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동안 하는 일은 사람의 머리통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부룩하니 길어진 머리를 목덜미서부터 깎아나가던가 머리꼭지서부터 잘라나가던가 하는 것은 손님의 머리상태를 보고 결정하는데 것도 이발사인 내 맘이다.
엿을 어떻게 자를 것인가는 엿 장사 맘대로 이듯이. 깎아놓고 보면 사람의 머리통은 딱 감자처럼 생겼다. 제각각이고 대칭도 안 맞고 싹이 나올 자리인 듯이 뵈는 부분도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딱딱한 것들은 대략 그렇게 생기게 되어있는가 보다. 인간의 신체에는 야채나 과일 모양같이 생긴 부위가 생각보다 많다. 수십 년 간 추리 미스터리를 즐겨 읽었었으나 지난 몇 년 동안은 뇌 과학과 건강, 성공과 행복한 삶, 자신의 진동수를 높이는 것에 관한 책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탔다. 우주에 가득한 진동에너지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 우리 몸과 지구의 진동에너지가 생명체들을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놓는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 몸이 이렇게 견고해 보여도 세포하나의 미시세계로 들어가서 원자, 분자에 도달해 더 들어가 보면 남는 것은 진동, 파동인 에너지의 움직임뿐이라고 한다. 즉,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99퍼센트가 사실은 비어있고 그곳엔 ‘계속된 움직임’만이 있다고 한다. 오직 움직임만?! 확 깰 수밖에 없다. 그것을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으면서 명상을 하니 내 몸과 마음이 변했다.
진단 받은 고지혈증에 고혈압, 당뇨 전 단계와 오랜 세월동안 반갑지 않지만 얘도 나의 친구다 하고 찾아오면 맞이했던 우울도 텅 빈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그 병증들은 내가 아니고 내 것도 아니었다. 텅 빈 곳으로 텅 빈 것들이 들고 나는 것이었다. 마치 그물 빤쓰에 방구가 새듯이. 헌데 오랜 세월 동안 그 병증들이 ‘나’이고 ‘내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잘 살아왔을 텐데 하는 억울함도 들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에너지의 움직임뿐이니 이것도 움직일 뿐이다. 알았어도 깨닫고 나니 마음은 중심이 잡혀 항시 평화롭고 고요하며 무슨 일이건 즐겁게 할 수가 있어졌다. 이 몸의 안과밖엔 긍정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하루를 가득히 살고 잠을 잘 잔다. 잠이야 원래 잘 잤지만 더 잘 잔다. 불필요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쓸데없이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니 신체적 에너지가 늘어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잘 된다. 마음은 몸이고 세상이고 우주이다. 표현할 말이 이것밖에 없어 언어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언어로는 십분의 일만 표현가능 하다고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이발소의 하루는 지루할 틈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나을 만 하니까 다시 변종 코로나에 감염된 스물한 살의 아가씨 이발사 모건은 거의 한 달 동안 일을 못나왔었다. 평소에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을 주로 먹었으며 담배도 피우는 바람에 원조 코로나 바이러스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연달아 두 번이나 걸렸다고 제리는 손님들의 머리를 깎으면서 쉴 새 없이 광고를 해댔다. 자신은 담배도 안 피우며 평소에 건강식을 먹는 베지테리안이라 남들은 죄 다 걸리는 바이러스 감염을 자신 만은 피할 수 있었다고 꼭 덧붙였다. 점심으로 패티를 두 개나 넣은 두툼한 햄버거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것을 자기가 봤는데 느닺 없이 뭔 베지테리안이냐며 리치는 제리에 대한 뒤 담화를 했다. 그날, 보스가 일찍 퇴근한 덕분에 모건까지 합세하여 셋이서 수다를 떨며 웃어댔다. 모건은 이발해주는 손님들마다 계속해서 똑같은 질문을 해대서 일일이 답해주느라 짜증난다고 했다. 원조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걸리고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두 번이나 걸렸다면서? 증상이 어땠느냐, 지금은 어떻느냐, 네 남친이나 식구들은 옮았냐 안 옮았냐, 나을 동안 어디서 머물렀느냐 등등. 이발 비 이십 불에 머리 깎아주고 자기 신상까지 다 털어야 하는 것이냐며 쏟아놓았다. FAQ(자주 받는 질문)로 핸펀에다가 아예 녹음해서 틀어놓으려무나, 일단 이것부터 다 듣고 나서 물어보라고.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해주면서 같이 깔깔 댔다.
모건은 180센티미터 키에 날씬하면서 적절한 볼륨까지 있는 몸매에 얼굴도 예쁘고 귀여운 금발 긴 머리의 아가씨다. 이게 바로 여신이로구나 싶은 처녀다. 그녀가 계산대에서 손님과 계산을 할 때에는 저절로 손님 머리를 보게 된다. 아직 초보인지라 손님머리가 매끄럽지 못하고 여전히 울퉁불퉁 한데도 다 되었다며 거울을 보여주고 손님은 그 모양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행복하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팁도 많이 주고 떠났다가 얼마 후에 또 그녀를 찾는다. 노땅 이발사들뿐이었던 시골 이발소에 여신이 나타나 머리를 깎아주는데 이발솜씨야 아무려면 어떠랴. 우리들한테는 그렇게나 까다롭게 굴며 잔소리를 일삼았던 제리가 모건에겐 아무 소리도 안한다. 나 역시 아들들보다도 더 어린 모건이 예쁘고 귀엽기만 하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데 남자들은 오죽 하랴 싶다. 그것을 진즉에 꿰뚫고 있는 제리는 한마디라도 했다가 어린 모건이 행여 라도 이 오래되어 낡고 꾀죄죄한 이발소를 떠날까봐 아무 소리도 안하는 것이었다. 삼십년 동안 머리를 깎아온 경력이 있는 자신에게 작년에 여기에서 일을 시작하자 잔소리를 죙일 해대서 머리통에 두 군데나 원형 탈모까지 생겼었다고 리치는 말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때문에 두 달 동안 이발소 문을 닫게 되어 그녀의 잔소리에서 해방되니 다행히도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 빈 땅이 메꿔졌단다, 헌데 모건이 엉망으로 깎아도 일언반구 안하는 것은 인종 차별 아니냐며 불평을 했다. 그게 뭔 상관이냐 손님이 좋다는데, 그리고 실전을 많이 하면서 모건의 실력은 점점 늘 테고. 안다안다 다 안다 여사인 제리가 아무소리 안하는데 우리가 뭔 상관이냐, 니 손님이나 잘 챙기세여 라고 말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그때그때 달라요. 리치의 피부색은 밝은 브라운, 나의 피부색은 옐로우. 그래서 그것이 또 강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