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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2월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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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연의 산행 Essay] 등정 (登頂)주의, 등로 (登路) 주의 (2)

지난 번 칼럼에 이어 등로주의에 대해 더 설명하고자 한다.
등로(登路)주의를 머메리즘 (Mummerism) 이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영국 출신의 등산가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 (Albert Fredric Mummery, 1855 – 1895) 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산에 도전장을 내민 최초의 산악인일 뿐만 아니라 지도와 가이드에 따른 등산을 거부하고 ‘등산의 본질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 것을 극복하는데 있다’ 고 말한 것 처럼 극단적인 등로주의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는 ‘벌거벗은 산’ 이라는 뜻을 지닌 낭가파르바트 (8,126m) 에 두 차례 등정(登頂)을 시도하여 6,100m 까지 올랐으나 세번째 시도에서 눈사태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의 저서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에서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상을 버리지 못한다’라는 유언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다 다양한 루트’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보다 어려운 방식’으로 정상이라는 결과보다는 그 곳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했던 우리들의 영웅은 그렇게 낭가파르바트의 설산에서 허무하게 지고 말았다.

Mt. Everest에 오르는 것이 상업화되어 70,000 불만 내면 등반 가이드를 따라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하니 머메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등로주의는 등반사에서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
등로(登路)주의를 실천한 등반가를 들자면 레인홀트 메스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을 뿐만아니라 무산소 등정, 단독 등정, 연속 등반, 알파인 스타일 등반을 몸소 실행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7,500m 이상의 지대를 ‘죽음의 지대’ 라 부르는데 그 곳의 공기는 지상의 1/3에 불과하여 몇 번 호흡을 하고 한걸음 내딛을 정도이고, 환각 증세가 일어나고, 고지대 적응을 잘못하면 폐수증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8년 메스너가 무산소로 Mt. Everest를 오르려고 했을 때 의사들은 오를 수는 있지만 정상적으로 내려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한계 영역에 도전하여 정상 등정(登頂) 후 무사히 내려와 등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무산소 등정)
또 1982년 메스너는 칸첸중카, 가셔브롬 2, 브로드피크등 히말라야 8,000m급 세개 봉우리를 연속으로 오르는 헤트트릭에 성공했다.(연속 등정)

이어서 같은 해에 낭가파르바트도 단독으로, 무산소로,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하여 세계 등반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단독 등정, 무산소 등정, 알파인 스타일 등정) 그의 등정 기록은 ‘검은 고독, 흰 고독’에 생생히 나타나있다.
한편 1980년에는 폴란드 원정대가 Mt. Everest를 최초로 겨울 시즌에 도전하여 성공하였다.(동계 등정)

한국 원정대가 히말라야에서 이룩한 등로주의에 근접한 성과는 1987년 – 1988년 허영호가 무산소로 동계 Mt. Everest를 등반했고. 2009년 박영석 원정대가 Mt. Everest 남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발한 것을 들 수 있다.

지난 번에 이어 등로주의 때문에 생긴 두번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 7월 4일 (목) 미국 독립 기념일에 Boulder시 뒤쪽에 위치한 Indian Peaks (3,613.7m), Wildness : Devil’s Thumb Lake를 하이킹 하려고 혼자 집을 나섰다. 하이킹 가이드 북에 따르면 Hessie Trailhead – Devil’s Thumb Bypass – Devil’s Thumb Trail을 되돌아오는 11마일 코스였다.

능선에서 바라본 남서쪽 산들

트레일에 진입하니 한 여름인데도 숲속은 온통 눈투성이이고 길 곳곳이 눈에 덮여 있어서 길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지난 5월 27일 Memorial day때 이곳에 왔으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트레일을 찾지 못하고 Lost lake 주변을 5시간이나 헤매다가 돌아가야 했었다. 잘못하여 눈속에 빠지기라도 하면 무릎까지 눈에 잠기기도 했다. 깊은 산속이라 이제서야 길 주변에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질퍽거리는 눈을 밟으며 한참 오르니 오른쪽에 Jasper Lake가 있었다. 눈덮인 큰 산아래 고즈넉히 자리잡은 호수, 얼음과 눈으로 하얗게 덮인 호수 – 태고의 적막속에 홀로 존재하며, 찬란한 빛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장엄한 광경이라고나 할까. 나는 호수 앞에서 한참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서있었다.

호수를 뒤로하고 계속 오르니 전형적인 콜로라도의 고산처럼 무수목 지대가 나왔다.
아래쪽과는 달리 햇빛이 들어 눈은 다 녹아 없어졌고 햇빛을 받으니 따사롭게 느껴진다. 시야가 확 트인 길을 따라 능선 직전까지 올랐다. 깎아지른듯한 6m쯤 높이의 눈더미가 앞을 가로막았다.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또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여기만 오르면 능선인데. 눈에 발로 구멍을 파고 두 발을 끼워 넣고 손으로 구멍을 파서 미끄러지지 않게 손을 지지했다. 또 윗부분에 구멍을 파고 발을 끌어올리고 손으로 구멍을 파기를 반복한 끝에 힘겹게 능선에 오를 수 있었다.

능선에서 바라본 Indian peaks

동,서,남,북 사면이 확 트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온통 푸른 산과 하얀 산들의 세상이다.
산과 산들이 겹겹이 싸여 펼쳐진 산들의 물결! 산과 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산들의 향연(饗宴)! 여기에 나, 산, 하늘, 바람뿐이었다. 고요한 적막속에 내 실존에 대한 생각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과 죽음, God 에 대한 생각의 편린(片鱗)들이 어디선가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어디론가 흘러서 가는 것처럼. 나는 여기서도 한참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나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나의 발걸음은 길도 없는 길을 걸어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두 호수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풀, 돌, 바위로 된 길 아닌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오른쪽 작은 산봉우리 아래 두 호수가 보인다.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와 Bob Lake에 이르렀다. 큰 얼음 조각들이 호수위에 둥둥 떠있었고, 얼음에 갇혀있던 물들이 풀려나 막 호수를 벗어나고 있었다. 호수 아래쪽, 남쪽으로 가로질러 내려가자 반가운 트레일이 나왔다. 조금 더 내려가니 Betty Lake가 또 나왔다.
여기서도 나, 호수, 얼음, 눈, 물뿐이었다. 트레일을 따라 한참 내려간 후에야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두 하이커와 만날 수 있었다. 세시간만에 처음 만난 하이커들이라 무척 반가웠다.
King Lake Trail을 만나서 Hessie Trailhead로 복귀했다. 8시간 55분의 산행, 마일은 산출이 불가능하나 18마일 이상은 걷지 않았을까?

필자는 등로주의에 따른 산행으로 때때로 낯선 상황에 맞닥뜨리고, 예측불허의 일과 마주치고, 조금은 위험한 경계도 넘나들 때도 있지만 이런 산행을 즐기고 있다.
이성부 시인의 ‘안 가본 산’을 인용하며 칼럼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능선 위에 쌓인 눈더미
                        안 가본 산             -이성부 

내 책장에 꽂혀진 아직 안 읽은 책들을
한 권씩 뽑아 천천히 읽어가듯이
안 가본 산을 물어물어 찾아가 오르는 것은
어디 놀라운 풍경이 있는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마냥 흘러가고픈 마음 때문이 아니라

산길에 무리 지어 핀 작은 꽃들 행여 다칠까 봐
이리저리 발을 옮겨 딛는 조심스러운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누대 갈참나무 솔가지 흔드는 산바람 소리 또는 그 어떤 향기로운 내음에
내가 문득 새롭게 눈뜨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성깔을 지닌 어떤 바위벼랑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삼 높은 데서 먼 산줄기 포개져 일렁이는 것을 보며
세상을 다시 보듬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사랑의 속살을 찾아서
거기 가지런히 꽂혀진 안 읽은 책들을 차분하게 펼치듯
이렇게 낯선 적요 속으로 들어가 안기는 일이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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