 땅이 된다. 미국은 육군 장교 제불론 파이크를 파견하여 1806년에 아칸소강을 따라 콜로라도 지역의 불법 모피거래를 단속하고, 인디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파이크스 피크산 지역을 탐험했다. 하지만 당시 콜로라도 남부인 스페인 식민지 멕시코지역으로 국경을 넘었다가 체포된 후 풀려났다.

초기 정착민

1800년대 초기 정착민들은 모피를 얻거나 동물 사냥을 위해 콜로라도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1821년 건축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미주리와 뉴멕시코를 연결하는 상업로 마치길인 산타페 트레일이 개통되자 콜로라도 남동부를 거쳐 사람들이 콜로라도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콜로라도 서부지역은 멕시코가 된다. 1840년대에는 산타페 트레일에 만들어진 콜로라도 남동부 마을인 포트 벤트(Bent’s Old Fort)에서는 사냥꾼과 인디언들을 통해 모피 교역이 크게 이루어졌다.

콜로라도주 연방 가입

1848년 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자 멕시코였던 콜로라도 서부지역은 이제 미국 땅이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58년 콜로라도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 이주를 시작한다. 골드러시가 시작되며 금 채굴 정착자들을 위한 공급 기지인 덴버는 당시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였던 제임스 덴버(James W. Denver)의 이름을 따와 1858년에 덴버란 이름이 붙여졌다. 1859년 파이크스 피크 골드러시가 알려지며 5만 명 정도가 몰려든다. 실제로 금은 지금의 잉글우드지역에서 발견되었고, 아이다호 스프링스, 브리켄릿지, 센트럴시티 지역에서 더 많은 양이 채굴된다. 1860년 7월 덴버에 자체 조폐국을 설립해 금화를 제조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네브래스카, 유타, 뉴멕시코, 캔자스 준주로 나뉘였던 콜로라도지역은 1861년 2월 28일 지금의 지도 형태를 갖추어 콜로라도 준주(Colorado Territory)가 된다.

콜로라도라는 이름은 “붉은색(colored red)”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의회가 1861년에 선택한 이름이다. 콜로라도는 산, 강, 평야의 웅장한 자연환경 때문에 “컬러 풀 콜로라도(Colorful Colorado)”라고도 불린다.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1861년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콜로라도 광부들도 전쟁에 참여한다. 콜로라도에 백인 이주민이 늘어나자 인디언을 몰아내기 위해  잦은 충돌이 생긴다. 급기야 콜로라도 준주 주지사 존 에반스의 계략으로 1864년 콜로라도 백인 의용기병대가 백인에게 우호적인 남동부의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 마을을 공격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원주민 150여 명을 살해하는 샌드크릭 학살 사건(Sand Creek massacre)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에반스 주지사는 사임했으나 인디언 거주지 제거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870년 덴버에 퍼시픽 철도가 개설되어 대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독립선언 후 100주년을 기념해 연방에 가입한 콜로라도주는 센테니얼 스테이트(The Centennial State)라고도 불리며, 1876년 미국의 38번째 주가 된다. 

1879년 리드빌에서 대량의 은이 발견되고 실버 붐이 일어나자 콜로라도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한다. 리드빌과 아스펜에는 건물이 들어서고 덴버는 금융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1890년 10월 파이크스 피크 근처의 크리플 크릭(Cripple Creek)에서 대규모 금맥이 발견되고, 1891년 브로드무어 카지노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개장했다.

1893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인  “아름다운 아메리카(America the Beautiful)”의 가사가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산을 여행한 캐서린 리 베이츠(Katharine Lee Bates)에 의해 지어졌다. 

1893년 은 공급 과잉과 셔먼 은 구매법 폐지 등과 함께 불어닥친 경제 불황으로 콜로라도의 많은 은 광산과 은행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발생해 경제 불황을 맞았다. 한편 농부들은 주로 강을 따라 농사를 짓고 마을을 만들었는데 주로 사탕무와 감자가 경작되었다. 1899년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정제소(Holly Sugar Factory)가 그랜드정션에 세워지기도 한다. 공장은 대공황 때 문을 닫았다가 1950년대 우라늄 공장(Climax Uranium Mill)으로 바뀌었다.

1900년대 

1906년 1월 29일 세계에서 가장 큰 가축 쇼로 성장한 내셔널 웨스턴 스탁 쇼(National Western Stock Show)가 덴버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1906년 덴버 조폐국에서 본격적으로 동전을 생산하였다. 

1906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열악한 이민상황을 파악을 위해 대한제국에서 파견된 박희병은 박용만과 함께 덴버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다가 1907년 6월 13일 36세에 위암으로 사망한다.

1907년 11월 15일 라스애니머스 카운티 프리메로(Primero) 탄광에서 갱도 붕괴로 한인(SWOK, Y. M, 40세)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덴버 한인사회는 유학생과 이민자를 중심으로 다운타운에서 여관 겸 직업소개소를 통해 철도건설과 광산에서 일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자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7월 7일부터 7월 10일까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덴버에서 개최된다. 같은 해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미주 최초로 각 지역 한인 대표 독립운동가가 덴버시내 그레이스 감리교회에 모여 독립운동 방향과 전략을 세우기 위해 애국동지대표대회를 개최했다. 박용만의 주최로 안창호, 서재필, 이승만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박용만은 1909년 해외 한인 최초로 네브래스카에 한인 소년병학교를 설립한다.

1910년 1월 31일 프리메로 탄광 폭발 사고로 한국인 9명을 포함한 75명의 사망자 발생한다. 이후로도 한인 광부들의 사망은 1914년 오크달 광산, 1932년 헤이든 광산에서 발생했다.

1910년 콜로라도주 인구가 약 80만 명까지 늘어났다. 농업은 쇠퇴하는 광업을 대신하여 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으며, 식품 가공업도 발달해 통조림 공장과 더 많은 설탕 정제소가 들어섰다. 

1914년 록펠러 가문의 탄광 광부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한다. 이로 인해 주 방위군과 탄광 보안대는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광부, 여성, 어린이 25명을 사살하는 러들로(Ludlow) 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커지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방군을 파견해 사건을 마무리 하고 관련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러들로 대학살로 인해  연방 정부는 노동법 관련 위원회를 창설하여 오늘날 근로자를 위한 많은 노동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1915년 1월 26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서명으로 로키산 국립공원이 개장한다. 1900년대 자동차의 등장은 콜로라도주 석유 산업과 관광 산업에 번창의 길을 마련했다. 자동차는 휴가를 위한 필수 수단이었으며, 콜로라도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1920년 본격적인 원유 채굴로 콜로라도 주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이 되었다.

로키산 국립공원 드림호수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진 1차 세계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이 끝나갈 무렵 스페인 독감이 전세계에 유행한다. 콜로라도는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8천여 명에 달해 미국에서 가장 큰 피해지역 중 하나였다.

1921년 6월 3일 아칸사스강의 홍수로 인해 1,500여 명이 사망하고, 푸에블로 지역은 2천만 달러 이상의 피해를 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라디오, 자동차 전기 등 신기술의 보급은 경제적인 풍요와 낙관적인 전망을 주었다. 주식가격은 10년 동안 4배 가까이 증가하며 점점 투기가 심화한다. 하지만 긴축 통화와 이자율 상승은 투자를 감소시켰다. 1929년 주식 시장 대붕괴는 은행을 문 닫게 만들고 기업이 도산해 대량 실업사태를 맞는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일어나자 수요는 적어지고 농산물의 가격이 급격하게 내려가 심각한 경제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속도로 건설과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으로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데 기인한다.

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은 콜로라도주의 금속과 석유 수출로 활발한 경제 상승에 도움을 주었다. 전쟁 지원을 위해 많은 군수물자 공장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생겨 콜로라도주는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한다. 세계대전으로 콜로라도주에 공군기지와 군사시설 및 수용소가 설립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백악관은 1942년 ‘행정명령 9066호’를 발동한다. 이 명령은 일본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그리고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격리 수용소에 감금하고 자산을 몰수하는 명령이었다. 이때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한인들도 일부 강제 감금된다. 미국 내 10개의 수용소 중 콜로라도는 그라나다 지역에 설치된 캠프 아마치(Camp Amache)에는 7천 명가량의 일본계 미국인이 수감됐다. 전쟁이 끝나면서 수용소는 폐쇄되었고, 연방대법원은 이 조치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1988년 레이건 정부는 인종적 차별과 전쟁 중 집단 히스테리에 휘둘린 정치적 과오였다며 공식 사과하고 생존자에게 1인당 2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전쟁이 끝나자 콜로라도주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미국 내에서 가장 빨리 번창하는 주 중의 하나로 순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1949년 덴버 근처에 체리크릭 댐이 완공되었으며, 10년 동안 저수지 및 수로 확장과 함께 6개의 수력 발전소가 건설된다.

1950년대 이후

1950년대에 많은 연방 사무소와 군사 시설이 콜로라도주에 설립되었다. 국립 표준 기술 연구 실험실이 1954년 워싱턴 D. C.에서 볼더시로 옮겨졌다. 미국 공군 사관 학교는 1958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설립되고, 북아메리카 항공 우주 국방 사령부 등 군사시설이 설립된다. 1954년에는 원자탄두, 미사일 등 군수물자 생산과 함께 전자 부품 제조업과 우라늄 채굴이 농업을 대신해 중요한 주 산업이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 프라잉팬-아칸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물을 콜로라도 서부에서 동부 지역에 있는 평원으로 이동시키는 설계 프로젝트 공사는 1972년에 시작하여 1985년에 완공되었다. 1964년 8월 26일 비틀즈가 레드 록스 원형 극장에서 공연했다. 1969년 9월 21일 콜로라도에서 I-25 번 고속도로가 완공됐다. 

1972년 콜로라도는 197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지만, 예산의 증가와 환경보호를 위해 주민 투표에 붙여져 올림픽 개최를 거부했다. 올림픽 확정 선정지가 개최를 거부한 최초의 주 이다. 1973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터널이며, 미국에서 가장 긴 터널인 아이젠 하워 기념 터널이 개통됐다. 1976년 집중 호우로 인해 빅 톰슨 강 홍수로 135명 이상의 주민이 사망했다.

콜로라도를 미국에서 수제 맥주의 근원지로 유명하게 만든 그레이트 아메리칸 맥주 축제(The Great American Beer Festival)가 1982년 개최된다. 처음에는 볼더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덴버 컨벤션 센터에서 매년 약 6만 명이 찾는 미국 최대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맥주 페스티벌이 되었다. 

1991년 12월 10일 콜라라도와 강원도가 자매결연 체결을 통해 교류를 시작했고, 1992년 7월 27일에는 오로라시와 성남시가 자매결연 체결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29년부터 1995년까지 이용되었던 스테이플턴 국제 공항이 문을 닫고 미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항인 덴버 국제 공항이 1995년 2월 28일 개항했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리를톤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다.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 볼트에 의해 살해되었다.

2000년대

2008년 8월 25일부터 8 월 28일까지 덴버에서 민주당 전당 대회 개최되고, 11월 4일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당선 확정된다. 2012년 콜로라도와 워싱턴이 미국에서 레크리에이션 용도로 대마초를 합법화한 최초의 주가 된다. 2012년 7월 20일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센츄리16 영화관에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방독면을 쓴 제임스 이건 홈스가 최루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해 12명이 숨지고 70명이 다쳤다. 홈스에겐 종신형 12번, 징역 3,318년이 선고됐다

2018년 11월 6일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제러드 폴리스(Jared Polis)가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2020년 3월 5일 콜로라도 주지사는 코로나19 확진 첫 사례를 발표하고, 3월 10일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같은 해 12월 14일 화이자 백신이 콜로라도주에 도착해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아시안 인종혐오 범죄 간담회에 참석한 오로라시 관계자들과 한인사회 리더들

2021년 3월 22일 킹수퍼 식품점에 총격 사건이 발생해 경찰 1명 포함 10명이 사망했다. 2021년 3월 26일 미국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가 심화되자 콜로라도 타임즈는 오로라시와 함께 오로라시장, 연방하원의원, 경찰서장, 시의원, 한인사회 대표를 초청해 대책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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