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Leighton이 죽기 바로 전 해에 그린 것이라 한다. 잠과 죽음. 어쩌면 같은 것 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젊은 여인이 은빛 바다를 배경으로 테라스에서 세상의 근심 걱정 따위는 아랑곳 없이 저리도 고운 오렌지 빛으로 6월의 낮잠에 푹 빠져 있다. 그녀의 차림새를 봐서는 노동 하고는 상관 없어 보인다. 뽀얀 피부며 살짝 보이는 가슴의 굴곡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는 몸매만큼 이나 얼굴도 그지없이 아름답다. 세상의 어떤 나쁜 일도 없었을 것 같은 지고 지순한 얼굴이다. 아무 생각 없이 색채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볼만한 그림이다. 그 누가 Leighton보다 더 아름답게 오렌지 색을 표현 할 수 있겠는가! 넋을 잃고 보다가 오른쪽 윗부분 난간 쪽 꽃으로 시선이 갔다. 한 순간 그 꽃이 불필요한 군더더기처럼 보였다. 처음엔 이 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이 꽃이 없다면 그림이 더 편안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손으로 가려보았다. 그랬다. 조금은 편안한 느낌은 있었지만 하지만 뭐랄까? 김 빠진 탄산 음료 같은 그리고 그림이 밑으로 쭉 빠질 것 같은 구도적 문제. 역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꼴. 그의 이런 센스는 오랜 작업 경험상의 축적된 감각 일수도 있겠고 타고난 감각일 수 도 있다. 오래 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재능에 관한 질문을 부모로부터 받곤 했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잠재된 재능이 많이 숨어 있다. 커지면서 성격이나 주변 환경 부모들의 무신경 혹은 과도한 신경 등에 그 재능들이 숨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안타깝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 안에 숨은 재능은 언제든지 튀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존 레논의 Imagine 노래가 떠오른다. 국가와 사상이 없는 세상 그저 아름다움과 순수함만이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은 이 지상에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그리워 하나보다. 간혹 멋진 풍경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꿈꾸는 세상 일 수도 있다. 그 순간에 정지되어 있을 때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그 다음 순간에 대부분 다 깨어져 버리기 때문에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이 예술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저 여인이 잠에서 깨어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채 입가의 침을 닦으며 불편하게 자서 팔 다리가 저리다고 투덜거린다면? 그러나 우린 저 여인이 살포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켜며 사랑스런 포즈로 서 있기를 바란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우리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나를 보내기도 한다.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빼앗은 오렌지색의 순수한 아름다움이여! 영원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