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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역사] 덴버가 동계올림픽을 포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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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가 따낸 올림픽과 주민투표로 스스로 내려놓은 선택

1970년 5월 1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의에서 미국 콜로라도주의 덴버가 197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스위스 시옹(Sion), 핀란드 탐페레(Tampere), 캐나다 밴쿠버-가리발디(Vancouver-Garibaldi)를 제치고 얻어낸 결과였다.

당시 덴버의 선정은 상징성이 컸다. 1976년은 미국 독립 200주년이자 콜로라도가 주로 편입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과 콜로라도 모두에게 기념비적인 해였고, 록키산맥을 품은 덴버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구상은 겉보기에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이 화려한 유치 성공 뒤에는 처음부터 불안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 덴버는 산악도시라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도심은 평원에 가까웠고, 주요 스키 경기장을 올림픽 선수촌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해야 한다는 조건도 부담이었다. 덴버 올림픽 조직위는 알파인 스키 경기장으로 마운트 스닉타우(Mount Sniktau)와 러브랜드 베이슨(Loveland Basin)을, 노르딕 경기와 봅슬레이·루지 경기장으로 에버그린(Evergreen) 일대 덴버 마운틴 파크(Denver Mountain Parks)를 제안했다.

문제는 이 장소들이 실제 올림픽 경기장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는 점이다. 마운트 스닉타우는 바람이 강하고 적설량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러브랜드 베이슨 역시 경기장 조성과 접근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에버그린 일대는 주거지와 학교 주변을 통과하는 경기 노선, 사격 경기장 설치 가능성, 환경 훼손 우려 등으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특히 유치 과정에서 사용된 홍보 자료도 논란이 됐다. 일부 입찰 자료 사진에는 실제보다 눈이 풍부해 보이도록 보정된 이미지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록키산맥의 장엄한 풍경은 덴버 유치의 강력한 무기였지만, 실제 경기장 계획은 종이 위에서만 그럴듯해 보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덴버의 유치 활동에는 적극적인 로비도 있었다. 조직위는 국제 스포츠 관계자들을 덴버로 초청해 호텔 숙박, 리셉션, 공연 관람 등 다양한 접대 행사를 마련했다. 당시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는 이런 관행이 흔했지만, 덴버의 경우 경기장 계획의 현실성 논란과 맞물리며 이후 더 큰 비판의 대상이 됐다. 국제스키연맹(FIS) 회장이자 IOC 위원이었던 마르크 호들러(Marc Hodler)가 경기장 후보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됐지만, 확인 가능한 사실과 의혹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유치에 성공한 뒤 문제는 더 커졌다. 처음에는 약 1,4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던 개최 비용이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기장 건설, 도로 확장, 교통망 정비, 숙박시설 확충, 환경 보전 대책까지 더하면 실제 비용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의 반발은 단순히 돈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콜로라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대형 국제행사에 투입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동시에 산악 지대 개발, 교통 혼잡, 자연 훼손, 지역 공동체 변화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특히 에버그린 등 경기장 후보지 주변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올림픽이 지역의 삶과 자연환경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반대 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 당시 콜로라도 주 하원의원이던 리처드 램(Richard Lamm)이었다. 그는 샘 브라운(Sam Brown) 등과 함께 올림픽 개최에 주정부 세금을 투입하지 못하게 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올림픽이 정말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사라면 왜 주민 세금으로 위험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덴버 조직위는 뒤늦게 일부 경기장을 베일(Vail)이나 스팀보트 스프링스(Steamboat Springs) 등 더 적합한 산악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기존 유치 계획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결과가 됐다. 덴버가 IOC에 제시했던 계획이 현실과 다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주민들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1972년 11월 7일 찾아왔다. 콜로라도 유권자들은 올림픽 개최를 위해 주정부가 세금을 쓰거나 채무를 부담하는 것을 제한하는 수정안 8(Amendment 8)을 주민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59.44%. 콜로라도 주민들은 올림픽보다 재정 책임과 환경 보전을 선택했다.

주민투표 결과 이후 덴버는 더 이상 올림픽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결국 1972년 11월 15일, 덴버는 1976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공식 반납했다. 개최지로 선정된 도시가 주민투표를 통해 올림픽을 거부한 사례는 올림픽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덴버가 내려놓은 1976년 동계올림픽은 결국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로 넘어갔다. 인스브루크는 이미 196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경험이 있었고, 짧은 준비 기간 안에 대회를 치를 수 있는 대체지로 선택됐다.

오늘날 덴버의 1976년 동계올림픽은 ‘열리지 않은 올림픽’으로 기억된다. 세련된 ‘Denver 76’ 로고와 입찰 책자, 실현되지 못한 경기장 계획은 당시의 야심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유물로 남았다.

1970년 5월, 덴버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올림픽을 따냈다. 그러나 2년 뒤 콜로라도 주민들은 그 영광보다 자신들의 세금, 산과 숲,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덴버의 1976년 동계올림픽 포기는 실패의 기록만은 아니다. 대형 개발과 국제행사의 화려한 약속 앞에서 주민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고 결정을 내린, 콜로라도다운 선택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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