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에서 바로 길 건너에 내가 일하는 바버샾이 있다. 걸어서 오 분이면 도착하고 차로는 삼분 걸린다. 해가 길었던 때에는 운동 삼아 걸어갔는데 겨울엔 저녁 네시 반이면 해가 떨어져 퇴근하는 여섯시면
밖은 완전 오밤중이 되었다.
집이 코앞이라고는 하나 깜깜한데 여인네 혼자 밤길을 걸어가는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해왔다. 나이가 드니 위험을 사전에차단하는 보호 장치가 저절로 가동되어 몸과 마음이 갈수록 평화로워진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늙으니 꾀만 는다.’고 푸념처럼 종종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무릎이 아프다며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감들을 앞에 두고 앉아서 건조대까지 하나둘 던져놓고는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하나씩 살살펴서 널던 모습이 생각난다. 다 살게 마련이라며 웃던 엄마의 얼굴이 몹시 그립다.
시민권을 따면서 이름을 미성에서 아명인 달래로 바꾸게 된 것은 ‘미’와 ‘성’이 미국으로 오니 둘로 쪼개져 앞글자만 불리우니 내이름 같지도 않고 너무나도 많은 ‘미’들이 있어서 것도 그렇고 미국인들한테 불리우기가 더 쉬운 발음일 것 같아서였는데 것또한 자주들 잊어버리고 또 묻길래 일터에서는 쉽게 ‘달리’라 불리운다. 영업상 이름은 쉬워야한다.
날 찾는 손님들 중에 나타나면 아들들을 보듯이 반가운 두 명의 백인 청년들이 있다. 브랜든과 잭. 아들들은 물론 순수 한국인 종자 이지만 미국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인종에 대한 구별도 차별도 없어져 모두 다 같은 사람이 된지 오래다.
브랜든은 금발에 숯이 많은 직모이고 잭은 밝은 브라운색인데 조명에 반사되면 금처럼 반짝 반짝 빛이 나서 아주 예쁜 그들의 머리를 다듬어 줄때에는 저절로 공이 더 들어가고 즐겁다. 여기는 손님들마다 원하는 머리스타일이 각양각색이라 일이 더 재미있다. 예수님 머리에 꾀죄죄하게 하고 들어올 때의 모습이 머리손질을 받고 깨끗하고 멋진 머리모양으로 확 달라진 인물을 볼때마다 일에 대한 보람을 곧 바로 느낄 수가 있어서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히스패닉의 머리를 잘라 주고 나면 그들의 거칠고 짧은 머리카락이 가시처럼 종종 손에 박히는데 그리도 가늘고 작은 것이 살갗에 꽂혀있다고 해서 아픔을 느끼는 신체가 놀랍다.
바버스쿨을 졸업하고 지난 오륙 년 동안, 돌아보면 기술을 쌓기 위한 고생과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한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미국인동료들과 손님들의 왕따와 불평과 무시를 견뎌가며 어떻게 버티고 이겨내었는지, 참. 이것저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중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거나 가능해도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지우고 나니 남는 것이 바버였다. 그래서 단단히 맘먹고 선택했고 이미 들어섰으니 되돌아가기엔 쏟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고 이 길이 아니면 은퇴할 때까지 평탄한 꽃길을 걸을 방법이 없다는 굳은 마음으로 온갖 비바람과 폭풍우를 고스란히 맞고 견뎠다.
불이익을 받아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윗 전에 고하지고 않고 그냥 참고 혼자서 삭혔다. 나의 짧은 영어로 동료의 룰 파괴와 그로 인해 입은 불이익과 심적 피해를 따진다 한들 네이티브 스피커의 자기방어와 빠른 언어공격을 어찌 이겨낼 수 있으랴 싶어서 싸가지 없는 동료에 대한 미운 마음과 억울함을 그에 대한 연민으로 바꿔 미움을 털어버렸다.
‘그래애… 너는 애가 넷이나 되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거기다가 차사고로 일그러진 얼굴에 성형수술도 받아야한다며?! 난 먹고사는데 문제없으니 그냥 여기서 써주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긴다. 니들은 바빠서 머리카락들도 못 치우니 안 바쁜 내가 다 치워주마. 인종차별로 치자면야 우리 한국인처럼 심한 사람들이 또 있으랴… 이정도차별은 참을 만하다’
거기다가 한 달에 한 번씩은 메뉴를 바꿔가며 한국음식을 만들어다가 먹였다. 소불고기, 제육볶음, 잡채, 비빔밥, 스시롤에 김밥까지. 소고기랑 돼지고기는 안 먹는 친구가 있어서 그를 위해 따로이 닭볶음을 해다가 주기하기까지 하면서. 한국 컵라면에 튀김우동도 박스째 가져다가 뿌렸다. 영어도 짧고 기술도 어설프고 늙은 한국 아줌마를 네이티브 스피커에 기술 좋고 젊은 너희들이 좀 봐다오 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일터에 나가는 기쁨이라고는 오직 하나 엉망인 손님의 머리를 깨끗하고 멋지게 되도록 완벽하게 손질해주는 것이었으며 오직 그것에만 몰두했다. 속은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서 밀랍화가 되어가고 있었으나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눈과 손끝과 빗과 가위, 지금 하고 있는 그것에 마음을 두고 손님의 머리통과 나의 눈과 손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랬더니 결과도 좋았고 손님 또한 나의 정성과 몰두함을 알아보고 고마워했고 만족해했으며 그렇게 하다 보니 내손님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아들딸 같은 동료 바버들과 오너도 나를 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젊은 동료바버들과도 친하고 허구 헌 날 내손님을 마구 가로채 나를 열받게 했던 옆자리의 나잇살이나 먹은 히스패닉 알퐁소도 얌채 짓이 많이 줄었으며 더러 내 자리의 머리카락도 치워주는 것을 보며 역시 싫은 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참아주기를 잘했다 싶다 .
느닺없이 ‘도를 아십니까?’가 생각난다. 한국에서 살던 때에 도심을 걸어가다 보면 개량한복을 입은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귀 한 인상을 타고 나셨다. 헌데 수심이 보인다.’혹은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귀 얇은 사람을 낚아 근처 다방으로 끌고 가던 일이 종종 있었다. 지난 십년 동안 정말 도를 닦는 마음가짐으로 살며 버티어왔는데 그러다보니 도가 조금은 닦여진 거 같다. 욕심도 비우고 수시로 차는 마음을 많이 내리고 내려놨다.
더 비우려 살림살이도 물건도 버리고 또 버려서 미니멀라이즈, 미니몰 라이프 같은 것도 했다. 헌데 또 산다. 살아있으니 그리고 여자이니까 그건 할 수 없고 또 그 정도는 해야지 되지 않겠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핑계를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