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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역사] 덴버 한인사회의 첫 터전을 닦은 박희병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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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6월 덴버에서 별세…조국 독립과 한인 정착에 헌신
조카 박용만 선생이 뜻 이어 1908년 애국동지대표회 개최

오늘날 덴버와 오로라를 중심으로 성장한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뿌리는 1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작점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는 동시에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한 한인들의 정착을 도왔던 박희병(朴羲秉) 선생이 있다.

박희병 선생은 1907년 6월 덴버에서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기록에서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짧은 생애 동안 덴버 초기 한인사회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이다.

덴버 역 앞 여관, 초기 한인들의 안식처가 되다

박희병 선생은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미국 버지니아주 로아노크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귀국 후에는 통역과 대외업무를 담당하고 교육 활동에도 참여했다.

1905년에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농장으로 떠난 한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북미 지역으로 향했다. 이후 1906년 덴버에 정착해 조카 박용만(朴容萬) 선생과 함께 여관과 직업소개소를 운영했다.

당시 덴버는 철도와 광산 산업이 발달해 일손을 필요로 하던 도시였다. 박희병 선생은 일자리를 찾아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던 한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철도회사와 광산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기존 기록에 따르면 그가 일자리를 알선한 한인은 300여 명에 달했다.

덴버 역 인근의 여관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었다. 막 콜로라도에 도착한 한인들이 정보를 얻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생활 거점이었다.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여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한인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숙부의 뜻을 이어간 박용만 선생

박희병 선생과 박용만 선생은 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박용만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숙부의 영향을 받으며 개화사상과 애국정신을 키웠다.

박희병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덴버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박용만 선생은 숙부가 운영하던 여관과 직업소개소를 이어받아 한인들을 규합했다. 해외에 흩어져 있던 한인 단체들을 하나로 모아 조국의 현실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활동도 준비했다.

당시 덴버에서는 1908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미국 각지의 정치인과 언론이 덴버에 모이는 시기에 맞춰, 박용만 선생과 한인 지도자들은 애국동지대표회를 열었다. 한국을 향한 일본의 침략 야욕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해외 한인사회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지배에서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모였다”

1908년 7월 덴버의 그레이스 감리교회에서 열린 애국동지대표회에는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지역의 한인 단체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당시 덴버 지역 신문들도 이 회의를 크게 보도했다. Daily Rocky Mountain News는 1908년 7월 13일자 7면에서 “일본의 지배에서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한인 애국자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한인 대표들이 해외 애국단체를 하나의 조직으로 결집하고, 국내에서는 교육 활동을 펼치는 한편 해외에서는 한국의 현실을 널리 알리려 한다고 전했다. 또한 이들이 전쟁을 선동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30세였고, 가장 어린 사람은 19세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논의했던 이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다.

묘비 없이 잠들었던 덴버 한인사회의 선구자

박희병 선생은 덴버 외곽 리버사이드 공동묘지(Riverside Cemetery)에 안장됐다. 그러나 오랜 기간 그의 묘소에는 이름이 적힌 묘비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지역 한인사회는 잊혀졌던 그의 흔적을 다시 찾았다. 2007년 덴버 지역 한인사회는 박희병 선생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새로운 묘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열었다.

박희병 선생은 콜로라도에 정착한 초기 한인들에게 일자리와 잠자리를 제공한 생활의 안내자였다. 동시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꿈꿨던 애국지사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19년이 지난 오늘,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수많은 교회와 단체, 기업과 언론을 갖춘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덴버 역 앞 작은 여관에서 동포들의 손을 잡아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6월은 콜로라도 한인사회가 박희병 선생의 이름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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