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월 18, 2022

칼끝에 머물다

한 번만 봐도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인상착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십 후반에서 육십 중반으로 여겨지는 그가 처음으로 우리 이발소에 온 날이 생각난다. 제리도 리치도 손님을 붙잡고 있어서 그의 이발은 내가 하게 되었다. 앉혀놓고 보니 머리는 완전히 하얬으며 눈썹도 하얬다. 눈이 부리부리하면서 돌출 되어 있었는데 양 미간에도 흰 눈썹이 빼곡히 나있었다. 머리숱이 많고 뻣뻣했는데 머리카락 자라는 방향이 또한 특이했다. 뒤통수의 머리카락은 양쪽 귀 뒤에서 머리가운데 방향을 가리키면서 자라났고 머리의 윗부분은 가마를 따라 돌면서 자라다가 정수리 부분에서는 역방향으로 자라났다.

특이한 사람을 많이 봐왔음에도 그의 인상은 아주 강렬하고 독특했다. 그의 머리를 깎다가 눈썹을 다듬으려니 웃음이 나와 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솔트 앤 페퍼(반 백)가 아니고 백퍼센트 흰머리인데다가 숱도 많고 머리발이 굵어서 깨끗하고 멋지다고.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일찍부터 새치머리가 나와서 이렇게 됐다. 거기다가 눈썹까지 이렇게 일자로 연결 되어 그런지 마켓에 장을 보러가도 어디를 놀러가도 누구든지 자신을 한 번만 보면 죄 다 알아본다며 그역시 유쾌하게 말했다.

이런 인상착의를 어찌 몰라보겠는가. 그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바로 찾아낼 수 있게 생겨서 따로 몽타주가 필요 없게 생겼다. 평생 나쁜 짓은 못하겠다. 하얀 일자 눈썹으로 쉽게 설명된다. 미간의 눈썹을 깨끗이 밀고 잡풀처럼 마구 자라난 눈썹까지 다듬고 나니 아주 단정해 보였는데 그도 나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아이들 머리의 가마를 세면서 하나면 한 번 장가가고 두 개이면 장가를 두 번 간다고들 하였다. 미국사람들의 머리를 손질하면서 보니까 머리 가마가 두 개는 보통이고 서너 개인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결혼을 두서너 번씩 하는 건지도 모른다.
머리꼭지에 두 개가 연달아 있는 전형적인 쌍가마에 양쪽 귀 뒤에 하나씩 있고 정수리에 하나가 더 있는 사람도 봤다. 이마 위 정 중앙에 가마가 있어 바람개비처럼 앞에 머리카락 소용돌이를 갖고있는 사람도 많이 봤으며 뒷목에 머리가 끝나는 부분에 머리카락 바람개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종종 봤다.

그뿐만이 아니다. 머리카락 자라는 방향이 완전 좌향좌로 자라는 사람도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있다. 머리가 사오등분으로 나뉘어져 각 등분마다 각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 머리도 봤다.

잔디의 떼를 잘라다가 잔디가 자란 방향을 맞춰가며 붙이지 않고 마구 가져다가 붙인 듯 하다하겠다. 두상과 두발이 하도 다양하여 이발해주는 재미가 있다.
거기다가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작업은 면도이다. 미하일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테드 강의에서 작거나 큰 몰입을 경험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였다. 난이도와 기술 수준의 적당한 결합이 중요하다고 한다. 본인의 기술의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것을 하는 쪽이 몰입을 경험하기가 쉽다고 한다.

아이들을 얘로 들자면 어떤 과제를 줄 때에 그 아이의 수준에서 약간의 노력을 더 하면 이루어 질 수 있는 정도의 과제물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난이도를 점점 높여가는 것이다. 난이도가 높아갈수록 기술이나 실력이 높아진다. 고난이도에 수준 높은 기술이나 실력이 만나는 곳에서 크고 오래 지속되는 몰입감이 오며 행복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수술의가 수술을 할 때 환자의 생명은 그의 손에 달려있다. 그 때 수술의의 의식은 손끝과 칼끝에만 존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문제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의 손과 그의 손에 들려진 수술 칼은 저절로 움직이는 듯하며 그의 의식은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 자체이다. 바로 무아의 경지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면도를 좋아하는 가보다. 깜빡하는 순간 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딴생각을 하면 안된다. 얼굴에 난 털 하나하나를 정확히 들여다보면서 면도칼 끝으로 하나하나 밀어내는 그 순간 나 역시 작은 몰입을 경험한다.

길게 뒤로 젖혀진 이발의자 위를 따라 길게 몸을 눕히고 면도를 받기위해 눈감고 있는 손님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장례 하우스에서 장례사한테 마지막 단장을 받기위해 대기 중인 시신 같다는. 그들의 파르스름하도록 하얀 피부가 더 그렇게 보이게 한다.

초보시절에 제리는 내게 실전 이발을 지도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손님의 이발을 할 때마다 이 이발이 이 사람 생전의 마지막 이발이 될 수도 있으니 완벽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장례식에서 관 속에 드러누운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조문객들이 누가 이따위로 이발을 했냐고 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고. 그때는 농담으로 웃어 넘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깊은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높고 깊은 몰입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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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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