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3, 2022

죽음 1

한국 일산에서 살던 시절에 중학교 2학년이었던 작은 아들은 그때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라 힘들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들어가고 군대도 끌려가고 치열한 취업경쟁 속에 밥벌이를 하면서 기라성 같은 학력과 뒷배를 갖춘 동년배 청년들과 머리싸움 몸싸움을 하면서 이삼십 대를 보내고 조기 퇴직하여 또 치열한 삶의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2006년 당시의 한국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 시민권자인 아이들을 자유롭고 창의적인 미국의 교육시스템 속으로 다시 들여보낼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애들 아빠와 내린 결론은 국적선택의 시간이 다가오는 큰아들을 미국에서 하이스쿨을 마치고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게 먼저 데려다 놓고 아직 어린 작은 아들은 더 품안에 데리고 있다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침에 나가 학교수업 받고 밤늦도록 학원과 도서관에서 입시공부에 매진하면서도 친구들과 재미나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던 큰아이는 자기가 갈 길은 이미 결정했고 한국에서 잘하고 잘 될 테니 군대를 가더라도 미국으로 안가고 싶다고 했다.
헌데 부모 마음에 미국 시민권자로서 자식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특히나 자식의 군대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 당시 우리에겐 부모로서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줄 뒷배도 경제력도 탄탄하지 않았다.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이 열심히 머리써가면서 살아왔으나 사회적 지위와 벌어놓은 재산으로만 평가되고 저절로 남과 비교되어지는 것이 관습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행복도 따라서 박탈되어지는 삶을 살고 있던 당시의 우리 삶을 우리 애들은 겪지 않고 더 많은 기회와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에서 마음껏 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큰아이에게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미국의 좋은 점을 부각시켰더니 반은 넘어왔는데 큰애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지동생이랑 같이 가게 해주면 가겠다는 것이었다.
오우 그래? 그렇다면 동생도 붙여주고 엄마도 같이 가마, 하고 미국으로 다시 건너오게 된 것이 무려 14년 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형한테 낚여서 아무 것도 모르고 일찌감치 미국으로 묻어 돌아오게 된 작은아이는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일본으로 가 후쿠오카 인터내셔널 스쿨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여 미국과 유럽, 일본 아이들과 미국식 학교에서 5년을 다녔고 한국으로 돌아와 또 5년간 한국식 수업을 받다가 다시 미국의 교육환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제 형과는 달리 늘 백인 여친을 사귀었는데 유로피안 걸들이 몸매도 얼굴도 예쁘고 순수하다면서 그녀들이야기도 가끔씩 들려주어 나를 웃겨주곤 했다.
작은 아들이 뉴욕에서 칼리지를 다니던 때엔 여름방학이 되면 한 달 남짓 집에 와서 머물다가 갔는데 꽤 크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하다가 만났던 유명인들이나 서빙 하다가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들려주었다.
어느 날은 여친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한국의 공동묘지 사진을 보여주었단다, 너 한국무덤은 어떤지 보고 싶지 않니 하면서.
사진을 본 순간 ‘오우 마이 가쉬! 쏘우 스케어리!’ 하면서 예쁘고 순수한 백인 그녀가 기절사팔을 하더라며 킬킬 거렸다.

여기 미국의 공동묘지는 그냥 보통 공원과 같아 별 위화감이 없는데 한국의 공동묘지는 우리들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무섭게 보여 지나 보다싶어 나도 따라 깔깔거리며 하필 그걸 왜 여친에게 보여줬느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단다.
1992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 시댁근처인 인천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주말이면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금촌 전원주택에 사시는 친정엄마를 뵈러 가곤 했는데 국도를 운전해서 가다보면 무덤으로 덮인 산을 보게 되었었다. 아마 김포 무슨 공동묘지였던 것 같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혀진 돌잡이 아기는 잠들어 있는데 네 살짜리 큰아이가 차창 밖을 보다가 묻길, ‘엄마! 저기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는 것들은 뭐예요?’ 하기에 보니 묘들이었다. ‘아, 그건 사람이 죽어서 묻은 곳들이야.’ 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죽었어요?’ 하고 다시 묻는 바람에 운전 중에 빵 터졌었다.
대답은 잘 해줘야 했기에 ‘한꺼번에 다 죽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차례로 모셔다가 땅에 파묻다보니 저렇게 많아 진거야. 그러니까 늙어서 저절로 죽은 사람도 있고 병에 걸려서 앓다가 일찍 죽은 사람도 있고 사고 나서 죽은 사람도 있는 거지.’
내 답변을 듣더니 큰아이는 잠시 조용했는데 죽음을 처음으로 접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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