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이야기 하면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게 와인의 향기이다. 눈으로 1/3, 코로 1/3, 입으로 1/3을 즐기는 것이 정석이라고 보면 좋겠다. 색깔을 즐기는 첫 단계와는 조금 다르게 코로 즐기는 법에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와인이 풍기는 향기는 마치 여려 겹으로 겹쳐진 아름다운 옷감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선은 적당한 브리딩과 스월링이 전제 조건이 되겠다. 와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레드와인이라면 병을 오픈하고나서 적어도 15분 정도 열어두거나 호리병처럼 생긴 디켄터에 담아 부드럽게 흔들어 주는 과정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언제든 레스토랑에 가서 한 병에 $100 이 넘는 와인을 주문하는 경우라면 주저 말고 디켄팅을 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 할 수 있다.
디켄터도 없고, 바로 와인을 마셔야 하는 경우라면 스월링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진다. 문도 안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과 같이 와인 안에 숨어있는 매력에 이르기 위해서는 와인을 열어야 한다. 뭐 이리 복잡한가? 그냥 마시면 안 되나?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틀렸다 하고 싶진 않지만 번거로움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이 전체를 문화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간단한 브리딩 방법은 첫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할수록 후각과 미각은 급격하게 둔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첫 잔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크다. 와인을 적당히 열었다고 생각된다면 본격적으로 향기에 뛰어 들어보자. 대개 와인이 가지는 향기는 단편적이지 않다. 누구나 살짝 눈을 감고 집중해보면 적어도 3~4가지 다른 향을 느낄 수 있다. 참나무 통에 담겨 숙성이 된 와인이라면 독특한 오크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생산지에 따라 고유의 흙 냄새가 나기도 하며, 단순한 포도 향을 뛰어넘어 블루베리나 블랙베리 같은 다른 과일 향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자신에게 더 강하게 어필하는 향이 다를 수 있으니 역시 정답은 없다.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 앞에 있는 와인을 전화기로 얼른 검색해 보고 거기에 나와있는 향을 거꾸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와인을 마실 때마다 검색을 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면 남들이 이미 적어놓은 와인 설명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자, 이렇게 눈과 코를 통해 와인을 들여다 보고 나면 드디어 맛을 보는 단계로 넘어간다.
입안에 와인을 조금 넣고 혀끝으로 와인을 살살 굴리듯 하면서 천천히 단맛, 쓴맛, 신맛, 떫은 맛 등을 보는데 이 4가지 맛의 균형과 조화의 정도에 따라 맛이 차별화 된다. 와인 애호가들이 시음을 할 때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후르륵 거리거나 가글 하듯이 우물우물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처음 볼 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와인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향과 마찬가지로 와인의 맛 또한 복합적이다. 여러 맛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을수록 더 고급 와인이라고 칭한다. 와인의 맛에 대해 논하자면 책으로 몇 권이 되도록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펼쳐야 하니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 천천히 나누어 다루기로 한다.
한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사람을 한 번 보고 다 알 수 없듯이 와인도 한 번 마셔보고 평가를 내리지 말았으면 하는 점이다. 내가 어떤 기분으로 마시는지, 누구와 마시는지, 어떤 음식과 함께 즐기는지에 따라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가지는 게 와인인지라, 첫 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보면 볼수록 매력을 내뿜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 와인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