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월 2, 2022

죽음 2

한국에서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무덤봉분을 만나게 되면 낮엔 별로 무섭지 않아도 밤길에 만나면 무섭다. 거기다가 산을 뒤덮은 공동묘지는 하물며 벌건 대낮에도 무섭다. 드문드문 뜯긴 잔디나 잡풀을 머리에 달고 있는 흙무더기라 불쑥불쑥 솟아오른 딱 사람 키만큼의 지름인 반구들이 꽉 들어찬 죽은 자들만의 거처는 한국에서는 산자들의 도시를 한참 벗어나야 나온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살던 시절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가라데 도장은 절의 경내에 있었는데 절집 입구에서부터 도장 입구까지 양쪽으로 비석이 쭉 늘어서 있었다. 집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을 찾다가 그곳에 등록을 하고 다니게 했는데 비오는 저녁에 우산을 쓰고 아이를 데리러 가면 무서웠다.


일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서 출퇴근 시와 장 보러 갈 때도 많이들 타고 다녔다. 당시가 1998년 즈음인데도 보행자도로 턱을 애초부터 경사로 만들어 놓아 자전거타기가 좋아 이런 저런 볼일이나 이삼십 분은 걸리는 애들 학교에 갈 때 자전거를 즐겨 탔다.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가 세일 품목에 혹해서 예정에 전혀 없던 쌀자루, 간장 같은 무거운 것까지 용감하게 덥석 집어 들어 뒷자리에 동여매고 앞의 바구니와 자전거 핸들 좌우로 무게 중심을 잡아가며 집을 향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가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얇은 비닐 봉다리밑이 살살 미어터져 간장병을 선두로 식재료들이 행 길에서 우루루 쏟아져 길바닥 위를 땍데구루 굴러 산지사방으로 뒹구는 바람에 난감했던 때가 생각난다.

기세는 드높았으나 철이 없어 사서 고생을 하느라 더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후쿠오카는 비가 자주 내렸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설 때엔 구름 끼고 괜찮았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엔 비가 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학교를 오고가는 골목길을 지나다보면 또 다른 절이 있었다. 절 마당에는 커다란 고목들이 몇 그루 있었고 촘촘히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절집 안 지하실에 낮이나 밤이나 항시 켜놓는 전등불 덕분에 해가 떨어지면 지하실의 비석들이 밖에서도 다 보였었다. 어느 날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는 어둑어둑한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고개가 절로 그리 돌아가 지하실의 비석들이 보이는 바람에 흠칫했다.


큰아이 말마따나 그야말로 한꺼번에 죽어서 거기에 몰아다 묻었는지 모르겠으나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머리털이 쭈뼛 섰는데 그 후로는 아무리 급해도 지름길인 그 골목은 피했다.
일상이 바쁜 산 자들은 죽은 가족의 영혼을 잘 달래어 천도 시키는 일은 절간의 스님들에게 맡기고 결혼식은 예배당에서 한단다.
오래전 일본 해안도시의 쇼핑가를 구경하면서 인근 공원을 산책하다보니 작은 예배당이 있어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아담하고 수수하면서 깔끔하고 예쁘장했는데 그곳이 교회 웨딩하우스였다.
기독교 신자건 아니건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혼은 교회에서 하고 죽은 뒤엔 절에 묻힌다는 말이 있다는데 편리하긴 하겠다.


유골항아리를 자신의 집안으로 모셔와 차려놓은 불단이나 신단에다 올려놓고 혼령을 위하여 또는 집안의 안녕을 위해 수시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죽음을 터부시 하여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문화는 아닌 듯싶다.
고려 때의 불교신앙이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왕권확립과 치세치민을 위하여 유교로 바꾸는 바람에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여 부모가 죽으면 크게 곡소리를 내어울며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표현했고 부모의 산소 가까이에 허술한 거처를 만들어 삼년동안 곡을 하면서 부모 곁을 지켜 효자가 되길 강요당했다.
안 그래도 삶은 힘든데 그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다가 크고 깊은 몸과 마음의 병이 들어 심히 앓다 죽기도 했다.
허술한 옷에 부실한 음식, 불편한 잠자리에 더위와 추위를 겪어내면서 허구 헌 날 죽은 부모를 생각하며 슬퍼해야 했으니 외로움과 공포, 불안증에 신경과민, 거기다가 우울증까지 와도 아주 깊게 왔을성 싶다.


도시 내에 공원묘지가 있어 죽은 뒤 육신이 어디로 가서 어찌 되는 지 수시로 보고 사는 여기 미국은 어쩌면 도시가 계획되기 전에 묘지가 먼저 조성 되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랬다고 해도 공원묘지 바로 옆에 상가건물을 짓고 도로 건너편에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일은 우리 정서라면 파내어 이장을 시켜서라도 멀리 떨어뜨려 놓았을 테고 순서가 바뀌어 도시 내 넓은 빈 터에 묘지가 들어서는 것도 절대 불가능 한 일이다. 사실 죽음과 삶은 하나인데 말이다.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라 다니는 꿈을 꾸고 깨어나 말한 것처럼 나비가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사람이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오직 모를 뿐이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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