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오피니언교육 칼럼‘준비물 목록’에 담긴 진실: 개학 시즌, 교사가 학부모의 장바구니에 기대는 이유

‘준비물 목록’에 담긴 진실: 개학 시즌, 교사가 학부모의 장바구니에 기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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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준비물 목록에 휴지와 물티슈, 손 소독제가 왜 이렇게 많이 적혀 있나요? 우리 아이 혼자 쓸 것도 아닌데요.”

8월 말,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가 보낸 준비물 목록(School Supply List)을 받아 든 많은 학부모님에게 필자가 받는 질문이다. 한국에서는 학용품을 대개 ‘내 아이가 쓸 것’으로만 생각하기에, 반 전체가 나눠 쓸 법한 물품이 목록에 잔뜩 적혀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신 모양이다. 오늘은 이 준비물 목록 한 장 뒤에 숨겨진, 미국 공교육 현장의 냉정한 예산 현실과 교사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생에게는 새 학기, 교사에게는 ‘자비(自費) 개학’

학부모님들께 개학이 자녀의 새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면, 교사에게 개학은 텅 빈 교실을 자신의 돈으로 채워야 하는 시기다. 미국의 교육 지원 단체 ‘AdoptAClassroom’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교사들은 2024–2025학년도 한 해 동안 평균 895달러를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교실 용품을 샀다. 10년 전보다 약 49% 늘어난 액수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학교가 교사에게 지급하는 학급 운영비의 중앙값이 고작 200달러에 불과하며, 교사의 97%가 “이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지출은 텅 빈 교실을 처음부터 세팅해야 하는 개학 초에 집중된다. 게다가 2025–2026학년도 학용품 물가는 전년 대비 약 7.3%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의 거의 세 배에 달했다. 교사들이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며 한숨짓는 계절이 바로 이 개학 시즌인 것이다.

콜로라도의 예산 현실: 바로 우리 동네 학군의 이야기

이것은 결코 남의 나라, 먼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콜로라도, 그중에서도 덴버 메트로 지역 학군들의 사정은 특히 어렵다. 콜로라도주는 2025–2026 회계연도에 약 12억 달러(1.2 billion)에 달하는 재정 적자에 직면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학교로 향한다.

명문 학군으로 알려진 체리크릭 교육구(Cherry Creek School District)조차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약 1,540만 달러의 적자 때문에, 2026–2027학년도에 약 2,300만 달러의 예산을 삭감하고 159개의 일자리를 줄이기로 했다. 오로라 공립학교(Aurora Public Schools) 역시 학생 수 감소로 전년 대비 4.7% 줄어든 약 7억 4,68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했고, 팬데믹 시기 지원되던 연방 기금마저 끊긴 상태다. 덴버 공립학교(DPS)는 향후 4년간 약 2,860만 달러의 재정 공백을 예상하며 추가적인 학교 폐교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콜로라도 학교들이 지난 15년간 주(州) 예산 조정 장치로 인해 무려 100억 달러(10 billion)에 달하는 재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두 건의 적정 재정 연구는 콜로라도 학생들에게 지금보다 4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실 맨 앞줄의 연필 한 자루, 휴지 한 통까지 넉넉히 채워지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준비물 목록은 ‘평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

그렇다면 이 예산 부족의 빈자리는 무엇이 메우고 있을까? 바로 학부모들이 개학 전 사 오는 학용품, 그리고 교사의 사비다. 여기서 미국 교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실 필요가 있다. 많은 교사가 학생들이 가져온 준비물을 개인 사물함에 넣어두게 하는 대신, 교실 공동 물품으로 한데 모아 함께 쓴다. 어머님이 사 보내신 여분의 휴지와 물티슈, 색연필은 ‘우리 아이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반 모두의 것’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준비물을 챙겨 오지 못한 친구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 어떤 아이도 연필이 없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지키는 ‘평등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학부모의 손길에 기댄다. 넉넉히 채워진 공동 물품 바구니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교사가 사비를 덜 쓰게 해주고, 무엇보다 모든 아이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Equal Access)를 보장해 준다. 준비물 목록에 적힌 여분의 물품들은, 알고 보면 ‘내 아이’를 넘어 ‘반 전체’를 배려하는 공동체적 나눔의 초대장인 것이다.

부모님께 드리는 제언: 준비물 한 상자에 담는 ‘우리’의 마음

이는 앞선 칼럼에서 이야기한, 미국 교육이 되찾아가고 있는 ‘우리(We)’의 가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개학 준비물을 챙기실 때, 목록을 단순한 소비 지침이 아니라 ‘우리 반 공동체에 대한 작은 기여’로 바라봐 주시기를 권한다. 혹 형편이 허락한다면 연필 한 다스, 휴지 한 통을 여유 있게 더 넣어주시는 것도 좋다. 그 작은 나눔이 이름 모를 어떤 아이의 하루를, 그리고 사비로 교실을 지키는 교사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것이다.

또한 학기 중 교사가 특정 물품을 부탁할 때, 그것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부족한 예산 속에서 아이들을 지키려는 절박한 손짓임을 헤아려 주셨으면 한다. 준비물 목록 한 장은 단순한 쇼핑 리스트가 아니다. 그것은 예산이 부족한 시대에 우리 아이들의 평등한 배움을 지켜내려는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공동체의 약속이다.

올해 개학에는 그 상자 안에 ‘우리’라는 마음 한 조각을 함께 담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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