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유명한 조각가 로댕과 조수이자 연인 이였던 까미유 클로델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작품; 1. 로댕 흉상 1888, 청동
우리는 남녀의 사랑이 늘 애절하고 순수하기를 바란다. 현실에선 그럴 수 없기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로댕과 조강지처 로즈, 애인 까미유 그들에게 사랑은 과연 얼마만큼 어디까지 순수 하고 진실했을까? 그 당시 여자들은 미술 학교 입학이 거부되던 시대였는데 19세에 로댕의 조수로 들어 갔으니 까미유는 얼마나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학생 이였겠는가!
로댕 쪽에서 보면 늙고 메마른 부인 로즈 보다는 젊고 예쁘고 예술적 영감까지 통하는 조수 까미유와의 사랑은 당연했겠지만 자신의 모든걸 버릴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로댕은 이미 조각가로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로댕의 어린 시절을 엄마처럼 보살펴 주던 누이가 약혼자의 외도의 충격으로 병들어 죽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었던 로댕은 20여 년을 함께 한 비록 결혼은 안 했지만 로댕의 아이까지 낳은 조강지처 로즈를 버린다는 건 절대 할 수 없는 일 이였을 것이다. 혹 로즈의 희생적인 절대적 보살핌이 순수한 젊은 사랑보다 더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까미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비범한 자아와 진실이 단지 로댕의 정부로서 평생을 살 수는 도저히 없었을 것이고 로댕에게 평생을 바친 재봉사 출신의 로즈 쪽에서 보면 로댕은 결코 놓칠 수 없는 그녀의 전부였으리라. 까미유가 로댕과 사랑을 나누던 시기에서 계산해본다면 로즈와 로댕은 이미 20년 넘게 살아온 부부였다. 그 세월을 어찌하겠는가!
우유부단한 남자 로댕은 둘 다 그대로 있기를 바랐고 까미유와 함께 살 집까지 마련 하여 사랑을 나눴다고 하는데 요샛말로 사랑 한 게 죄는 아니라지만 로댕 정말 골치 꽤나 아팠겠다. 까미유는 로즈와 자기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로댕을 결코 참아 낼 수 없었으리라. 까미유는 결국 로댕 곁을 떠나 자기 분열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로댕을 통해 조각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셋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던 까미유는 사랑에 대한 자기 판단 오류로 자신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갔다. 정신 병원에서 나머지 30여 년을 완전히 미친 것도 아닌 오락가락한 정신 상태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또한 로댕이 자신의 작업 아이디어를 훔쳐 갔다고 생각한 까미유의 의식은 과연 진실 이였을까 피해망상 이였을까? 로댕의 유명한 작품에 직접 참여한 것도 있었으나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까미유로서는 열 받는 일 이였을 거다.
로댕은 말년에는 로즈에게 깊은 애정을 표시하고 52년을 같이 살다가 1917년 2월과 12월에 각 각 죽었으니 사랑의 최후의 승리자는 조강지처 로즈의 압승 이였다.
이 세 사람의 사랑은 브루노 뉘뗑 감독의 “까미유 클로델”(1988)이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박중훈과 최명길이 나왔던 “우묵배미의 사랑” 이 생각나게도 한다.
작품 “로댕 흉상”은 까미유가 1888년 제작했는데 그녀가 로댕과 열애를 시작하려던 시기였으니 실제의 로댕 그 이상으로 멋지게 보았을 것이다. 하늘 같은 스승으로 한창 잘 나가는 조각가로서 한없는 동경과 남자로서의 매력이 작품 곳곳에 배여 있다. 비록 그녀의 사랑은 증오로 변했어도 이런 작품들이 남아 그 당시의 불꽃 같은 사랑의 느낌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나타낸 중년이란 작품에서는 애원하는 젊은 여자(까미유)에게 등을 돌리며 늙은 여자(로즈)의 죽음 같은 강한 힘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남자(로댕)의 힘없는 모습에서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이 너무나 절절하게 표현 되었다. 그런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건 작품 제작 당시의 까미유의 사랑이 지극히 순수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믿는 세상의 젊은이 들아! 한 때의 사랑의 감성과 순수함에 속지 말고 의지 하지 마라. 사랑은 사랑하는 그 당시만이 순수하고 영원할 뿐, 지나고 나면 먼지 같이 바랜 기억과 포장된 추억만이 남을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