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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4월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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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거리의 생불들

사년 전쯤 제리의 바버샾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이발소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컴프레셔. 컴프레셔에서 공기를 만들어내어 호수를 통해 강한 압력으로 바버들 각자의 자리에 연결된 노즐까지 바람을 내보내준다. 원할 때마다 노즐의 손잡이를 눌러 잘려진 머리카락들을 깨끗이 불어서 날려 보낼 수 있고 바닥과 구석구석에 들어가 있는 머리카락들도 불편한 자세로 구부릴 것도 없이 서서 시원하게 불어가며 청소하기에 그만이다.

그뿐만 아니라 클립퍼(바리깡) 사이사이에 끼인 머리카락 쪼가리들도 속속들이 불어내어 이발 도구 청소에도 최고다. 얼굴에 대고 바람을 내보내면 눈, 코, 입도 다 날려가 버릴 듯이 강력하다. 목덜미의 셔츠입구를 통해 쏘면 강력한 바람이 몸통의 앞뒤를 순식간에 훑어주어 완전 짱이다. 사년 전엔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나 혼자만 환자로 여겨질 까봐 쓸 수가 없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마스크 시대라서 더욱 좋다. 그리고 한 가지 이점이 더 있다. 바람이 노즐을 통해 나올 때 그 소리가 커서 주변 소리들을 다 잡아먹어 배속에 모여진 가스를 내보내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가스를 방출하기위해 매번 화장실을 들락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가끔 그렇게 하기도 한다.

헌데 이주 전 어느 날 컴프레셔가 고장이 났다. 핸디우먼인 제리는 부품을 사다가 갈고 어쩌고 하더니 고쳐놓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일찍 퇴근을 하였으나 그녀가 떠나자마자 바람은 바로 끊겨버리고 말았다. 싸구려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바람에 바로 다시 고장이 난 게 분명하다며 리치는 불평을 하였다. 다음날 제리는 다시 부품을 갈아 끼운 뒤 컴프레셔가 노후 되서 기능이 약해졌으니 우리들에게 바람의 세기를 약하게 조절해 놓고 쓸 것이며 전처럼 길게 불어대지 말고 손동작으로 끊어가면서 살살 불라고 하였다. 바람의 세기가 약한데다가 끊어가면서 불어보니 머리카락들이 털어내어 지지도 않았다. 뱃속의 가스도 바람에 맞춰 끊어서 내보내려니 것도 문제였다. 삼십분도 안 되어 바람은 끊겼고 그녀가 고쳐보려 온갖 방법을 다써보았으나 컴프레셔는 수명을 다하고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바람 덕분에 일하는 즐거움이 컸는데 이래저래 껄쩍지근하게 일하면서 이주가 지나니 제리 여사께서 드디어 새 컴프레셔로 교체를 하였고 다시 시원하게 바람을 마음껏 불어댈 수 있어 다시 깔끔한 일터가 되었다.

집수리를 손수 하는 그녀는 홈디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자주 간다. 어느 날 그녀가 홈디포에 들어섰는데 곳곳에 포진해 있던 직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도움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불러대고 뒤뚱거리면서 찾아다녀도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아무도 안 나와 열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홈디포 직원들 사이에서 그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음에 분명하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끊지 않고 쏟아내는 그녀의 말을 듣고 듣다가 직원들도 질렸으리라. 그리고 특이한 용모와 인상착의가 직원들 사이에 다 퍼져 그녀가 홈디포에 들어자마자 다들 알아보고 숨어버리는 것이리라.

제리의 바버샾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그녀가 권해서 샀던 이발 도구가 몇 있다
리치는 자기가 잘 써오고 있는 이발도구들은 그녀가 훑어보며 죄 다 후지다고 하며 자기가 쓰는 것과 같은 제품을 사라고 강권하길래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녀가 대신 사주었다는 이발 도구들을 보여주었다. 내 것과 같은 회사의 제품들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당시에 어느 방문판매상한테서 프로용 가위라기에 백 불이란 거금을 주고 샀다는 이야기를 리치에게 듣자 나 역시 초기에 방문판매상에게서 이백불이나 주고 산 두 개의 가위가 생각났다. 혹시 그 장사꾼이 엘에이에서 왔다는 이러저러한 외모의 한국아저씨가 아니었느냐 물었더니 맞다 고 하였다. 당시에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가던 리치와 나는 시기를 엇갈려 이삼십 불짜리 가위를 그 한인 방문판매상에게 속아 백 불이나 주고 샀던 것이다. 엘에이에서 마눌이랑 차를 몰고 모텔을 전전하며 가위를 팔러 콜로라도 시골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말에 짠해져서 어리버리하고 마음이 여린 죄로 덜컥 사주었던 것이다. 제리가 그런 것 절대로 사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녀의 말은 많이 맞다. 헌데 너무 말을 많이 하고 계속해서 해대니 새겨듣지 않고 흘려듣게 된다. 이삼십 분만 말을 해도 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 와서 더 이상 말하기가 싫던데 그녀는 기운도 좋다. 아마 기운빼지 않고 말하는 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지적이고 부지런하고 유머러스하고 강한 멘탈의 소유자인 그녀는 음식과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도 좋아한다. 그녀가 존경스럽고 그녀가 점점 좋아져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고도 싶지만 오 분에서 십 분이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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