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1, 2023

죽음 3

예전에 읽은 일본 미스터리 단편 소설 중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어느 젊은 부부가 사랑 속에 살다가 부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소원을 남편에게 남긴다.
자기가 죽으면 화장한 유골을 곱게 갈아서 도자기공에게 가지고 가 자신의 뼛가루를 섞은 자기 화병을 만들어 부부의 침실에 있는 침대 옆 탁자에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사랑했던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자 찾아갔다. 도자기공은 특이한 주문에 각별히 정성을 들여 뽀얀 도자기를 빚어 가마에 구웠는데 나중에 보니 한가운데에 옅은 핑크빛 줄무늬가 한줄 가있는 것이었다.


도자기를 반죽하고 빚는 과정 중에도 가마 속에서 굽는 동안이나 유약을 바르는 과정 중 그 어디에서도 이런 색감이 들어갈 일이 없어 의아스러웠다는 도자기공의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유골도자기를 받아들고 돌아와 침대머리 옆 탁자에 두고 아내를 보듯이 하면서 지냈다.
아직 젊었던 남편은 몇 달이 지난 후에 여자 친구가 생겼고 어느 날 저녁 그녀를 자신의 침실로 데리고 와 사랑을 나누고 함께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전날 밤까지 멀쩡했던 그녀가 죽어있었다. 경찰이 왔고 검시관은 시체를 검안해보고는 별 특이사항이 없이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 후 새로이 여자 친구가 생긴 남편은 다시 그녀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다음날 아침 그녀역시 죽은 채로 그의 옆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역시 알 수 없는 급사로 판명 났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으나 그럴 수도 있지 싶어 다시 연애를 한 그는 세 번째 애인마저 침대에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아침에 문득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내가 애절한 눈빛으로 남긴 말이 생각났다. 당신의 유일한 사랑은 오직 나뿐이며 나는 언제나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켜볼 것이라던 그리고 당신에게도 나만이 유일하게 당신이 사랑한 여인이라는 것을 약속해 달라던.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약속을 함께 했던 자신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아뿔싸! 이것이 그녀가 해달란 약속이었던 건가! 죽어가는 아내의 애절한 얼굴 표정과 남편의 경악스런 눈빛이 오버랩 되어 나의 머릿속 스크린에 펼쳐지며 소설의 마지막 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과연 그는 이후 누군가와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까 아니면 도자기병을 어디로 치워버렸다면 혹은 밖에서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하는 무척이나 단순하고 어리석은 궁금증이 잠깐 들었었다. 그리고 십 수 년 전이었던 거 같은데 해외토픽에서 봤던 미국소식 중에 하나 더. 좀 산다 싶은 여인네들 사이에서 그때 잠시 유행했던 것이 남편이 죽으면 그 뼈에서 최신 과학 기술로 탄소를 쪼옥 추출하고 꽈악 압축하여 완전 축소하면 옅은 노란 빛을 띤 고운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데 그 비용이 이만불이나 들지만 오래도록 자신과 생을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낼 수 없는 아내들이 죽은 남편을 계속 손가락에 끼고 죽어서도 함께 하길 원한다며 부자 집 과부들 간에 유행이라는 소식이었는데 아름다운듯하면서도 섬찟했다. 거기다가 유골다이아몬드의 빛이 노랗다니 섬뜩했다. 집착은 무섭도록 질기다.


소설 속 일본부부의 이야기는 죽은 아내의 집착이고 사실 속 미국부부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아내의 집착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집착도 뉴스로 종종 보는데 떠나려는 아내에 대한 폭력과 살해로 보도된다.
그녀는 때를 기다렸으나 그는 일을 저지른다. 남자들은 빨리 불붙어 쉽게 타오르고 싫증나면 떠나고 빨리 잊어버리게 생겨먹었고 여자들은 천천히 불붙으나 오래 타고 떠나지도 못 하는데다가 잊는 데에도 한참 걸리고 뭔 일이 있었건 살다가 돌아오면 불쌍하다며 받아준다. 반대인 경우도 더러 있다.
살다보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면 언제나 마음 편히 행복할 수 있다. 가겠다면 가게 두자.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자.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으나 그 계획에 목매달지는 말자.

너 떠나면 나 편해서 좋고 너 있으면 나 아니 외로워 좋고. 너 떠났다가 떠나보니 별거 아니다 싶어 돌아왔는데 나 그때까지 혼자이면 너 받아주고. 허나 애석하게도 나 혼자 아니면 너 딴 사람 찾아보고. 마땅한 사람 없거들랑 너 가끔 외로워도 혼자 편히 살면 되지 괜시리 일 벌릴 것 없다.
하루는 긴 듯해도 일주일 일 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白駒過隙(백구과극).벌어진 문틈으로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듯 인생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난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그것에 정성을 들이고 눈앞에 있는 것만을 마음에 담을 일이다. 생각은 다 쓸데없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렐루야 아멘.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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