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6월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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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문제의 답안지”를 가지고 거뜬히 살아갑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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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헤일에 고통당하고 계시는 <콜로라도 타임즈> 독자 여러분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이민 생활에 수많은 고난의 고비를 넘기시고 오늘까지 인내하며 거뜬히 살아오신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기원합니다.
역대상 4장 9-10절는 인생의 문제의 답안지입니다. 또한 저의 삶을 바꾼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자세히 읽고 읽다 보면 삶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됩니다. 그 해결책을 깨닫고 노래하며 춤추게 될 것입니다.
역대상 4장9-10절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오늘 말씀의 핵심은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불행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불행한 상황을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라는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입니까?
    야베스 이름의 뜻은 고통(pain, trouble), 수고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정할 때, 나쁜 뜻을 가진 이름을 정하겠습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1) 축복된 이름 2) 희망찬 이름 3) 듣기 좋은 이름 4) 부르기 좋은 이름 5) 기억나는 이름을 정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그리고 숙제로 맡기신 자녀들의 3명 이름을 지을 때 기도하며 심사숙고해서 지었습니다. 지금 이미 3자녀의 어미가 된 장녀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라”고 “찬미讚美”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두 자녀의 아비가 되고 목사이며 교수인 장남은 “복의 근원이 되라”고 “근원根源”이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막내 아들은 “온 백성들 중에 뿌리 같은 존재가 되어라”고 “근민根民”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라, 복의 근원이 되라, 백성들 중에 뿌리가 되라 얼마나 축복된 이름, 얼마나 희망찬 이름, 얼마나 부르기 좋은 이름, 얼마나 기억나는 이름입니까?
    그런데 왜 야베스의 부모는 그의 이름은 “고통”, “수고”라고 지었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름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름은 역사와 문서에 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 그 사람 인간 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야베스, 즉, 고통이라고 지었을까요? 야베스를 두고, 부모가, 친구가, 동네 어른이, 아는 사람들이 고통, 고통, 고통이라고 불렀을 때,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름은 듣는 순간 정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을 왕따를 시켰을 것입니다.
    왜 야베스, 왜 고통이란 나쁜 이름, 부정적 이름을 지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 정황이나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시대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짓을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가 처한 상황에 때란 이름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물에서 건져냈고 장차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내라고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약삭빠르다고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식을 달라는 자신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베스는 고통, 수고라고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추론들이 있습니다. 해석하는 견해들이 다양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이 있고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남편 없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폭행들 당해 낳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미혼모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출산 때에 산모나 태중의 아기에게 생명의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당시 사회나 국가에 큰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추측과 학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제가 소개하는 사람 5명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스티브 잡스, 레오나드 다빈치, 빌리 홀리데이, 마릴린 몬로, 오프라 윈플리 등입니다. 잘 모르시나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생아들입니다. 유복 자녀가 아닌, 사생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역사에 위대한 인물, 놀라운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생아라는 불행한 자신의 인생, 고통스런 자신의 삶, 비극의 상황을 극복하고 명성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야베스가 고통의 인생, 수고로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를 9절에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영어 성경에 “ more honorable”입니다. 그 뜻은 “영예로운 자”, “무게가 있는 자”, “영향력이 있는 자”, “칭찬을 받는 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고통 덩어리”를 “복덩어리”로 바꾸어주셨다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 인생”을 “축복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졸장부 인생”에서 “대장부 인생”으로 역전시켜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손가락질받는 인생”에서 “박수받는 인생”으로, “낙제생 인생”에서 “모범생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뜻입니다.
    놀랍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불행한 상황과 산적한 문제를 바꾸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 노력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 능력으로, 우리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를 우리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꾸어주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재 테이블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아시고, 분명히 깨닫고, 분명히 확신하고, 분명히, 오직, 확실하게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고통의 인생을 바꾸어주십니까?

성경 본문의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뢰다”는 영어 성경에 “울부짖었다”고 되어있습니다. “cried out”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고통의 인생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야베스가 어떻게 했다고요? 울부짖었다고 했습니다. 몸부림치고 매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기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간절성, 기도의 집중성, 기도의 믿음, 기도의 응답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기도했다고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까? 11절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약속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반드시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성경 역사는 줄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신실성을 구약의 족장시대, 출애굽 시대, 광야 시대, 분열 왕국 시대, 예언자의 시대를 거쳐 신약시대의 메시야의 도래와 십자가 구속 사건과 부활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종말의 지금까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여정을 살펴볼 때도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그 한마디는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할 뿐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신 7:9). 신실한 하나님은 미쁘신(고후1:18) 진리의 하나님(시 31:5)이시다.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신실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할 때, 어떻게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뀌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에서 해결 받는 길,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뀌는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해결입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역사입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저수입니다. 기도가 용광로입니다. 기도가 보고입니다.

칼빈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는 믿음의 측정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공급을 채울 수 있는 무한한 신용카드입니다.
토레이는 “하나님께는 우리의 수많은 수요를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급이 있다.”
패드릭 존스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해야 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 없는 성도는 사탄의 밥입니다. 기도 없으면 하나님은 바꾸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도 없으면 영적 파산입니다. 기도 없으면 축복 스톱, 올스톱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비상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늘만 바라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끊어진 기도 줄을 잇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막힌 기도를 뚫는 길입니다.”

현대인, 특히, 현대 그리스도인을 조소하고 야유하는 의미 있는 어떤 글을 제가 약간 오늘 말씀에 맞추어 변경하여 소개합니다.

“사는 공간은 넓어졌지만, 마음은 더 좁아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더 많이 줄어들었다.
집 평수는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는 많아졌지만 문제는 더 많이 생긴다.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얼굴은 자주 대면하지만 미운 마음은 더 커진다.
수명은 길어지지만 삶의 의미는 줄어진다.
먼 달나라 가는 세상이나 가까운 이웃은 더 멀어진다.
공기 정화기는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어진다.
몸은 풍만하지만 인품은 더욱 왜소해진다.
세계평화를 외치지만 테러 전쟁은 더 심해진다.
책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나 유튜브는 시간은 길어진다.
휴대폰 사용 시간은 늘어났지만 기도 시간을 바닥이 난다.
잡담 시간은 아깝지 않지만 성경 보는 시간은 뒷전이다.
먹거리, 볼거리에는 혈안이 되어 있지만 영혼 관리는 소홀히 한다”.

기도 없는 영혼 호흡 질환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기도 시간은 짧고 회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이것이 병든 우리의 영적 현상과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실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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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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