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로 돌아와 사람들의 머리손질을 다시 할 수 있어 기쁘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하고 손님 역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샾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실내에는 모두 합해서 열 명까지만 머무를 수가 있어 카운터에 비치된 노트에 각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밖에서 기다리면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손님을 한명씩 들여보내는 식으로 며칠을 해보고 있다.
머리손질이 끝나면 바로 도구와 의자를 클린, 소독하고 자리를 손 소독을 마쳐야 다음 손님을 받을 준비가 끝난다.
머리를 깎기 위해 밖에서 두세 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했던 손님들이 기다리다 지루하여 주차장을 벗어나있어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려도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시야가 덜 확보되는 느낌도 들어 일이 굼뜬데다가 손님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귀 주변의 머리카락 손질은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주특기인 ‘빨리 잘하기’ 와는 영영 이별을 고하고 나니 몸맘이 편하다. 덕분에 일하는 행위 그 자체, 그 순간에 몰입하고 머물고 맛보고 누리는 심심하면서 깊은 맛. 손님 머리통과 머리카락을 백퍼센트 보는 느낌이라니!
늘어난 청소와 소독 과정을 몇 번 되풀이 하다가 ‘이제부터는 이렇게 매번 해야 한단 말이군.’ 하는 생각이 느닺없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옴과 동시에 몸이 확 지친다. 실수로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려 맑은 샘물을 물들여버린 순간이다. 그 물감 한 방울은 누가 떨어뜨린 것일까 어디에서 떨어졌을까 가슴속에서 나왔을까 머릿속에서 나왔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리 확 떠올랐다.
뇌 과학자들이 말하는 그곳, 전전두엽에서 만들어낸 것임에 분명하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뇌부위로 우리 이마 바로 안쪽에 위치한 부분인데 약 5, 6백만년 동안의 오랜 진화의 결과로 생겼단다.
오륙 백 만년동안 이렇게 살아남아 번성하고 문화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투와 시행착오와 대비와 대책을 세우면서 지금에 이르렀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변화는 생명을 위협했으니 지금 이와같은 문명사회 속에서도 어떠한 변화에 대해서든 일단 본능적으로 겁나고 두렵다고 여겨지도록 입력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야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물론 가능한 한 살아남아서 이게 무엇인지 알아야하고 깨달아야 한다. 헌데 허구 헌 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오래 살아남기만 하면 무엇 하리오. 단 하루를 살아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평화롭고 즐겁게 살다 가야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이었던 우리들의 삶이 아니었던가. 매순간의 존재함만이 있을 뿐이다.
유투브 속의 목사님, 신부님과 스님들의 말씀과 법문, 그리고 저명하신 박사님들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되풀이해 들었어도 생활 속 경계에 부딪히면 예전 생각자리가 툭 튀어나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에는 그것에 휘둘림이 오래갔으나 이제는 튀어나온 그것을 감지하여 그것이 실제가 아니란 것을 이것에게 알려주면 마음은 몸보다 빨리 바뀐다.
물감 한 방울로 바뀐 샘물이 다시 맑은 물로 바뀌는데 몇 초 밖에 안 걸린다. 마음이 그리 빨리 바뀌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그 속도를 따라잡을 물체는 없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이 나고 사라진다고 한다. 하루가 아니고 한 시간이라고 했던가? 일초라고 했던가? 하루인지 한 시간인지는 의미가 없다. 몸을 바꿔서 마음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마음을 바꾸어 몸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에 매달려 망상 속에서 일부러 불행을 만들어내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행복 속에 머물자.
힘듦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누군가 말하면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외려 짜증이 나기도 했다.
마음이 먹어지지 않는데 어쩌라구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마음은 절대로 먹어지지 않는다.
몸을 그곳에 가져다 놓는 것이 첫 번째, 손으로 그것을 만지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렇게 자주하다보면 저절로 몸이 학습하면서 잘하게 되고 좋아지기까지한다.
마스크 쓰고 일하니 표정관리를 안 해도 되고 화장도 안 해도 되고 거기다가 자주 아프던 몸이 안 아프다. 서로 마스크 쓰고 상대하니 잡병균들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져서 최고다.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고 나쁨이란 애초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