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4월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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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참된 제자가 됩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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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2:18~25

벚꽃이 만발하는 새봄과 함께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4년간 열리지 못했던 진해 군항제도 36만 그루 벚꽃 향연이 24일 전야제로 시작하여 열흘 동안 열리게 된다. 코로나의 팬더믹의 긴 영적 겨울잠을 깨우고 새봄과 함께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절의 영광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


T. S. 엘리엇(Eliot)은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 구절에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라고 서술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후 모든게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있으나 정신적으론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의 삶을 <황무지>로 비유했다. 지난 3-4년간은 이 지구촌은 엘리엇트의 시의 제목처럼 황무지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황무지에 약동하는 봄과 함께 새싹을 틔우고 봄꽃이 만발하는 봄의 축제, 향연이 열리고 있다.


2023년도 고난주간을 앞두고, 지난 한 해 동안 웅크리고 있는 영적 생활을 다시 일으키고, 새로운 영적 무장과 재도약의 시즌이 다가왔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베드로 사도가 오늘날 성도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 “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참된 제자가 됩시다”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한다.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오늘의 삶이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가를 깊이 자성하며 새로운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다.
정작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깊이 묵상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결단하는 갓이 성도로서 우선순위가 아닌가 깨닫게 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제자훈련 영향으로 “제자”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즐겨 하고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제자로서의 삶은 퇴색되고, 그 이름값을 다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이번 고난주간에 제자인 성도들과 제자 공동체인 교회가 깊은 자성과 각성이 일어나길 바란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가 모인 공동체로서 제자란 의미를 깊게 묵상하고 제자란 말을 많이 활용하고 진실한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 제자란 말이 결코 생소한 것이나 사람의 생각에 만들어진 어떤 쓰기 좋은 말이 아니다.


“제자로 삼는다.” 동사형이 신약성경에 복음서 6회 기타 성경에 19번 등 20번이 나온다. 그리고 “제자”란 명사로 약 264회 나온다. 대부분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제자”라는 말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세상에서도 제자란 말을 얼마나 사용하지 않는가? 물론 성경에도 일반적인 의미로 제자란 말로 사용된 곳이 많다.


가령, 모세의 제자들(요 9:28), 바리새인의 제자들(막 2:18) 등처럼 학문을 배우는 학도, 어떤 스승의 문하생, 직업훈련을 받는 자는 너무나 딴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랍비 세계 곧 세속적으로 제자란 학생들이 선생을 택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배움의 목적에 따라 자신의 입장과 취향에 따라 가르침을 받을 자를 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배울 것을 다 배우면 그 스승을 떠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전혀 다르다. 제자인 그리스도인이 스승되시는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택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의 제자로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과 정반대로 그리스도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택하시고 부르시는 주도권을 가지고 제자를 선택한다. 세속 사회에서는 제자들이 학습과 훈련 기간 동안에 스승에 복종하고 어느 정도 다 배웠다고 생각될 경우 스승을 떠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르신 주님께 영원토록 복종하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자들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제자란 주님에 의하여 주님을 위하여 부르셨다는 절대적 명제가 있다. 또한 일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제자는 배우자요, 훈련된 자요, 따르는 자이다. 여기서 특별히 제자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이다. 따라가는 자에게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2가지 의미를 부여하셨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첫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고 둘째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본문 말씀(벧전 2:18~25)은 사도 베드로가 기록한 말씀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의 의중에는 지난날 참으로 기억조차 하기 싫은 치욕적인 자신의 실패를 살 깊이, 뼈 깊이 느낀 나머지 이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여러분이여, 예수 제자된 여러분들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제발, 부디 저처럼 실패하지 마시오. 나의 실패를 롤모델로 삼고 결코 저처럼 실패의 제자가 되지 마세요”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본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제자 중 수제자가 되었던 베드로이지만 막상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위하여 잡히시던 전날 밤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제자답지 못하게, 수제자답지 못하게, 자신이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결국 계집 종에게 예수를 부인하는 창피스러운 굴욕을 하고 말지 않았던가?.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디베랴의 만남과 과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3번의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에 대한 사랑의 확인을 받고 새사람이 되지 않았던가?


그 이후,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충만하여 복음 전하다가 심지어 주님의 죽는 모습까지 따라 주님처럼 죽되 주님보다 더 겸손하기 위하여 거꾸로 매어 달려 순교한 베드로 사도가 남긴 이 말씀이 아닌가?


우리의 선배 제자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부르심은 주님의 사신 자취에로의 부르심이다”라고 그는 강하게 선포하고 있다. 오늘의 그리스도도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매우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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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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