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콜로라도 뉴스 11피트 나무판에 우편 가방 메고 시작된 150년

[콜로라도 스키] 11피트 나무판에 우편 가방 메고 시작된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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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키스톤·러브랜드 첫 오픈…생존수단에서 200억불 산업으로

10월 31일(금) 키스톤과 러브랜드 스키장이 올 시즌 첫 오픈한다. 매년 1300만 명이 찾는 콜로라도 스키의 시작은 화려한 레저가 아니었다. 척박한 광산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1800년대 후반 콜로라도 산악지대는 금광을 찾아온 광부들로 북적였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폭설이 내리면 마차도, 기차도, 말도 무용지물. 이때 스칸디나비아 출신 광부들이 해법을 제시했다. 자신들이 쓰던 스키였다.

그들은 동료들에게 나무판으로 스키를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곧 스키는 장 보러 가거나 학교 가는 일상 교통수단이 됐다.

당시 가장 유명한 스키 사용자는 우편배달부들. 이들은 11피트(약 3.3m)짜리 나무 스키를 신고 25파운드(약 11kg)의 우편 가방을 등에 메고 광산촌을 오갔다. 위험한 고개를 넘을 땐 눈이 얼어붙어 이동하기 쉬운 한밤중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안 되는 고행이다.

긴 겨울을 견디던 광부들은 스키 점프와 경주 대회를 만들어 심심풀이를 했고, 이게 콜로라도 겨울 스포츠의 시초가 됐다.

전쟁이 바꾼 운명… 절벽 타고 오른 스키 부대

1940년 콜로라도 최초 대형 스키장 윈터파크가 문을 열며 레저 스포츠로 전환이 시작됐다. 하지만 진짜 게임 체인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1년 미군이 창설한 제10산악사단. 리드빌 인근 캠프 헤일에서 훈련받은 1만4000명의 병사 중엔 대학 스키 선수, 코치, 올림픽 선수들이 포함됐다.

이들의 활약은 전설이 됐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독일군이 ‘통과 불가’라 여긴 1500피트(약 457m) 절벽을 야간에 기어올라 핵심 거점을 점령했다. 결국 독일군 항복을 이끌어냈다.

전쟁 후 이들은 산악 생활이 그리워 콜로라도로 돌아왔다. 상당수가 스키장을 열거나 운영에 뛰어들었다. 현재 미국 내 약 60개 스키장이 제10산악사단 출신의 작품이다.

유럽과 정반대로 발전한 콜로라도

전후 경제 호황과 함께 스키장마다 리프트와 T-바가 설치됐다. 1950년 아스펜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대회는 미국 스키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재미있는 건 유럽과의 차이다. 유럽은 원래 여름 알프스 휴양지였던 곳들이 겨울 스키시즌을 추가한 형태였다. 콜로라도는 반대다. 스키장이 먼저 생기고 리조트는 나중이었다. 초기엔 제롬 호텔이 있던 아스펜만 제대로 된 리조트였고, 대부분은 식당도 숙박시설도 심지어 주차장도 없었다.

폭발하는 수요에 1960-70년대 브레켄리지, 베일, 크레스티드 뷰트, 스팀보트 스프링스가 속속 개발됐다. 텔루라이드, 키스톤, 코퍼마운틴이 뒤를 이었다.

차고에서 탄생한 스노보드 혁명

1970년대 중반 차고와 뒷마당의 미국 발명가들이 만든 스노보드는 스키의 ‘상류 스포츠’ 이미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81년 리드빌 스키 쿠퍼에서 첫 대회가 열렸고, 처음엔 코웃음 치던 리조트들도 이젠 스노보드용 하프파이프와 지형 공원을 만들며 환영한다.

오늘날 콜로라도 스키는 연간 200억 달러 규모 산업으로 성장했다. 주 경제의 핵심이자 많은 이들에게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생존을 위해 깎은 나무판이 150년 만에 세계적 산업이 됐다. 다음주 금요일 처음으로 슬로프에 나선다면, 한밤중 우편 가방 메고 고개를 넘던 초기 이민자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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