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母岳山)은 전북 김제시와 완주군에 걸쳐있는 높이 793m의 산이다. 모악산 도립공원 입구에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금산사라는 사찰이 있다. 특별히 금산사에 있는 3층 미륵전*은 높이 11.82m의 미륵불이 안치되어 있고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었다. 정상에는 방송사 송신탑과 건물이 설치되어 있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모악(母岳)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금산사지에 따르면 ‘엄뫼’는 큰 산을 뜻하는 것으로 한자가 들어오면서 어머니산 이란 뜻으로 의역하여 ‘모악’이라고 적었다고 전해진다.
등산코스: 금산사 주차장 – 금산사 -심원암-심원암길-북봉-정상-북봉-금곡사능선길-금곡사-달성사-중인리(4시간 30분)
필자는 중학교 동창생 3명과 함께 제 24차 산행을 모악산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7월말 장마가 끝나고 곧바로 태풍 ‘카눈’이 막 한반도를 관통하며 지나간 직후라서 하늘에 구름이 많고 아침에 비가 조금 내렸다. 친구가 서울에서부터 4시간가량 운전해서 금산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해가 쨍쨍나니 또다시 주춤했던 무더위가 느껴진다. 왼쪽 금산사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어 오르니 무지개 모양의 해탈교가 나왔다. 해탈교를 건너 왼쪽으로 금산사에 들어섰다.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서 앞으로 걸어가니 배롱나무꽃들이 무더기로 붉게 피어 여름의 끝자락을 밝히고 있었다. 곧 정면에 대적광전과 오른쪽에 미륵전, 그 사이에 금산사 5층석탑 그 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종모양 탑, 그 오른쪽으로 적멸보궁이 눈에 들어온다.
금산사를 나와 대나무, 전나무 사이로 난 콘크리트 길을 따라 걸어 오르니 계곡가에 큰 두꺼비가 보이고, 껍질이 붉고 기품있는 소나무도 눈에 띈다. 갈림길에서 심원암쪽으로 향했다. 심원암은 이름 그대로 배롱나무, 대나무, 상사화에 묻혀있는 고즈넉한 암자로 인적조차 끊어진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심원암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죽, 단풍나무, 참나무, 활엽수 사이로 난 산길은 어제 내린 비로 미끄럽고, 숲은 습기가 많고 눅눅하다. 날이 더워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산모기와 산파리까지 달라붙어 하이커의 발걸음을 무디게 붙잡고 있다. 심원암 삼층 석탑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석탑쪽으로 향했다. 고려시대때 세워진 석탑으로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정표 삼거리에 되돌아 쉬어가려 했는데 산모기가 하도 덤벼들어 쉬기를 포기하고 산을 올라 능선길에 합류했다.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다 보니 태풍‘카눈’으로 부러진 잔가지들과 참나무 열매들이 발에 많이 밟힌다. 긴 데크계단을 올라 헬기장이 있는 북봉(735m)에 도착했다. 정면 멀리 모악산 정상의 건물과 송신탑이 아스라이 보인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정상 부위가 사라지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시계는 불량하다. 또 데크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 송신탑과 건물아래를 통과해서 건물옆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을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건물, 송신탑, 철망 사이에 정상석이 서있는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정상석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무가 심해 전망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평화동, 구이동 저수지 , 가까운 산들은 식별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상석 서쪽으로 솟아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데도 서쪽은 운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쪽 산아래에서 산위로 구름이 올라오다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나 후퇴하곤 하는 모습이 보인다.
구름과 바람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구름이 마침내 산 전체를 장악하자 하산을 서둘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북봉에서 매봉쪽을 향했다. 갈림길에서 금곡사, 중인리쪽으로 내려왔다. 내리막길도 돌과 나무뿌리가 드러난 미끄럽기 그지없는 길이다. 계속 내려와 조그만 개울이 나오고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돌무더기 너머를 지나 큰 돌부처가 마당에 세워져있는 금곡사에 도착했다.



스님의 자취는 없지만 스피커를 통해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산속에 울려 퍼지고 있는 조용한 절이었다. 돌이 촘촘하게 박힌 길을 걸어 내려오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계곡 물소리를 벗하며 내려오다 또 달성사를 만났다. 마당의 불상위치와 크기, 건물 배치가 금곡사와 비슷하다. 드디어 중인리에 도착했다. 길가에 고추, 콩, 고구마, 땅콩이 심겨져있는 밭들과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을 소환했다. 중인리 계곡 다리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발을 벗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무릉계곡이 부럽지 않다.
한 친구가 촌로에게 복숭아 몇 박스를 사서 다른 친구들에게 한 아름씩 안겨주니 친구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난다. 어머니품같은 산자락 계곡에서 마음이 통하는 동창생들과 신선놀음을 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될까?






산을 다 내려와 산쪽을 바라보니 운무가 다 사라지고 정상이 뚜렷하게 보여 아쉬움이 남았다. 혼자 산을 갈 때면 일종의 고독감을 느끼곤 하지만, 오늘처럼 운무가 끼니 고독감이 더 증가하는 듯하다. 흔히 고독감(solitude)는 외로움(loneliness)과 구별된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고독감은 혼자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혼자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정신의학과 의사인 이시형박사는 고독감에서 비롯한 사색없이 창조는 없다고 그의 책*에서 주장했다.
고독력에서 플라톤,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같은 철학자가, 밀레, 고흐, 렘브란트, 이중섭같은 화가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베르디같은 음악가가 탄생했다고 하니 혼자 산속을 거닐며 고독감에 처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성싶다.
*미륵전(彌勒殿)-3층건물이지만 건물안쪽은 통층으로 이루어짐. 미륵불 본존은 11.82m로 세계최고임(실내기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중기의 건축물. 국보 제62호
*창조의 심장, 우뇌-이시형
안개속에서
헤르만 헤세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