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1, 2023

지수화풍

바깥세상에서 스트레스 상황이 계속되거나 받은 스트레스를 즉시에 적절히 풀지 못하면 마음이 피곤해지고 덩달아 생각이 많아져 몸까지 쉽게 지치곤 했으나 명상을 계속해오면서 느낌과 생각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수시로 하다 보니 느낌과 생각은 알아챔과 동시에 즉시 사라져 내 안은 평화로워진다.


알아차림의 안테나를 켜두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느낌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짐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즐겁거나 괴롭게 하는 느낌 생각이 무상하다는 것이 깨달아진다. 그래서 느낌과 생각들에 전처럼 오래 끌려다니지 않으니 무상 심심한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발코니의 식물들을 돌보고 어루만지며 그들과 파동을 주고받고 사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그릇을 닦으며 그릇 속 지수화풍 네 요소를 찾아보고 초코의 털을 빗겨줄 때도 아플세라 살살 빗겨주게 되고 눈을 맞추어 너는 어디에서 오셨나요 물어도 보고 실수로 꼬리를 밟으면 많이 사과하고 어디 나갈 땐 장황히 설명도 해주게 된다.


바버샵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해 주면서 머리카락의 지수화풍을 헤아려보고 머리카락을 따라 내려가 모근과 두피, 두피 밑의 내피와 얇은 지방질과 핏줄들을 따라 더 들어가 본다. 머리뼈가 보이고 그 두꺼운 두개골을 통과해 더 들어가면 회색의 뇌가 보인다. 느낌은 물렁물렁할 테고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 속에 이 손님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우주의 모든 정보가 다 저장되어 있으며 바삐 일하고 있을 테지 생각하면 놀랍고 신비롭고 재미있어 그 우주 거죽을 예쁘고 멋지게 다듬는 손길에 저절로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다. 모양을 바꾸어 혹은 모양 있음이나 모양 없음을 바꾸어가면서 그의 존재함은 계속되리라.


불생불멸 불구부정 비상 비비상.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세상 나이랑 상관없이 언제나 그대로인 이유는 상이 있는 육체는 세월을 따라 쇠락해가도 상이 없는 마음은 그저 존재함, 있음을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혜로워지고 너그러워지며 날로 새로워 질 뿐이라 갈수록 몸이 바쁠 일은 없어지고 어디서고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면 원하는 곳 어디건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볼 수 있다. 어떤 것을 또는 어떤 시절을 생각하자마자 바로 떠오르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멍하니 앉거나 또는 편안히 누워서 호흡관찰을 하면서 명상수행을 할 때는 평화로우면서 심심치 않게 재미있다.
이런저런 유튜브 강의를 섭렵해온 지 오 년이 되나보다.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척이나 행복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일상은 똑같고 눈앞에 있는 것은 언제나 눈앞에 있을 뿐이고 일하고 먹고 자고 늘 똑같은 행위의 반복인데 누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생각 속에서 눈덩이처럼 저절로 굴러가며 커져 속에서 파도가 겹쳐서 일어난다. 사실 그 한마디는 별 뜻 없이 그냥 툭 나온 것이고 그는 벌써 잊어버렸을 텐데 내가 화살로 만들어 계속 나를 찔러 대니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다. 그러다가 기분이란 다시 바뀌게 마련이지만 바깥 요인에 따라 기뻤다가 슬펐다가를 반복하면서 몸 밖의 사건들에 계속해서 키질을 당하면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을 텐데 밖에서 아무리 키질을 해대도 그에 맞춰 들뛰고 날뛰지 않을 수만 있다면 괴로움은 없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은 젊었을 때부터 했었다.


어차피 일은 이미 벌어졌고 안 벌어진 때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 일로 괴로워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괴로워하는 당사자만 계속 죽어나는 것인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괴로움이라는 후폭풍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누군가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성경책도 꾸준히 읽으며 교회에서 기도도 열심히 했었는데 그것이 그때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하고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신다는 절대자를 부르고 큰 쉼이 쉬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허나 언제나 뭔가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매달리는 식의 기도가 내겐 힘들고 불편하여 언제부터인가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다 접어버리고 그냥 마음이 늘 편안해지고 싶었는데 그즈음 조건과 상황이 바뀌어 명상호흡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우며 평안의 시간을 갖다 보니 그 심심한 맛이 좋아져 학교 때 꽂혔던 불교 공부를 이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유튜브를 뒤지면 원하는 강의를 마음껏 골라가면서 들을 수 있어 밤에 누워 태블릿 볼륨을 작게 해놓고 잠에 빠져드는 달콤함이 좋았고 새벽에 일어나 잇대어 들으면서 많은 분의 좋은 강의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보냈다.
명상, 요가, 백팔 배, 반야심경, 천수경, 다라니 독송 등을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대로 하고 외우는 독신자 삶의 이점을 실컷 누렸다. 눈으로 뭔가를 계속 보는 것은 피곤한 노릇이나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 것은 편안하다.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뇌가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눈을 감아주면 커튼을 내린 거실처럼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어 그 자체로 쉼이 된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꺼풀 안쪽의 빈 스크린이 보인다. 그것을 보면서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구멍을 찾아보라고 혜민 스님께서 쉬운 간화선의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해보니 생각은 즉시 고요해졌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풍경소리가 들리는 중에 말씀하신 소리 구멍을 찾기에 몰입되어 구멍을 찾다가 잠든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아직 못 찾았으나 곧 찾으리라 생각된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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