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3, 2022

층간 소음

오래전에 읽었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요즘 들어 종종 생각나는 때가 있다.
아파트에서 오래도록 혼자서 살아오고 있는 고등학교 수학선생인 남자는 어느 날 죽기로 결심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도시락을 사다가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고. 메뉴가 다양한 도시락을 골라서 먹어가며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굴곡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뿐이다.


불만도 없었고 딱히 목표도 없었고 매력 없는 외모 때문인지 여자 친구도 없었고 사교성이 없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도 없었다. 머리가 좋아 학창시절부터 공부에 천재성이 있어 동급생들은 장래에 그가 꽤나 저명한 천재 수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그는 그냥 평범한 수학 선생으로 머물러 버렸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부턴가 너무도 외롭고 아무 일도 없고 삶이 지루하고 의미가 없어서 그만 살고 이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행에 옮기려고 한 어느 날 아래층에 모녀가 이사를 들어왔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던 그의 집 마룻바닥을 통해 모녀의 대화와 생활 소음이 들려왔다. 죽으려고 거실 천장에 밧줄을 매달고 의자에 올라섰었는데 의자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보니 행복감이 밀려와 죽기를 미룬다. 그날부터 그는 집에 있는 시간에는 마룻바닥에 귀를 대고 그녀들의 생활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편의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매일 매일이 기대 되었으며 그들과 같이 사는 것처럼 여겨져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하여 삶은 더 이상 외롭거나 황량하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이라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시신이 유기되고 사건은 은폐되고 그를 위해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는 스토리인데 탄탄하게 잘 짜여 진 스토리에 푹 빠져서 읽었고 맥락과 숨은 복선을 파악하기위해 두세 번을 더 읽었으며 이 소설을 시작으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존 소설을 모두 사다가 쌓아두고 읽었고 그 후로 새로이 출간되는 그의 소설을 기다렸다가 사서 읽는 즐거움도 갖게 되었다.
소설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이다.


혼자 살아온 지 십년이 되어 독신생활에 익숙해져 혼자인 것이 편하고 좋은 적도 많았으나 가끔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다.
젊거나 늙은 싱글들이 많은 세상이라 많은 혼 족들이 겪는 일이리라. 원 베드룸 아파트 삼층에 살아오고 있는데 이곳으로 입주했을 때에는 아래층에 백인 청년 둘이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반년 뒤인가 그들이 이사를 나가고 몇 달인가 비어있었다가 어린 청년이 이사를 들어온 날이었다.

느닺없이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청년의 목소리에 놀라 내다보니 중년여인이 걸어 나가고 있었는데 그녀한테 대고 그러는 것이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엄마가 왔었나본데 당장 꺼지고 다시는 오지 말라며 아들놈이 악을 썼다.
잠깐 구경하는 내가 이렇게 속이 쓰린데 저 엄마는 얼마나 속이 상하고 썩을까 싶었다. 그 뒤 몇 주나 지났을까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딱딱한 식재료를 분쇄기로 갈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 청년이 우리 집 마룻장을 쾅쾅 올려치는 것이었다.


소리는 보통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니까 괜찮으리라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바로 맞대응하다니. 청년이 자기엄마한테 소리소리 지르는 것을 봤던 터라 무섭기 까지 했다. 한 번만 더 분쇄기 소리를 내면 총으로 쏴 죽일지도 모르리라는 위험함까지 느껴져 그 후로는 믹서기나 분쇄기 등을 쓸 때엔 대낮이어도 주차장에 그놈 차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주방기기를 사용하면서 어서 속히 아래층 놈이 이사 나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몇 달 만에 이사를 나가줬고 갓난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들어와서 거실바닥에 누워있을 때엔 아기 울음소리가 약하게나마 들려 잔잔한 평안함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들이 이사를 나가고 난 뒤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가 이사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거실에서 자리 펴고 잤던 때엔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그녀들의 대화와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려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평안함을 느꼈었다. 며칠 전 방을 아늑하고 예쁘장하게 꾸미고 잠자리를 방으로 옮겼다.


나이가 드니 방바닥에서 자는 것이 좋아 침대를 내다 버린 지가 꽤 됬다. 컥컥컥컥컥컥컥 컥컥컥컥컥컥컥 컥컥컥컥컥컥컥… 방바닥을 통해서 들리는 아래층 여자의 코고는 소리. 것도 좋다. 백색소음이라 숙면에 도움이 된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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